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선비의 생활과 정신세계

서예는 그 사람 이상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이상형은 '선비'이다.

그렇다. 서예를 하려면 선비 정신이 요구된다.

여기에 선비의 생활과 정신 세계를 요약하며 살펴보기로 한다.

 

 

선비의 생활과 정신세계


선비의 어원 : 

선비란 ‘學識+德行’은 있으나 벼슬(감투: 갓, 冠, 官)하지 않은 사람, 高潔한 人品 ↔ 士大夫

한자로는 ‘士, 君子, 儒生’과 비슷 

고전에는 ‘션ᄇᆡ’ ‘션븨’ ‘션뷔’

신라의 ‘花郞’ vs 고구려 ‘仙人xiānrén, 先人xiānrén’(‘션ᄇᆡ’의 音借)


선비정신 : 

1. 士(선비 사; shì)의 의미 변화(武官에서 文官의 의미로) - 兵士, 軍士, 士兵, 士氣衝天, 士官生徒, 士大夫, 士禍, 人士, 名士, 辯護士(判事, 檢事), 博士

2. 어감이 좋지 않아 [시]를 [사]로 발음 - ‘司sī한 事shì을 死sǐ할 때까지 思sī하며, 私sī的인 奢shē는 捨shě하고, 임금이 賜cì한 仕shì를 하거나 師shī하며 지내다가 史shǐ에 남는 士shì가 되고자 한다.’

3. 中庸 : 德行知識 – 名分義理, 志操節槪, 德治包容, 一以貫之, 知行合一(陽明學), 學行一致 ↔ 巧言令色

4. 先公後私, 薄己厚人, 抑强扶弱 → 그러기 위해서는 淸廉潔白(淸貧儉約), 禮義廉恥 필요

5. 최종목표 和而不同, 克己復禮(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름), 相互愛敬尊重 → 共存共生의 길

6. 天人合一의 경지. 동양의 ‘天’은 절대자가 아니라 ‘自然’이다.

7. 선비의 공부 방법 : 理性과 感性의 조화

文은 史와 哲을 담아내는 그릇. 詩文은 道를 싣는 그릇(載道之器, 道文一致, 文香書氣) 

學藝一致(道藝一致) : 文史哲을 닦음으로 理性을 훈련 + 詩書畵를 닦음으로 感性 훈련

義理와 人情의 조화 – 義理에 치우치면 삭막하고, 人情에 치우치면 부패하기 쉽다. 여기에서  

8. 修己治人(修己安人) : 性理學을 공부하는 士의 단계에서는 修己를 하고, 大夫가 되어서는 治人의 단계로 나아간다. 學者官僚 士大夫

9. 학습 : 四書三經, 四端七情, 理氣論, 性理學, 考證學, 實學(實事求是, 利用厚生, 經世致用)  

10. 선비의 길 - 科擧 or 山林處士 

科擧는 小科(生員 進士), 大科(文科) → 官職(公義實現), 淸白吏(黃喜, 孟思誠, 柳寬) / 蔭職

辭職 or 流配(귀양 ← 歸鄕) : 弟子養成. 著述活動

賜藥 - 毅然態度. 入神境地.

 

* <擊蒙要訣>의 九容九思 : 栗谷 李珥 선생은 공자의 九思(論語 季氏篇)에 몸가짐에 대한 강령인 九容을 더해 九思九容을 제시했다.

 

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見利思義)

*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 論語 憲問篇

*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 論語 子張篇

 

<大學> 八條目 -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 四書三經은 이의 실천 방법 해설서이고 이이의 聖學輯要는 조선 性理學의 결정판이다. 

 

溫故知新, 安分知足, 安貧樂道, 見利思義의 정신 

西勢東漸(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밀려드는 외세와 열강을 이르는 말) 대응.

經經緯史의 정신(철학과 역사의 상호 보완) - 경전 곧 성리학에 대한 성찰과 역사 탐구. 眞善美와 忠孝와 같은 인류 보편적 진리는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18세기 朴趾源의 法古創新論

19세기 東道西器論(동양의 도덕, 윤리, 지배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서양의 발달한 기술, 기계를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룩한다는 사상) (동양의 道理와 서양의 과학기술. 동양의 정신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이자는 구호) 

갑오경장 이후의 舊本新參의 논리 

日의 和魂洋才('화혼'이란 일본의 전통적 정신, '양재'란 서양의 기술)

淸의 中體西用(중국의 전통은 그대로 두고 서양의 과학기술만을 받아들이자는 주장)

 

선비의 공간 ‘사랑채’ – 독자적인 생활공간으로 학문을 닦고 벗과 교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 文房四友(詩書畵를 즐기기 위한 도구)와 白瓷.

 

洗心臺: <역경> ‘繫辭上傳’에 ‘聖人以此洗心 退藏於密 吉凶與民同患’이라 했다. 

‘성인이 이로써 마음을 씻고 물러가 은밀한 곳에 감추고, 吉凶을 백성과 함께 근심한다.’는 뜻이다. ‘此’는 ‘蓍(시초, 筮竹, 점대)와 卦와 六爻’ 등을 가리킨다.

1. 慶尙南道 山淸郡 矢川面 院里 德川書院에 세심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2. 京畿道 楊平郡 龍門面 德村里 山 7에 세심정이라 이름한 정자가 있다.(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이며 趙光祖의 수제자로 이름 높던 趙昱이 기묘사화의 여파로 이곳에 은거하며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유서 깊은 정자이다.)

