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제4차 산업혁명과 문자권력의 추이

제4차 산업혁명과 문자권력의 추이

 

Ⅰ. 들어가며

서예는 장르 특성상 작가의 정서적 등가물로서, 작가가 공감하고 있는 시대 정서를 문자를 통하여 즉시 표현해 낼 수 있는 첨단 예술이었다. 그 덕분에 지난 시절 서예는 모든 예술 장르 중 가장 높은 지위에서 당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또 시대 정서를 이끌어 왔다. 다시 말해 서예를 하는 사람은 선택받은 지도자로서 문자권력이란 높은 지위를 누리며 문학과 역사는 물론, 철학과 정치 등의 시대사조를 정확히 대변하려고 노력해 왔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생전에 “예술품의 존귀한 바는 그것이 우수한 작품일수록 그 시대와 문화를 가장 정직하고 똑똑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까닭에 있다” 간송 탄생 110주년 기념전 ‘온고지신(溫故知新)’ - 현대작가, 간송을 기리다, 간송문화전 제7부에 해당, DDP, 2016
라고 하면서 예술품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서예가는 붓대 같은 굳은 의지로 자신을 지키고, 붓털 같은 부드러운 감성으로 오감을 열어놓고 시대를 읽어왔다. 서예가는 현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붓끝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지킴이요 시대의 대변자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
역사적인 서예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들이 살아가던 당대의 키워드와 현실인식이 붓길 에 배어 있다. 서예가로서 문학과 역사는 물론 종교와 철학, 생활과 윤리에까지 관심을 두고 붓으로 써내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를 정확히 읽고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당대의 리더였기 때문으로 본다. 체화된 삶을 살아온 서예가는 역사적으로 문자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트렌드 리더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 온 것으로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20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1, 2차 세계대전이란 전대미문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인문학은 팽개치고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만을 부각해 왔다. 그리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순수한 경제 정의는 사라지고 배금주의(拜金主義)의 끝없는 절정을 향하여 지금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SNS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온라인 세계가 펼쳐지면서 오프라인 세계는 시들기 시작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온라인 세계에 탐닉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오프라인 세계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청정제 역할을 해야 할 종교는 희석되고, 세칭 자본주의교만이 돈을 교주로 믿고 따르며, 돈으로 모든 것의 서열을 매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인류는 직업군과 실업군, 빈곤층과 부유층이라는 두 부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키보드(keyboard)나 키패드(keypad)를 얻는 대신에 붓이나 펜을 잃어버렸고, 컴퓨터를 얻는 대신에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사실이다.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오면서부터 아쉽게도 첨단예술의 지위에 있던 서예는 전통예술 속으로 밀려나 물리적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 기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마주하며 살고 있다. 금세기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시대가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다보스포럼)은 독립적 국제기구로서 저명한 기업인ㆍ경제학자ㆍ저널리스트ㆍ정치인 등이 모여 세계 경제에 관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국제민간회의이다. 독립적 비영리재단 형태로 운영되며,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 주의 주도 제네바에 위치한다. ‘세계경제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영향력이 있는 유엔 비정부 자문기구로 성장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나 서방선진 7개국(G7) 회담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1938~ )은 그의 저술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2016.
 서문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성격에 대해 이르기를 ‘오늘날 우리는 삶과 일, 인간관계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혁명의 문 앞에 서 있다. 그 규모 범위 그리고 복잡성(complexity)을 미루어 볼 때, 제4차 산업혁명은 과거 인류가 겪었던 그 무엇과도 다르다.’ 위의 책, p.10
라고 선언했다.

논자는 20C 후반부와 21C 전반부를 살아가는 서예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예계 현실을 위기로 진단하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 고민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제4차 산업혁명의 격랑 속에 던져질 서예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서예의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보고자 한다. 주어진 도전을 운명을 지나 숙명이라 믿고, 21세기 서예의 비전과 야망을 꿈꾸며, 서예 경영과 서예 마케팅 등에 대하여서도 덤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말과 글

