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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산책 – 세계 나라 음악 나라(음악 인문학)

음악 산책 – 세계 나라 음악 나라(음악 인문학)

저녁을 먹고 기타를 잡았다.

중학교 때부터 배운 기타였지만

서예에 밀려 푸대접받았던 기타였다.

그래서 언제나 주목받지 못한 기타 취미였다.

대학교 시절에는 무대에까지 섰었는데...

3스트링 메이저 코드에서

3스트링 마이너 코드까지...

12키의 코드를 지판을 오르내리면서 밀며 당겨본다.

정확한 음과 연주 속도가 문제이다.

5선 악보는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950년경 이탈리아의 수도사 귀도 다렛조(귀도 다레초)는

4선 보표와 음계명을 만들어 계명 창법을 창안하고,

성가에 네우마(Neuma)라는 記譜法을 썼다.

음이름이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라시도레미파솔라’에서 ‘ABCDEFGA’가 되었다.

원래 음의 시작은 ‘라’이다.

'라'는 440Hz로 국제 표준음이다.

두음법칙을 적용하면 '나[我]'가 표준이란 얘기.

그런데 ‘라’부터 시작하면 miner음계가 되어 매우 슬프다.

그래서 인간은 원초적으로 四苦를 안고 태어난 슬픈 존재인가?

그러나 인간은 점차 슬픈 음악보다 밝은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이것을 major음계라 하고 이것이 일반적인 음계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건너와서는 ‘가나다라마바사가’로 되고

‘가장조’ ‘다장도’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음계가 있고, 음의 거리가 있고, 코드가 있다.

코드는 화음이다.

모든 코드는 홀수로 쌓는다.

C코드라면 ‘도(레)미(파)솔’에서 홀수만 취한다는 얘기.

메이커 코드의 정의는 1번음에서 3번음까지 20이 되고

3번음부터 5번음까지 15가 되면 된다.

 

------------ 유튜브 강의 메모

음악하면 악보이다. 그 비밀은?

지식은 형식지와 암묵지로 나눌 수 있다.

인류는 암묵지와 형식지의 선순환 구조를 통해서 발전해 왔다.

* explicit knowledge(形式知識, 분명한 지식, 책 신문과 같이 문서화 된 지식)

tacit knowledge(暗默知識, 무언의 지식. 몸이나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무형의 지식)

형식지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문자의 발명이다.

음악에서의 형식지는 악보이다.

악보가 있기 전에는 원래 즉흥 연주가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음악은 하나의 멜로디, 곧 단선율이었다.

악보가 태어나면서 다성음악, 곧 하모니와 화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작곡의 개념이 탄생한다.

 

그럼 언제 어디에서부터 음악을 기록하는 것이 시작되었을까?

유럽의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문명과

기독교 사상이 만나면서 이루어졌다.

로마인의 언어였던 라틴어가 초기 기독교의 언어가 되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기 337년에 자신이 직접 세례를 받고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는다.

그로 인하여 교회가 로마제국에 퍼져서 발달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교회음악도 함께 전파하게 된다.

그로 인해서 크리스트교 음악이 후에 서양음악의 토대가 된다.

서기 354년 북아프리카에서 아우구스티누스란 아기가 태어난다.

이 아기는 후에 음악을 미사전례 속에 확고히 정착시킨다.

이후 수세기 동안 기독교가 전파되어 유럽 전체에 새로운 신도가 생겨나게 되는데,

그들이 모여 기도하고 찬양할 때 노래는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후 중세시대(기원후 400~1400년) 음악의 힘을 빌어서 기독교 신도는 점점 늘어났다.

수도원의 학문적 역할 커지고 이 수도원 생활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베네딕투스란 사람이다. - 청빈, 정결, 복종 등의 매우 엄격한 교범과 규칙에 Eik라

금욕적인 공동체 생활을 요구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7번 기도하고 공동예배를 올리라고 했다.

그 외 시간은 노동과 맥주 만드는 일과 학문 연구다. 학문 연구라면 필사였다.

학문과 예술이 발달. 양피지를 사용하여 글을 썼다.

한권의 성경을 쓰기 위해서는 450장의 양피지가 필요했다.

두 면을 쓰는데 하루~이틀이 소요.

책 한권 정도의 필사본을 완성하는 데는 몇 달이나 걸렸다.

그런데 이 수도사들이 예배할 때, 노래를 부르면서 했는데

대부분 귀로 들으면서 따라 불렀다.

하지만 항상 모든 것을 귀 기울여 듣고 

무엇보다 수천곡이나 되는 노래들을 다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조금씩 가사에 

점이나 선, 곡선 등의 작은 부호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이것이 악보의 시작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서기 850년경에

라틴어로 된 두 권의 중요한 음악 교재가 태어난다.

프랑스의 한 수도사가 썼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 책은 ‘무지카 엔키리아디스(Musica Enchiriadis)’와

‘스콜리카 엔키리아디스(Scolica Enchiriadis)’였다.

이 책들은 수십년 동안에 걸쳐 필사되어 다른 수도원으로 퍼지게 된다.

그렇게 점점 성가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기억을 돕는 어떤 기보적인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태어난 것이 바로 ‘네우마(neuma)’이다.

이 네우마는 그리스어로서 ‘제스처’ 또는 ‘기호’라는 의미라고 한다.

현존하는 최초의 네우마 기호는 9세기 필사본에서 발견된다.

10세기에 이르러 이론가들과 기보가들은 보표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음고를 나타내는 가상의 수평선을 가정하고

이 가상선을 중심으로 이 네우마의 배치를 더 섬세하게 함으로써

음정들을 더 정확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표선이 발전하기 시작하는데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11세기 초가 되면서 보표선을 줄어들어

F음정을 나타내는 적색의 보표선,

C음정을 나타내는 황색의 보표선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수도사였던 귀도 다렛조(Guido d’Arezzo)에 의해

악보의 기보법과 계명, ‘도레미파’ 곧 계이름이라고 불리는 

계명시창을 발명하게 되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기존에 사용했던 2개의 선에다 2개의 선을 더 그어 4선보를 처음 정착시키게 된다.

그는 적색과 황색선으로 구별하는 대신에 C와 F 두 문자를

그 음정의 보표선 앞에 적어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음자리표이다.

G가 변해서 높은음자리표

F가 변해서 낮은음자리표

C가 변해서 가온음자리표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오면서 갈대펜 대신에 깃촉펜을 필기도구로 사용함에 따라

깃촛펜의 특징에 의해 네우마의 모양이 굵어지고 각이 생기면서

음표들은 사각형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이 사각기보는 4개의 보표선과 C와 F를 나타내는 음자리표와 함께 사용하게 된다.

드디어 16세기말경이 되면서 음표의 모양이 둥글게 변하고

17세기에는 마디선까지 첨가되면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악보의 체계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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