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료

판소리와 풍속화 그 닮은 예술의 세계

판소리와 풍속화 그 닮은 예술의 세계

판소리와 풍속화, 그 닮은 꼴 미학의 배경

조선사회가 국가적인 부흥을 이룬 시기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때로 숙종과 영조 그리고 정조 연대에 해당된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인 성장을 배경으로 문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은 이 시대의 특징적 사회현상이다. 숙종과 영․정조 시대에 일어난 문예 부흥은 군주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이 상당 부분 호흡을 같이 하면서 전 국가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중인 계층과 신흥부민층이 문예 취향의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많은 문예 장르 중에서 판소리와 풍속화는 당대 문예 부흥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장르로 시대의 분위기를 최첨단에서 호흡하면서 당시의 인물이나 삶의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하나의 예술로 형상화했다.

판소리가 청각 예술이자 언어 예술이라면, 풍속화는 시각 예술인 차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판소리에서 회화적 상상력이 강하게 발동되고, 풍속화에서 삶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판소리적 감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서로 간의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와 풍속화의 경우, 조선 후기 사회 전반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실체에 다가가기가 어렵다.

조선 시대 중인 계층은 상층 양반사대부 문화권과 하층 문화권의 접점에 위치하면서 두 문화권 사이의 교류를 촉진시킨 집단이었다. 그들은 통청운동을 통해 양반사대부들과 지적으로 동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신분의 한계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펴지 못했던 중인 계층은 실학과 같은 신흥 학문으로 무장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기에 현실 대응 능력은 오히려 훨씬 더 뛰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몇 안되는 중인 가문이 도화서 화원자리를 세습적으로 독점하면서 당대 회화 전통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들의 문예적 관심은 우리 전체 문화를 평준화하고 단일화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조선 전기부터 양반 사대부 사이에는 향락을 즐기는 분위기가 있어 음사라고 비판했던 성악곡을 연락에서 향유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를 거쳐 후기로 가면서 중인 계층이 급격하게 축적된 그들의 부를 주체할 길 없이 방탕한 소비 지향으로 빠져 향락과 유흥의 풍조가 퍼지게 되었다. 이것은 서민 계층까지 확산되어 판소리를 중심으로 기호가 일어났다.

이 시대는 관념적인 것의 한계를 자각하고 반성한 시대로 실학 정신 내지는 사실주의 정신이 곳곳에서 요구되었다. 판소리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안고 등장한 신흥 문예 양식으로 전라도 巫系(무계)에서 나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굿의 예능공간에서 항상 주변인 또는 보조인으로 소외되어 있던 봉상재인들은 과거 급제자들이 볼이는 聞喜宴(문희연)이나 三日遊街(삼일유가)에 뽑혀 재능을 뽐내고 보수를 받았다. 판소리는 이와같이 나례행사와 관련된 일련의 패턴에서 분비되고 성장하고 발전한 것으로 빠른 장단과 가락의 복잡한 구조를 반영하는 신흥 문예장르였다. 17세기 중엽 박남이라는 자가 나례의 소학지회에서 하던 극적연회에 창이 포함된 것이 판소리의 초기 형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판소리는 봉상재인들이 서울과 호남을 오가면서 오랜 기간동안 사설과 기예를 부단히 연마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기호에 맞는 예능 종목이 되었던 것이다. 영조 때에는 판소리가 어전 공연이 되었으며 내용과 형식이 매우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었을 것이고 유식한 문구의 상층담화도 유창하게 수놓아져 있어서 양반사대부가 듣고 감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회화는 관념에서 현실로 눈높이를 낮추어 卽物寫眞(즉물사진)과 曲盡物態(곡진물태)의 사실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풍속화는 영정조와 순조 시대인 18세기와 19세기 초반에 걸쳐 크게 유행한다. 그동안의 기록화의 정례적인 틀과 정형화의 엄격한 패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운이 일어났는데 이같은 경향은 풍속화나 진경산수화의 유행에 앞서 그 전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풍속화의 태동을 예고하는 중요한 문인 화가로서 공재 윤두서와 관아재 조영석을 들 수 있다. 윤두서는 정계에서 소외된 남인계 재야 지식인으로 그의 그림에는 화본풍의 중국식 잔영이 남아 있었으며 조영석은 문인 화가로서 현장을 실사하는 즉물사진의 창작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화원을 중심으로 유행의 정점에 서게 된 풍속화에는 유교의 위선적이고 금욕적인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본능과 욕망을 긍정하려는 서민 정신이 발현되어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감각적으로 느끼고 수용한 화원의 의식세계의 반영이기도 하다.

 

1. 판소리에 나타나는 회화적 상상력

회화는 문학의 창작과 관련하여 작가에게 무수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어떤 작가는 특정 그림을 소재로 하거나 특정 그림의 영향을 받아 창작의 방향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 한시 양식의 하나인 題畵詩(제화시)는 회화를 보고 느낀 감회를 표현한 문학양식이다.