우선 여기에서는 ‘말’과 ‘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하는데 그 까닭은 말과 글은 생각의 씨앗으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이를 형상화하는 작업이 예술 활동이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말과 글 중에서, 특히 ‘글’에 ‘씨’ 자를 붙인 ‘글씨’라고 하는 것이 곧 ‘서예’이기 때문이다.
말을 음성언어, 글을 문자언어라고도 하지만 여기서는 친근하게 ‘말’과 ‘글’, 더러는 ‘말씨’와 ‘글씨’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말’과 ‘짓’ 두 가지밖에 없다. 말과 짓을 대개 언행(言行)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말한 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성실한 실천이 요구됨은 당연한 이치이다.
예부터 인물을 뽑을 때 잣대가 되었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네 가지 항목이 있다. 이 중에 ‘말[言]’과 ‘글[書]’ 곧, 말씨와 글씨가 들어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의 말과 글을 듣고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말과 글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말과 글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말은 목구멍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음성 기호의 집합이고, 글은 말을 적는 문자 기호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음성은 시간의 함수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라지고 말지만, 글은 공간의 함수로 시간이 흘러도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도 서로 다르다. 서예는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말 속에 말이 있고 글 속에 글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고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니라는 뜻과 함께 말글 안에는 무궁무진한 뜻이 담겨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인간은 말을 먼저 발명하고 글은 나중에 만들어 냈다. 그리고 처음 마주하는 사물을 일컫고, 겪은 일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사회적인 약속으로서 말과 글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러한 말의 일회성· 소멸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자유롭고 직관적인 그림 그리기로 표현했겠지만, 나중에는 고도의 음성 상징 기호인 글자를 발명하여, 더 간편하게 정보를 보존하거나 보다 정확하게 뜻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발명의 최고 작품은 아마 글일 것이다. 글, 특히 붓으로 쓰인 글은 불변성과 영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말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단 입 밖에 나오는 즉시 자취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어느 때 어떻게 의미가 왜곡되어 전해질지도 모를 말을 오랫동안 보존하고자 만든 발명품이 바로 글이다. 바로 이 글을 매체로 필묵을 이용하여 종이 위에 점과 획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서예이다. 급기야 글로 쓰기조차 귀찮아서 녹음기와 음성 인식기까지 만들어 낸 걸 보면 인간의 창조적 본능에는 끝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흔히 말하기는 쉬워도 글쓰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쉬우면 잘못을 저지르기 쉽고, 어려우면 회피하기에 십상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아껴가며 말하고, 글쓰기는 어렵지만 되도록 많이 쓰라는 격언이 있다. 특히 서예 활동은 쓰기 위한 준비나 서사 과정이 쉽지 않다. 그런데 모든 성공한 CEO들은 한결같이 적는 일에 골똘했다고 한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신(新)적자생존론’이 여기에서 탄생한다.
성공한 CEO는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능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모두 서예를 즐겼던 분들이다. 이 두 회장은 모두 바쁜 와중에도 서예를 통하여 자신을 다스림은 물론, 시간을 초월하여 외부와의 큰 소통을 꾀한 분들이다. 이처럼 붓을 통한 소통을 ‘필통(筆通)’이라 하는데, 언어유희로 보면 ‘필(feel)이 통(通)하여야 필통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말과 글은 공기나 물과 같다. 공기나 물은 흔하지만 오염되면 누구나 금세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셔야 하듯이, 피할 수 없는 말과 글이라면 맑고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평생 사용할 말과 글이라면 즐겁게 배우고 행복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따금 말글의 바다인 도서관에 풍덩 빠져 보는 건 어떨까. 도서관은 영혼의 수영장이다.
그리고 ‘말’은 ‘맛있게’ 하고, ‘글’은 ‘멋있게’ 써야 한다. 맛있는 말은 명곡과 같고, 멋있는 글은 명화와 같다. 말에 맛이 없으면 귀가 더러워지고, 글에 멋이 없으면 눈이 피곤해진다.
인간이라면 아무도 말과 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을 못하면 언어장애인으로, 글을 모르면 문맹자로 취급된다. 말과 글을 모르면 서로 간에 진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사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으므로 미개인으로 낙인찍힌다. 미개인은 언제나 문명인의 부림을 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남으로부터 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익히고 책을 읽어야 한다.
한편 글은 민주주의와 상관관계가 높다. 글을 모르면 전제주의나 독제주의에 빠지게 되고, 온 국민이 글을 잘 사용하여 문맹자가 없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따지고 보면 글이 준 선물이라 하겠다.
 
Ⅲ. 문자권력의 추이와 문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기고, 문(文)은 무(武)보다 강하다. 앞말은 노자(老子)의 말이고, 뒷말은 중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배운 말이다.
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명예와 이익을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편이자 절대 권력을 차지하는 지름길이었다. 때로는 권력을 잡은 자가 새로운 문자를 만들면서까지 문자를 무기로 글 모르는 백성 위에 군림하거나 이민족까지 지배하기도 하였다. 문자는 왕조 창업을 합리화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으니, 글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에너지를 ‘문자권력(文字權力)’이라 이름 붙여본다.
‘글’ 또는 ‘문자(文字)’라는 말은 때로 ‘학문’ 또는 ‘학식’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하는데, ‘글깨나 배웠다는 사람이 그러면 쓰겠나?’라고 할 때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공자 앞에 문자 쓰네’라고 할 때의 ‘문자’는 어려운 문구를 많이 쓰며 유식한 채 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역사시대 이래 지금까지 문자를 익히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권력의 구심점에 있었다. 문자를 터득하고 붓을 잡는다는 것은 곧 권력을 잡는 일이었다. 문자 속에는 무지갯빛 부귀영화가 약속되어 있으므로, 서예 용구를 일러 문방사보(文房四寶)라 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송나라 진종황제는 그가 쓴 ‘권학문(勸學文)’에서 문자권력의 내막을 온전히 실토하고 있다.

집안을 부유케 하려고 좋은 밭을 사지 말라
글 속에 저절로 천종의 봉록이 들어있느니라.
편안히 살려고 높은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
글 속에 절로 황금으로 지어진 집이 들어있단다.
문을 나섬에 따르는 자가 없다고 아쉬워 말라
글 속에는 수레와 말들이 무더기로 넘쳐난다.
장가감에 좋은 중매가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라
글 속에 얼굴이 옥처럼 어여쁜 여자가 있느니라.
사나이로서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육경(六經)을 부지런히 창 앞에서 읽을지어다.

글을 익혀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만 하면, 돈과 명예는 물론 예쁜 아내까지도 한꺼번에 굴러들어온다는 글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글공부지만 예전에는 소수의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열려있던 글 길이었다.
일본인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문자는 특권층만의 것이기 때문에 존엄하고 신비감마저 든다.’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 고경문 역, 페이퍼로드, 2012, p.78
라고 했다. 이 말은 문자와 특권층 간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결국 문자의 절대적 가치는 특권층이 사용하기 때문에 돋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문자는 발명 이래 양반이나 귀족만을 위한 것으로서, 요즈음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문자는 소수의 집권자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문자의 부정적 측면이다. 글을 안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그들의 법(法)을 만들고 또 법이라는 명목 아래, 글 모르는 사람들을 마구 부려먹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머리라면 글을 모르는 사람은 손발이었다. 너스레를 떤다면 ‘문맹자(文盲者)는 문명자(文明者)의 수족(手足)’ 역할을 해야만 빌붙어 살 수 있었다는 말씀이다. 문자를 모르면 상놈, 제 이름도 못 쓰면 쌍놈이었다. 이런 사람은 세종대왕으로부터도 ‘어리석은 백성(愚民)’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러고 보니 욕 중에 상욕은 ‘무식한 놈’이렷다.

