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64- 독도 아리랑

독도 아리랑

도정 권상호

 

대한민국 동쪽 끝에는 독도가 있다. 그곳에는 두 개의 큰 섬, 동도와 서도가 있다. 독도는 대한민국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다. 독도는 한민족 75백만 명의 눈이 24시간 머무는 곳이다.

2012 8 1, 음력으로는 만월(滿月)을 하루 앞둔 유월 열 나흗날, 이날은 마침 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한데, 동도의 정상에 오른 기적 같은 날이었다. 독도에 가더라도 부두에 배를 댈 수 있는 확률, 곧 접안율(接岸率) 5분의 1밖에 안 되고, 두 시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정상에까지 오르고 섬 전체를 둘러보는 일은 더구나 쉽지 않은 일이다. 하늘과 바다가 한 빛이고 숲 속의 호수처럼 물결이 잔잔하여, 바다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기막힌 날씨와 정상에 오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나에게 오다니……. 수십 년을 내다보고 이 몸을 낳아 주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I love mom and Dokdo Korea!

우리의 뒤를 이어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독도를 방문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우리는 사전 답사라도 한 셈이 되었다. 사실 당일 저녁에 울릉도 저동에서 개최되는 회당문화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출연진과 기자들이 동행한 자리였다.

이번 독도 기행은 대한불교 진각종에서 개최하는 ‘2012 회암문화축제’에 출연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성사되었다. 행사 전의 로고 글씨 제작과, 개막 이벤트로서 ‘라이브 서예’ 공연을 하기로 했다. 내심으로는 출연료보다 독도 방문에 관심이 더 쏠렸다. 울릉도는 최틀러라는 별명을 가졌던 모 당의 총재님과 경주에 계시는 소천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울릉도 여행은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독도 여행은 하늘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접안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 3일의 일정이었지만, 서울 출발이 새벽 3시 반인 점을 감안하면 3 3일이나 다름없었다. 동덕여자대학교 주차장에서 여름 새벽을 가르며 아침에 도착한 곳은 묵호 여객터미널이었다. 8 20분쯤에 울릉도 도동 행의 썬플라워 2호에 올랐다. 8백 명이 넘게 탈 수 있는 큰 배로 3시간 반쯤 걸려서 도동항에 도착했다.

해변이 모두 깎아지른 절벽이라 울릉도는 커다란 케이크를 연상케 한다. 홍도가 천사의 섬이라면 웅장하고 신비로운 울릉도는 신선의 섬이다. 홍도가 다소곳한 신부라면 울릉도는 위풍당당한 신랑이다. 

배에서 내리자 회당문화축제 홍보를 위한 도우미들의 플래시몹(flash mob)에 피로도 잠시, 정해진 숙소에 짐을 풀고 일단 샤워부터 마쳤다. 도동항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VIP룸을 배정받아 이따금 드나드는 배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낚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렷다. 울릉도에서 첫 점심은 한정식. 입안에 감도는 부지깽이나물과 명이나물의 향기가 이곳이 울릉도임을 실감 나게 했다.

성인봉 등산은 다녀온 바 있기 때문에 오후에는 육로 관광을 선택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도동을 출발, 사동, 통구미, 예림원 등을 거쳐 나리분지를 다녀오는 코스이다. 황토굴, 거북바위, 사자바위, 삼형제봉, 노인봉, 송곳바위, 코끼리바위, 풍혈, 나리분지……. 그 빛깔과 형상을 규정지을 수 없다. 수직의 산세와 수평의 바다가 이루는 절묘한 비경을 바라보며, 오르고 내리는 길에 이 몸은 마치 괭이갈매기라도 된 듯 한 기분이다.