3. 慶尙北道 安東市 豊川面 河回里 河回마을에서 강 건너 보이는 柳成龍의 玉淵書堂 경내에 洗心齋가 있다.

4. 慶尙北道 慶州市 安康邑 玉山里의 옥산서원 독락당 부근에는 퇴계 이황이 글씨를 새긴 洗心臺라는  암반이 있다.

5. 慶尙北道 龜尾市 吳太洞에도 세심당이 있다.

6. 慶尙北道 英陽郡 石保面 두들마을 언덕에 恒齋 李嵩逸(이숭일)이 새긴 세심대가 있다. ‘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의 뜻이다.

7. 세심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 澄心臺가 慶尙北道 慶州市 江東面 良洞里 양동마을에 있다. 그런데 ‘河回마을’은 제대로 된 호칭인데, ‘양동마을’은 ‘良洞’이라 하면 될 것을 왜 ‘마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妻家ㅅ집(처갓집)’처럼 언어 사용자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樂飢臺: <詩經> ‘衡門’에 ‘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라 했다.

‘누추한 집에서라도 한가로이 쉴 수 있고, 샘물 졸졸 흐르니 주림을 즐길 만하다.’의 뜻이다.

여기서 '衡門'이란 ‘두 개의 기둥에다 한 개의 횡목을 가로질러서 만든 허술한 大門’이라는 뜻으로, 隱者가 사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 衡(저울대 형; héng) : 네거리 한가운데에서 소가 뿔(角)로 접근하는 사람(大)을 막으며 ‘평평하게’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평평하다’ ‘저울’의 의미가 나왔다.

한편 衡자는 ‘길을 갈 때 소가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뿔에 긴 나무를 묶어 놓았다’는 뜻으로 보고, ‘뿔막이 나무’의 뜻으로 쓰기 하였으며, 나중에 뿔에 매단 평평한 나무가 저울을 닮았다 하여 ‘저울’ ‘평평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 泌(샘물 흐르는 모양 비; bì)

따라서 '樂飢'란 먹는데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자연을 즐기는 隱者의 집이라는 뜻이다.

1. 慶尙北道 英陽郡 石保面 두들마을에 '樂飢臺'가 있다.

2. 全羅南道 莞島郡 甫吉面 芙黃里 芙蓉洞庭園에 '樂飢欄'이 있다.

 

* 收斂身心 莫切於九容 進學益智 莫切於九思 所謂九容者 足容重(不輕擧也 若趨于尊長之前則不可拘此) 手容恭(手無慢弛 無事則當端拱 不妄動) 目容端(定其眼睫 視瞻當正 不可流眄邪睇) 口容止(非言語飮食之時則口常不動) 聲容靜(當整攝形氣 不可出噦咳等雜聲) 頭容直(當正頭直身 不可傾回偏倚) 氣容肅(當調和鼻息 不可使有聲氣) 立容德(中立不倚 儼然有德之氣像) 色容莊(顔色整齊 無怠慢之氣) 

몸과 마음을 수렴하는 데는 九容보다 절실한 것이 없고, 학문에 나아가 지혜를 더하는 데는 九思보다 절실한 것이 없으니, 이른바 九容이라는 것은, 발 모양을 무겁게 하고,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長者 앞에서 걸을 적에는 여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손 모양을 공손히 하고, (손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단정히 손을 모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눈 모양을 단정히 하고, (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시선을 바르게 할 것이요, 흘겨보거나 훔쳐보아서는 안 된다.) 입 모양을 그치고,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을 항상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 모양을 조용히 하고, (마땅히 形氣를 가다듬어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머리 모양을 곧게 하고, (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서는 안 된다.) 숨쉬는 모양을 엄숙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할 것이요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서 있는 모양을 덕스럽게 하고, (가운데 서고 치우치지 않아서 엄연히 德이 있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얼굴 모양을 장엄하게 하는 것이요, (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 기색이 없어야 한다.)

 

所謂九思者 視思明(視無所蔽則明無不見) 聽思聰(聽無所壅則聰無不聞) 色思溫(容色和舒 無忿厲之氣) 貌思恭(一身儀形 無不端莊) 言思忠(一言之發 無不忠信) 事思敬(一事之作 無不敬愼) 疑思問(有疑于心 必就先覺審問 不知不措) 忿思難(有忿必懲 以理自勝) 見得思義(臨財必明義利之辨 合義然後取之) 常以九容九思 存於心而檢其身 不可頃刻放捨 且書諸座隅 時時寓目

이른바 九思라는 것은,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사물을 볼 때 가린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들을 때는 귀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 막힌 바가 없으면 총명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얼굴빛을 화하고 부드럽게 화를 내거나 거친 기색이 없어야 한다.)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일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말을 성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한 마디 말이라도 충신 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일은 공경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한 가지 일이라도 공경하고 조심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의심스러운 것은 물을 것을 생각하고, (마음 속에 의심이 있으면 반드시 선각자에게 나아가 자세히 물어서 모르고는 그대로 두지 않는다.) 분할 때에는 患難을 생각하고, (분이 나면 반드시 징계하여 이치로써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얻는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이다. (재물을 대해서는 반드시 義와 利의 구분을 밝혀, 義에 합한 뒤에야 취한다.) 항상 九容과 九思를 마음속에 두고 그 몸을 단속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놓아버리지 말 것이요, 또 이것을 앉는 자리의 귀퉁이에 써 붙여 때때로 눈을 붙여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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