최초의 서예가는 문자를 만들기도 하고 또 활용할 방법도 찾아냈다. 그들은 뾰족한 돌로 바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정이나 칼로써 돌 위에 글자를 새기기도 했는데 이 튼실한 기록방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자권력을 누리는 집단이 탄생하였다.
다음 시기 이들은 먹을 발명하고, 거북의 배 뼈나 소의 어깨뼈 등에 글자를 새기거나 쓰기도 하면서 제의와 사냥 등에 문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갑골문은 제사와 수렵을 맡은 부족장이나 제왕의 문자권력이었다. 백성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고, 또 알아서도 안 되는 금기의 글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름 그대로의 순수한 우민정책(愚民政策)이라 할 수 있겠다. 퇴폐 문화를 눈감아주고 도박을 통한 사행심을 조장하여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하는 오늘날의 우민정책과는 다르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문자권력자들은 마침내 붓을 발명하고 1988년 1월 경남 창원시 다호리에서, 초기 철기 시대의 나무널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 다섯 점의 붓이 출토되었다. 붓대는 나무를 깎아 만들었고, 양 끝에 붓털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이 붓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토된 것으로 기원전 2세기경에 이미 문자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되며, 나아가 우리의 역사 시대의 시작까지 끌어 올려주는 근거 자료가 된다.
 죽간(竹簡)과 목간(木簡) 또는 비단을 만들어 그들의 생각과 느낌은 물론 사상까지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문자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그들은 서예 정신을 깨닫고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그들은 시대를 갈마들면서도 종이를 발명하여 서예를 고도의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문자를 통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그들은 거침없이 그들만의 패러다임으로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서체를 만들며 역사를 펼쳐나갔다.
진시황은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승상인 이사(李斯)를 시켜 새로운 글자 소전(小篆)을 만들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며 권력을 휘둘렀고,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정복하고 나서 파스파라는 티베트 승려를 시켜 이른바 ‘파스파문자’라는 몽골문자를 만들어 지배하였으며,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몽골문자를 개량한 ‘만주문자’를 만들어 문자권력을 펼쳤다.

한반도에서의 문자권력의 본격적 출발은 삼국시대부터이다. 삼국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사용된 이두(吏讀)는 아전들의 문자권력이었다. 신라에서는 향찰(鄕札)이 초기 문자권력으로 나타났으나 통일 이후는 한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려 광종 때(958년)부터 갑오개혁 때(1894년)까지 실시해 온 과거제도 시기는 한문이 절대적 문자권력이었다.
선조(先祖)의 간찰(簡札)은 한결같이 초서로 쓰여 하인은 눈 뜨고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초서는 작가의 성정을 마음껏 풀어주는 서예술의 꽃이기도 하지만 문자권력자들 간의 비표이자 문자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요즘도 법률·의학·행정 등의 전문용어를 쉽게 고쳐 쓰자는 여론이 일어나곤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절대 곧이듣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득권자들이 이미 문자권력에 맛을 들였기 때문이다. 전문 직업인일수록 문자권력을 심하게 부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사의 약방문(藥方文) 내용을 환자가 알면 약효가 떨어진다고 믿었고, 부적(符籍)은 쓴 사람 외의 다른 사람이 읽어내면 영험함이 사라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종대왕만은 문자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세종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는 문자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세종에게 있어 문자는 권위의 상징이나 권력의 방편이 아니라 실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호혜(互惠)의 도구였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들에게 문자권력을 나눠주기 위한 창의적 발상에서 비롯했다.
그런데 문자를 권력의 수단으로 보아 온 최만리에게 훈민정음 창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로 인한 문자권력의 누수를 염려한 그의 반대 상소는 당연한 처사로 여겨진다.
이때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세종대왕의 뛰어난 기지가 나타난다. 신하들의 반대 정황을 간파한 세종은 창제 작업을 홀로 비밀리에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중차대한 사건을 필자는 ‘문자권력 나눔을 위한 세종대왕의 비밀 프로젝트’라 이름 붙여 본다.
만약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 위한 공식적인 어전회의라도 개최했더라면, 시작하기도 전에 엄청난 난관에 부딪혔을 게 분명하다. 반대파의 많은 대신이 일어나 중국의 힘까지 빌려 가며 세종을 압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자권력의 기득권자 처지에서 보면, 그때까지의 과거(科擧) 시험이 줄곧 한문(漢文)으로 치러져 왔었고, 그 이후로도 한글 아닌 한문으로 과거가 치러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어쩌면 세종과 최만리 사이에 양해각서(諒解覺書)가 암암리 오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관리를 뽑을 때 실시했던 과거 시험을 중국에서는 수나라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9년(958)에 처음 시행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만약 원 세조가 ‘파스파문자’로, 청 태조가 ‘만주문자’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으로 과거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면 각 문자의 위상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중국의 지성이자 <아큐정전(阿Q正傳)>의 저자 루쉰(魯迅, 1881~1936)이 ‘어려운 한자가 없어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 (漢字不亡 中國必亡)’라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루쉰의 고민을 받아들여 어려운 한자 대신에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 한글을 사용하자고 주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세종대왕은 백성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창제한다고 했다. 세종대왕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그들만의 문자권력을 어떻게 해서든 백성에서 나누어 주어서, 어리석은 백성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자 했다는 점이다.
훈민정음은 언문(諺文), 반절(反切), 암클, 국문(國文)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훈민정음은 창제 이후 백성으로부터 점차 사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 의식이 싹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 때마다 민의를 결집하는 수단이 되었고, 나아가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한글은 ‘학문과 지식의 평등’ <한국문학의 이해>, ‘玉鴛再合奇綠」 硏究’, 편집부,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1999, p.219
을 가져왔고, 세계 속의 으뜸 문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3년 주시경 선생이 어린이 잡지 <아이들보이>에 글을 쓰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한글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 권력에 의한 문자 창조’ <앎과 잘남>, ‘한국의 현실과 민족운세론’, 양승태, 2006, p.28
였고 우리말에 꼭 들어맞는 우리 문자라는 점에서 한글은 위대함을 넘어 ‘세계 문화사의 기적’ 위의 책, p.28
이었다.
세종대왕은 ‘백성이 있으므로 나라가 존재하며, 나라가 있으므로 군주가 존재한다.’라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바탕으로 백성 사랑을 실천한 군주였다. 그 애민사업의 대표적 업적이 훈민정음 창제였다. 세종대왕의 일관된 신념은 문자권력을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백성의 지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민치(民治)도 잘된다고 믿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지구 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맹자는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고 국가는 그다음이며 군주의 존재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고 했다. 강태공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육도(六韜)>라는 병법서는 ‘세상은 한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人之天下也)’라고 전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마인드와 딱 들어맞는 말이다. 삼봉 정도전 이후 세종도 이 두 구절을 읽고 크게 깨달았으리라 믿는다.