울릉도 꽃으로 화사한 나리꽃을 빼면 말이 안 된다. 울릉도 술로서 씨껍데기술을 빼면 우습게 된다. 제주도 명주가 조껍데기술이듯 울릉도 명주는 온갖 씨를 발효시켜 만든 씨껍데기술이 제격이다. 나리분지에서는 너와지붕의 옛집을 보고, 감자전에 씨껍데기술을 맛보지 않고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도동으로 돌아오는 길은 석양의 비경을 안고, 한 시간쯤 달려왔을까. 또 다른 식당을 찾았다. 더덕홍합밥과 따개비밥을 달리 시켜서 함께 먹었다. 내일이면 독도를 만나리라는 생각에 가방에서 화선지와 먹물을 꺼내고 오지 않는 잠을 붓질로 달랬다. 

아침 일찍 서둘러 울릉신항으로 가서 울릉군에서 내 준 ‘독도평화호’를 탔다. 노랫말처럼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시작의 땅이다. 시작이 없으면 과정도 끝도 없게 된다.

독도의 위치가 동경 131.5°, 북위 37.1°에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독도가 대한민국의 시작의 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아침을 여는 땅이라는 사실이 소중하다.

독도가 보인다! 누군가의 탄성에 모두 동요하기 시작했다. 설렘마저 잠재울 듯 바다는 너무나 조용했다. 동도와 서도가 서로 위용을 자랑하듯, 장군처럼 우뚝 서 있었다. 우선 뱃길로 독도를 한 바퀴 돌아본 뒤에 부두에 배를 대기로 했다. 울릉도 사투리로 '' ''을 뜻한다. 그럼, 독도는 돌섬의 의미로구나. 장독의 ‘독’이라 해도 좋다. 대는 없으니 적어도 ‘다케시마[竹島]’는 아니다.

  저것 좀 보게! 동도 왼쪽에 녹색의 대한민국 지도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른바 ‘한반도바위’는 독도 스스로 자신의 국적을 밝히고 있다. 얼마나 너의 출생 비밀을 의심하는 놈이 있으면 아예 몽고반점을 파랗게 찍고 태어났니.

섬 주위를 반 바퀴 돌아들자, 서도가 나타난다. 서도 한편에는 민가가 보인다. 막 고기잡이를 마치고 귀가 중인 배가 그림같이 미끄러져 들어간다.

  드디어 배를 댄다. 무사히 접안을 하고 차례로 내려서 동도를 오른다. 입구에는 석류알처럼 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정바위가 있는데, 일찍이 의용수비대원들이 이 바위에 칼을 갈았다 하여 ‘숫돌바위’라 부르기로 한단다. 나무계단을 한참 오르자, 두 달에 한번 수거된다는 우체통이 이채롭다. 우체통 앞에는 태극기와 함께 '대한민국 KOREA'를 새긴 표석도 보인다.

여기가 정상이다! 독도의 정상에 서서, 나는 한국의 두 눈, 독도를 마주 보고 있다. 내가 편안히 잠자고 따뜻이 먹고 지냄은 바로 대한민국의 두 눈, 독도 네 덕분이었구나. 24시간 잠들지 않고 독처럼 우뚝 서서 결코 지칠 줄 모르는 독도, 절대 누울 줄 모르는 독도, 언제나 서 있기에 ‘섬’이라 하지 않는가... 너는 대한민국의 수문장이로다.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어도 너는 나를 용케도 지켜왔구나. 고맙다.

울릉도로 돌아오는 길, 선상이라 배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붓을 잡고 흔들림 없는 독도 사랑의 시를 썼다. 그리고 그날 저녁 커다란 축제는 어김없이 열리고, 무대에서 나는 대붓 퍼포먼스를 펼쳤다. ‘독도 아리랑’, ‘진호국가(鎭護國家). 이 두 폭을 음악과 함께 써서 무대 양쪽에 걸어 올렸다.  

독도에 해가 떠오르면 대한민국은 ‘아침 햇살이 선명하게 비춰주는 곳’이 된다. 이를 한자어로는 ‘조광선명(朝光鮮明)’이라 하고, 또 줄이면 바로 ‘조선(朝鮮)’이 된다.

세상사 모두 잊고 생활의 여백을 찾아 바쁜 시간의 물살을 가르고 찾아간 신비의 섬, 독도.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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