언어 간에도 위상이 존재한다. 한글을 얕게 보고, 한자를 높게 보는 경향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논자는 이를 언어 사대주의로 본다. 해방 이후에는 영어가 이 땅에 들어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명색이 교수라면 칠판에 영어 단어 몇 개라도 써야 품위가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20C가 되자, 특권층만이 사용하던 문자는 이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컴퓨터가 보편화하였을 때에는 컴퓨터의 붓이라 할 수 있는 키보드가 일반화하여 더는 문자가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지 못했다.
이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 속의 문자권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출세의 기회,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노력만 있으면 문자권력을 잡을 수 있다.

글의 힘을 극대화 시켜주는 서예용구는 시대마다 그 종류를 달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붓의 전신은 돌을 쪼아 다듬거나 글자를 새기는 정이나 칼이었고, 종이의 전신은 갑골(甲骨)이나 죽간 또는 바위였다.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인쇄술의 발달로 활자가 붓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쓰는 서사 도구로는 붓과 더불어 만년필, 연필, 볼펜 등의 다양한 필기구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컴퓨터나 모바일 시대 컴퓨터가 상용되면서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PC 시대나 모바일 시대, 컴퓨터 시대나 정보화 시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시대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마윈은 지난 20년간 지속해 온 정보통신 기술 곧, IT(information technology) 시대가 저물고, 앞으로 30년간은 데이터 기술 곧, DT(Data Technology) 시대가 도래한다고 했다.
의 ‘붓’은 무엇인가? ‘키보드’나 ‘키패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키보드와 더불어 입력 장치의 하나로 커서(cursor)를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마우스(mouse)’ 역시 붓의 대용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컴퓨터 시대의 ‘종이’는 무엇일까? 데이터나 명령을 컴퓨터 내부에서 기억하고 있는 장치라는 개념에서는 메모리(memory)라 해야 할 것이고, 이를 글자나 영상을 통하여 화면으로 출력하는 장치인 ‘모니터(monitor)’는 한 장의 펼친 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먹’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진부호(二進符號)인 ‘0’과 ‘1’이 아닐까? 먹의 여러 조합으로 다양한 서체가 나타나듯이 컴퓨터는 ‘0’과 ‘1’의 조합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벼루’를 대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벼루가 없으면 먹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컴퓨터에서는 프로그램의 명령을 해독하여 그에 따라 실행하는 장치 CPU가 벼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문방사우가 서로 유기적 관계에 있듯이, 컴퓨터의 여러 장치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방사보를 우리는 문방사우라 했는데, 모바일 시대를 맞이하면서 오늘날의 문방사보(文房四寶)는 문방(文房)을 떠나 산속이든 밤길이든 어디서든지 존재할 수 있으므로 수처사보(隨處四寶)라 해야 할 것이다. 전서, 예서 등과 같은 다양한 ‘서체’는 물론 ‘폰트(font)’로 규정된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빅 데이터와 소통이 대세인 SNS 세상으로 급격하게 바뀌자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슬로우 아트인 서예의 입지가 약화하는 건 당연하다. 초서로 아무리 빨리 쓰더라도 엄지족이 쏟아내는 정보의 양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문자의 자리를 사진이 차지하더니 이제는 동영상이 지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IT의 발달은 문자의 시대에서 이미지 시대로, 다시 이미지 시대에서 유튜브 시대로의 빠른 변화를 가져왔다. 독서도 활자가 아닌 영상 매체로 하거나, 더러는 며칠간 읽어야 할 소설을 한 편의 영화로 대신하는 세상이다.
그렇다. 이제는 실용적 소통의 도구로서 서예에 접근한다면 무리다. 서예의 실용적 목적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예술적 측면으로만 접근해야 한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가 서예의 실용성을 어느 정도 대신한다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역부족이다. 이쯤 하여 서예의 실용성은 아예 컴퓨터 폰트에 완전히 넘겨주는 게 좋을 듯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서(書)’에 ‘예(藝)’ 자를 붙인 우리의 ‘서예(書藝)’라는 단어 선택은 중국의 ‘서법(書法)’이나 일본의 ‘서도(書道)’라는 용어에 비하면 탁월한 판단이자, 미래지향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학교 교실 벽에 걸려있던 붓글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서예 작품이나 그림이 걸려있던 가정의 벽 자리는 TV 모니터가 차지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다른 한쪽의 벽은 데스크톱컴퓨터가 지키고 있다. 미혼 여성들이 혼수품의 하나로 여기고 배우던 붓글씨와 자수는 이제 눈을 닦고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상장이나 졸업장은 늘어났지만, 프린터로 쭉쭉 뽑으면 되고,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물론 조상의 상석(床石) 글씨마저 붓글씨 대신에 컴퓨터 폰트가 대신하고 있다. 종이로 만든 신주(神主)인 지방(紙榜)도 사진이 대신하고, 군부대의 차드 글씨는 물론 모든 세미나, 워크숍, 학술 발표대회 등에도 빔프로젝터(beam projector, 투영기)를 이용한 파워포인트(PPT) 자료나 동영상이 대신하고 있다.

말과 글에 대하여 앞서 논의했지만, 지금까지는 글이 절대 언어권력이었다. 그러나 녹음기는 물론 음성인식기가 상용화된 지금은 말도 매우 조심스럽다. 물론 글은 영원히 쓰인 상태로 남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말로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 ‘구화(口禍)’를 입게 되고, 글로 물의를 일으키면 ‘필화(筆禍)’를 입게 된다. 조심할 일이다.

Ⅳ. 제4차 산업혁명과 서예 위상

예술은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기 위해 미적(美的) 작품을 만드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다. 서예도 예술의 한 장르로서 미적 생활의 밑거름이 되는 활동이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도 사람이 있고, 예술의 중심에도 사람이 있다. 산업혁명과 예술 사이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 중간에 사람을 놓고 보면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이든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예술이든 모두 사람이 사람의 알찬 삶과 행복을 위해 개척해 온 것이다.
홍성욱 교수 방식으로 얘기하면 “산업과 예술은 서로 다른 창이 아니라 겹창이다. 산업과 예술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 EBS, 인문학 특강- 홍성욱 교수의 ‘과학, 인문과 예술을 만나다’ 1부, 과학, 인문학, 예술은 세상을 인식하는 겹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필통에 꽂힌 붓을 보면 꺼지지 않는 촛불로 보이고, 붓걸이에 걸린 붓을 보면 발사를 앞둔 미사일로 보인다. 따라서 붓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자 외계에 대한 무한한 도전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예술 활동의 씨앗은 상상에서 나온다. 문학이나 회화는 물론 서예에서도 상상력(想像力)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 속에서의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예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근대화, 현대화 속에 서예가 할 수 있는 일은 특별히 없었다. 제4차 산업혁명 속에서 서예가 할 수 있는 자리는 더욱 좁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안에는 예술이라는 단어조차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인간은 유토피아로 가는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산업의 발달만큼 한쪽 측면에서는 핵폭탄을 몰래 만들고 있는 게 인간이 아니었던가.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하여 서예의 패러다임을 새로 짤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기대를 해보면서 제4차 산업혁명에 속내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생산적 활동을 산업활동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물적 재화의 생산과 더불어 서비스의 생산까지도 포함한다. 
산업을 분류하는 방법으로 1차, 2차, 3차 산업이란 클라크(Clark, C.G)식 산업분류에 해당한다. 제1차 산업은 농업, 임업, 수산업 등과 같이 토지와 바다 등의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얻거나 생산하는 산업으로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제2차 산업은 제조업, 건설업, 경공업, 중공업 등과 같이 제1차 산업에서 얻은 생산물이나 천연자원을 가공하여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에너지 등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제3차 산업은 상업, 금융, 보험, 관광서비스업 등과 같이 1, 2차 산업에서 생산된 물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거나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사에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해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을 산업혁명이라고 했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직물공업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온 것은 1차 산업혁명이다. 증기기관이 물러서고 전력이 대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면서 대량생산 시스템의 발달을 가져온 것은 제2차 산업혁명이다. 그리고 정보통신기술과 전자공학을 활용한 정보화가 가져온 거대한 흐름은 제3차 산업혁명이다. 이는 현재 일상화된 인터넷과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혁명이다. 고도화된 자동화와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우리 사회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른바 정보와 지식이 돈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은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현재 이후를 제4차 산업혁명으로 명명하면서 촉발되었다. 이 말은 아직 대부분의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로 정보, 의료, 교육 등의 지식 집약적 산업을 일컫는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미국의 ‘산업 인터넷’, 중국의 ‘제조 2025’ 등 이미 주요 선진국은 국가 전략을 수립해 이 혁명에 대비해 왔다. 3차 산업혁명 시대가 IT 발달이 가져온 자동화, 지식정보화사회였다면, 4차 산업혁명은 IT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가져올 초고도 지능정보사회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의 4대1 패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문명을 창조한 인간이 그 문명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의 일면이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 구도 속에 기계의 학습 능력을 알게 되었고, 몰려올 일자리 지형의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컸지만 2, 3차 산업혁명 때에도 인류는 이에 잘 적응해 왔듯이, 제4차 산업혁명도 지혜롭게 잘 돌파해 나가리라 믿는다. 결국, 이번 제4차 산업혁명으로의 진화 역시 또 한 차례의 인간의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해 본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에 의한 부의 축적으로 인해 빈부 격차가 심화하리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무직자가 늘어남에 따라 작업 시간을 나누어 맡거나, 아니면 새로운 분배방식을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육의 방법과 사회적 대응 방법을 온 인류가 함께 찾아야 한다.
예측은 물론 맞을 수도 있고, 때로는 빗나갈 수도 있다. 특히 사회 변화 예측에 있어 앨빈 토플러는 기업의 변화를 자동차 속도에 견주어 100마일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가정은 60마일, 정부 조직은 25마일, 학교는 10마일, 법은 1마일로 제시하였다. 학교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김진숙은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교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들의 적성과 흥미가 고려된 선택적 교육과정이 확대되어야 하고,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IT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교육의 효율성을 꾀해야 한다.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을 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현실 분석과 바람직한 미래 방향을 제시’ <월간교육> 2016년 7월호, ‘제4차 산업혁명과 교육의 역할’ 김진숙(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위원), p.104-113  
하는 것이 우리 교육계의 책임이라고 했다.
교육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서예 교육은 가장 낮은 단계이다. 시간적 효율성, 지식의 효율성도 뒤떨어진다. 아직도 3년 동안 점만 찍었다느니, 한일자만 평생 썼다느니, 쌍학명만 천 번 썼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비율적 학습을 했다는 얘기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IoT), 로봇,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기술이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CS) 등과 함께 융합 기술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제목의 숫자 4에 걸맞게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네 가지 질문이란 곧, ‘제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공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미래의 예술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이 아쉽지만, 셋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서예가의 처지에서 관심할 필요가 있다.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이 경제, 기업, 국가와 세계, 사회, 개인 등에게 미칠 영향으로 나누어 의견을 적고 있다. 이처럼 각 분야에 미칠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서예가 살아남을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저성장 시대, 고령화 사회의 도래이다. 이는 서예인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되리라 본다. ‘노령화에 따라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동시에 부양해야 할 노령인구는 늘어나게 되어, 고령화는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2016. p.59
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초고령화 사회에서의 서예는 더욱 건강하고, 오랫동안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따라서 저성장 고령화 사회는 미래 서예의 블루오션이라 생각된다.

둘째, 노동력의 위기 문제이다. 과학기술이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은 상존해 왔다. 광범위한 기술적 실업은 우리에게 노동을 절약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 대안을 서예에서 찾을 수 있다. 자동화에 따른 고위험 직업군으로는 텔레마케터(원거리 판매자), 세무 대리인, 보험 조정인, 스포츠 심판 등을, 저위험 직업군으로는 사회복지사, 안무가, 내·외과 의사, HR(Human Relation) 매니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서예는 마지막의 HR 매니저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셋째, 제4차 산업과 성(性) 격차의 문제이다. ‘컴퓨터, 수학, 엔지니어링 분야는 아직도 남성 노동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전문화된 기술적 능력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어남에 따라 남녀 성비 불균형의 격차는 더욱 악화할 것’ 앞의 책, p.81
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계가 채울 수 없는 부분, 가령 ‘공감과 연민 등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 기인한 역할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이란다. 심리학자, 치료사, 코치, 이벤트 플래너, 간호사 및 의학, 보건 분야에서는 여성이 훨씬 우세한 편이고, 여기에서는 서예 치료사 분야가 열려 있으므로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넷째, 파괴적 혁신과 기업의 문제이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짧아졌다. ‘S&P 500 지수’ S&P 500 지수는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Standard and Poors(S&P)이 작성한 주가 지수이다.
 편입 기업의 평균 수명이 60년에서 18년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페이스북은 창립 6년 만에 연 수익 10억 달러는 기록했고, 구글은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고작 5년이 걸렸다.’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 새로운현재, 2016. p.86
 오늘날과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파괴적 혁신의 속도와 발전의 가속화 현상을 받아들이기도,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가수와 연예인들의 인기 등락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그 수명이 짧아졌다. 싸이 효과도 이 중의 하나라고 본다. 그렇다면 서예도 예외일 수 없으므로 파괴적 혁신으로 민첩하고 혁신적인 역량을 갖추고 연구 창작을 해야 한다.

다섯째, 고객이 점점 더 디지털 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서예 속성은 아날로그적이지만 고객이나 작품 관리는 디지털화해야 한다. 카셰어링(car-sharing)처럼 서실도 책도 공유해야 할 시점이다. 예컨대, ‘2015년 11월 11일, 알리바바 그룹이 ‘싱글데이’라고 이름 붙인 이날에 전자상거래 온라인 거래 규모가 140억 달러를 넘었고, 이 중 68%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중국에 기반을 둔 모바일 문자 및 음성 메시지 서비스인 위챗(WeChat)의 경우 2015년 한 해 동안만 1억 5,000만 명의 사용자를 추가로 확보했다고 한다. 앞의 책, p.92-93


여섯째, 협력을 통한 혁신 문제다. 아무리 ‘나 홀로 창작 작업’이라 할지라도 작가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눠야 자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빅 데이터는 아니더라도 정보의 공유와 협력 정도를 해야 트렌드 리더 작가가 될 수 있다. 디지털화에 따른 운영 모델이 훌륭한 플랫폼(platform)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하는 작가가 되려면 ‘계층적 구조에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협력적 모델’ 앞의 책, p.102
로 점점 바뀌어야 한다.

일곱째, 제4차 산업혁명은 전자정부의 확대로 투명성 및 책임성이 향상되고, 국민과의 관계 강화는 물론 전반적인 업무 능력을 개선하고 있다. 온라인 전시회는 언제든지 가능하고, 24시간 문을 열어놓을 수 있으며, 불특정 다수에게 작품을 설명할 수도 있다. 잡음이 많은 공모전도 전자공모전을 도입하면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여덟째, 디지털 기술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관련 기업, 기관들이 일정 지역에 모여 클러스터(cluster)를 형성하고, 여기에서 정보·지식을 공유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하나의 건물로 영화관, 체육관, 소셜 센터,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도시 안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작품 전시장도 세미나장, 커피숍, 음악 감상실 등을 효율적으로 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하면 도시의 녹지 공간을 늘릴 수 있고,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의 상승을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홉째, 제4차 산업혁명은 개인적 삶의 열망을 실현하게 해 준다. 과거에 우리는 자신의 삶을 가족이나 고향, 또는 문화나 언어 등과 맞추어 살아왔었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한 관계가 등장하고, 타문화의 사고방식에 점점 더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이제 정체성은 과거에 비해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앞의 책, p.141
으로 변화했다. 이제 서예인도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자신을 관리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늘어나는 1인 가족 현상도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고 본다. 바야흐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점차 해체되고 초월적 개인주의 국면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외에도 드론, 자율무기, 우주의 군사화, 웨어러블 기기, 재생가능에너지, 나노기술, 생화학 무기, 소셜 미디어의 활용 등으로 국제안보에 많은 변화가 몰려올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영향으로 새로운 기술 혁명이 사회에 다중적 영향을 미치게 됨은 물론 ‘불평등 심화 가능성이 중산층에게 어떠한 압박을 가할지, 디지털 미디어의 통합이 공동체 형성과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앞의 책, p.148
에 대해서도 많은 궁금증을 초래한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서예는 절대 블루오션이다. 우리는 사생활을 제공하는 대신에 여러 기기를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의 풍요를 얻는 대신에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예가에서 가장 필요한 말을 여행작가 피코 아이어(Pico Iyer)가 자신의 책에 남겼다.
“가속화의 시대에서는 느리게 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집중을 방해하는 일이 많아진 시대에서 집중하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것은 없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큼 시급한 일도 없다.” 앞의 책, p.164

슬로우 아트 서예를 하는 사람에게는 고무적인 명언이다.

Ⅴ. 희망 서예를 위한 제언

역사시대 이래 문자권력의 정상에 서서 보람과 긍지로 살아왔던 서예가의 길이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와서 문자가 보편화, 일반화되면서 서예는 더는 자랑거리도 보람도 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금세기에 나타난 제4차 산업혁명을 보면서 서예 자체에 대한 존폐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서예학원에 학생이 들어오지 않는다. 대학의 서예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서예로는 밥 먹고 살기가 힘들다며 푸념을 털어놓는다. 분명 서예는 5천년 동안 검증된 예술인데. 그래도 나를 지켜주고 키워준 붓인데,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그 해법을 찾고자 서예가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보기 위해 발칙하고 다소 생뚱맞은 논제를 붙이고 며칠 밤을 새워보기로 했다. 결국,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지만.
지금까지 글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를 ‘문자권력’이라 이름 붙이고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며 서예가로서 대응 전략도 고심해 보았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여기에 대안으로 제시해 본다.

첫째, 서예는 장수의 비결이다. 서예가 건강과 힐링은 물론 장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신운동과 육체운동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예술활동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역대 대표적인 서예가 각각 24명을 선정하고, 그들의 평균 연령을 조사해 본 바로는 한국은 78세, 중국은 80세에 다다랐다. 계간 <문화예술비평> ‘서예와 장수’, 권상호, 2013 겨울호. 통일신라의 김생(金生) 81?, 고려의 탄연(坦然) 90, 이암(李嵒) 68, 조선 전기의 양사언(楊士彦) 68, 한호(韓濩) 63, 조선 후기의 허목(許穆) 88, 송준길(宋浚吉) 67, 송시열(宋時烈) 83, 이광사(李匡師) 73, 강세황(姜世晃) 79, 신위(申緯) 77, 이삼만(李三晩) 76, 김정희(金正喜) 71, 조광진(曺匡振) 69, 권돈인(權敦仁) 77, 이하응(李昰應) 79, 서병오(徐丙五) 74, 황욱(黃旭) 96, 손재형(孫在馨) 79, 김기승(金基昇) 91, 유희강(柳熙綱) 66, 김충현(金忠顯) 86, 정주상(鄭周相) 87, 김응현(金膺顯) 80세 등으로의 한국을 대표하는 24명의 서예가 평균 수명을 계산해 보니, 77.8세로 나타난다. 중국 서예가들에 대한 수명은 후한(後漢)의 채옹(蔡邕) 60, 중국 진(晉)의 왕희지(王羲之) 59, 왕헌지(王獻之) 45, 구양순(歐陽詢) 85, 우세남(虞世南) 82, 안진경(顔眞卿) 77, 유공권(柳公權) 88세, 송4대가로 채양(蔡襄) 56, 미불(米芾) 57, 소식(蘇軾) 65, 황정견(黃庭堅) 61, 원 4대가로 황공망(黃公望) 86, 오진(吳鎭) 75, 예찬(倪璨) , 왕몽(王蒙) 78, 명의 심주(沈周) 83, 문징명(文徵明) 90, 청의 주답(朱䐛) 80, 석도(石濤) 80, 정섭(鄭燮) 73, 근대 중국의 오창석(吳昌碩) 84, 제백석(齊白石) 95, 당대의 서동(舒同)과 계공(啓功) 94세로, 이상 24인의 평균수명은 79.7세이다.

중국 CCTV 채널4 토크쇼에 왕웨촨(王岳川) 왕웨촨(王岳川), 베이징대학(北京大学) 중문계(中文系) 교수
이 출연해 고승(高僧)의 평균 수명은 66세, 역대 황제의 평균 수명은 39.2세이지만 고대 저명한 서예가의 평균 수명은 78.9세(우리식으로는 79.9세)임을 밝힌 바 있다.

둘째,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하는 스마트 서예가가 되자. 서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은 스승이다. 스마트폰은 자전(字典)이다. 스마트폰은 서진(書鎭)이다.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무선 통신으로 인터넷 접속이 쉽고 휴대하기 간편하며, 전 세계 서예인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준다. 스마트폰을 잘 이용하여 스마트 라이프를 즐기면 스마트한 아티스트, 곧 ‘똑똑한 예술가’가 된다.

셋째, 라이브 서예를 즐기자. 나, 지금, 여기서 근골이 아우성친다. 붓꼴림을 어떡할 것인가. 듣는 사람이 없으면 노래가 되지 않듯이 보는 사람이 없으면 글씨가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서예 작품은 모두 라이브 서예였다. 박제된 서예가 아닌 현장 서예의 즐거움, 이것이 서예의 본령이다. 예술의 트렌드는 바뀌었다. 문자에서 이미지로 다시 동영상으로... 서예전은 적어도 동영상이 전시되거나 라이브를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제된 서예전이다. 싸이를 탄생시킨 유튜브를 기억하는가. 융합, 통섭, 크로스오버 등 새로운 문화예술 아이콘으로 서예로 앞날을 힘차게 밝히자. 필요한 것은 열정(熱情)이다. 열정도 재능이라 했다.

넷째, 능동적 자세로 ‘다가가는 서예인’이 되자.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주변에 글자가 많이 보인다면 문명화된 곳이다. 그 속에 붓글씨가 보이는가? 흔하지 않다면, 모두 우리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 간판 글씨, 광고 카피 등등, 모두 서예인의 몫이었는데 우리 스스로 포기하고 나서, 서예가 죽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미안하지만 서예작품이라는 말 대신에 서예상품으로 접근해 보자. 당신 소비자라면 얼마에 구매할 것인가? 서예 시장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구상을 해 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혁신은 기술과 디자인 및 예술의 놀라운 합작의 결과물이었다. 서예상품의 소비자는 있는가. 있다면 그들은 누구인지 찾아내고 또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의 취향을 잘 살피고 그에 따른 상품을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서예도 고객을 분석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순수서예만 고집하지 말고 실용서예도 관심해야 한다.
 
여섯째, 서예도 재미있어야 한다.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로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란 말이 있다. 재미가 없으면 교육 효과도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서예도 엄숙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에도 오락을 붙여 ‘캘리테인먼트(callitainment)’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린이들에게 서예 전도가 가능하다. 어른이라도 교훈적인 내용만 고집하면 재미가 덜하다. 가끔 풍자적인 내용도 섞어야 한다. 붓질에서든 장법에서든 유머가 섞여야 맛인 세상이다. 영어서예, 무대서예, 야외서예, 음악서예, 무용서예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도 서예에 재미를 더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로봇이 기사를 작성하고 소설을 쓰며,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모두를 들뜨게 한다. 융합의 시대에 아우르는 서예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 장르와의 융합이 절실하다. 전통의 묵수만으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보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가 다가오는데 무슨 붓 타령이냐 하겠지만, 컴퓨터든 붓이든 손으로 일궈낸다는 의미에서는 똑같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디지털에 아날로그적인 것을 입히고 아날로그에 디지털적인 것을 입힌 새로운 문화 키워드로 디지로그(digilog)를 주창하고 있다. 차가운 디지털과 따뜻한 아날로그의 조화로운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디지털화될수록 붓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文化)란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른 성과’를 일컫는다. 문화(文化)를 문(文)과 화(化)로 구분해 보면, 문화란 글[文]로써 인간[人]을 변화[匕]시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음성언어시대에서 문자언어시대로, 문자언어시대에서 이미지 시대로, 이미지 시대에서 동영상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싸이를 만들어낸 것도 결국 유튜브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싸이의 명성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예를 소재로 한 일본 영화 한 편이 있다. ‘서도(書道) 걸즈(girls) - 우리들의 갑자원(甲子園)’이 그것이다. 서예를 일본에서는 서도라고 한다. 갑자원 즉 고시엔이란 야구 리그 결승전이 벌어지는 경기장(약 육만 명 수용)이나 고교 최강을 가리는 리그전을 뜻한다. 이 영화에서는 야구 대신에 여러 학교의 서도부 학생이 참가하는 서예 리그전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불경기로 침체한 전통마을을 살리기 위해, 서도부(書道部) 고딩들이 서예에 음악을 접목해 ‘서도 퍼포먼스’를 펼친다.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라는 데에 더욱 관심이 고조되었다. 2시간 1분짜리 성장 드라마를 숨죽여 가며 끝까지 뜯어보았다. 무겁고 큰 붓으로 펼친 마지막 퍼포먼스 내용이 ‘재생(再生)’이라서 더욱 가슴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영화가 끝날 즈음, 가슴은 뭉클하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입은 희망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를 두고 공감(共感)이라 하는구나. 우리가 꿈꾸고 실천해 오던 라이브 서예를 이웃 일본에서 벤치마킹(benchmarking)이라도 해 간 것인가.

눈에 보이는 것은 빼앗아갈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빼앗아갈 수 없다. 작가의 몸속에 내재한 지식이나 예술 코드는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다. 우리 몸에 숨어있는 예술 코드를 창조 정신으로 끌어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창조 정신은 풍요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1960년대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 등의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과학과 인간 복리의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국제학술기구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그렇다. 신(神)은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은 예술을 창조했다. 지금 우리는 서예의 새 길을 창조하고자 한다. 원래 서예의 길은 문자권력이란 표지판을 단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막힌 길은 뚫고, 좁은 길은 넓혀야 한다. 없는 길을 만들기도 하지 않는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

[이 게시물은 권상호님에 의해 2016-10-07 13:12:17 도정동정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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