동시대를 호흡하면서 유사한 사회문학적 에토스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고, 그것이 비슷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동시대의 문학과 회화가 서로 닮는 현상이 벌어진다. 문학과 회화와 같은 이종 장르 간에도 間(간)장르적 상호 텍스트 현상이 존재한다. 문학과 회화 사이의 간장르적 상호텍스트의 경우, 매체의 차이 때문에 간접적이고 은밀한 상상력이 작용할 것이다.

이 글은 판소리의 대표인 동시에 회화적 상상력을 가장 강하고 포괄적으로 작동시키는 작품인「춘향전」에 나타난 회화적 상상력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은 중국의 유명한 인물의 고사를 소재로 한 그림인 고사인물도를 자신이 기거하는 방에 붙이길 좋아했다. 이런 부벽 도화 취향은 여염간에 확산되면서 고사인물도를 비롯한 민화 성향의 그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당대를 풍미한 부벽 도화의 유행의 한 켠에 춘향 방의 부벽도화도 놓여 있다. 그곳에 붙은 고사인물도 외에 春畵(춘화)는 그 시대의 유행 풍조가 반영된 것임에 틀림없다. 사벽도 사설이나 부벽 사설에서 행해진 것과 같은 묘사적 진술이 「춘향전」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고, 그것이 회화적 상상력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다.

「춘향전」과 조선 후기 회화는 유사한 정황적 상상력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혜원 신윤복의 일련의 춘의도류의 풍속화도 상당한 동질성을 보여준다. 「춘향전」과 춘의도가 똑같은 性(성)에 대한 탐닉과 풍류적 성향을 지니고 있음은 이들이 당대의 유흥문화적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인 계층이 대부분이었던 한량들은 통청운동과 문필력의 습득 등을 통해 양반 신분이 되고자 노력하다 좌절되자 그들이 축적한 부로써 세상을 즐겨보자는 풍류 의식에 젖어드는 경향이 있었다. 천민 계층의 광대가 노래하고 중인 계층의 패트런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판소리에 이런 취향이 반영된 것은 물론이고, 중인 계층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당시의 풍속화에도 그것은 고스란히 화폭에 담기게 되었다.

실제로 그러한 호사스러움을 현실화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림으로나마 대리만족하고자 하는 경향은 여염간에 크게 유행했다. 그래서 정원과 연못의 정경을 그린 화조도라든가 문방구류를 그린 책거리 그림들이 방 안 여기저기에 걸린 것이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이와같은 집 안 치장 풍속과 부벽도화 취향은 당대에 이루어진 경제력 향상의 산물이다.

판소리 사설은 대상을 사실성에 기반하여 묘사하는 만큼, 대상의 실제 모습을 상당 부분 유추하는 것이 가능하다.

당대에 발흥했던 실학 정신과 맞물려 여러 분야에 확대 재생산되었을 기록화적 상상력은 당대에 많이 그려진 지도에도 반영되어 있고, 또 생산도구의 설계도와 같은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실학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또 다른 예술 양식인 판소리에도 이 기록화적 상상력은 어김없이 끼쳐져 있다.

 

2. 판소리와 풍속화의 구조상 닮은꼴

판소리의 시점은 다성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시점을 마구 섞어놓았으며 온갖 이질적인 목소리들의 집합이라 할 만한 판소리의 광대는 일인다역의 연출자이며 ‘모방 충동‘이 엄청나게 강한 예술인이다. 역할 모방을 엄격히 구분하여 인물의 시점과 여러 서술자의 시점들을 착오없이 완벽하게 운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혼자 수행하는 판소리 광대의 연행 임무에 비추어 볼 때 무척 어려운 일이나 인물의 목소리 섞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판소리 사설에서의 시점 혼합 현상과 비슷한 현상이 조선 후기 회화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림은 액자 외부 시점을 지배적인 틀로 하되, 거기에 하나하나가 그 나름의 시점을 대상을 보고 느낀 액자 내부 시점들을 사이 사이에 배치함으로써 이루어진다.이를 판소리에 비하자면 액자 외부의 시점은 서술자의 목소리에 해당하고 액자 내부의 시점은 극중 인물의 목소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 서술자의 목소리에 극중 인물의 목소리가 항상 개입하듯이, 풍속화나 심경산수화에서도 액자 외부의 시점에 액자 내부의 시점이 빈번하게 끼어드는 것이다. 판소리와 조선 후기 회화에서의 시점 혼합 현상의 이면에는 당대의 사회역사적 상황이 놓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아의식이 성숙되고 각자의 목소리가 표출되던 시대로 판소리의 등장 인물들은 눈치 볼 것 없이 하고싶은 말을 아무데서나 해대고 있고, 회화 속의 각 물상들도 자기 고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판소리는 ‘하나의 주어진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규칙적으로 채용되는 단어군‘이라고 하는 포뮬라의 전시장이다. 특히 ‘더늠‘이라고 하는 창자들이 자신의 특장으로 삼는 대목이 있는데, 판소리를 포뮬라의 산실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더늠이다. 더늠은 상황이 유사하다면 같은 작품에서도 여러 번 사용될 수 있고 다른 작품에까지도 그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관용적인 표현군이다. 포뮬라는 판소리 뿐만이 아니라 민화나 풍속화에서도 나타난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상호 텍스트성은 완전히 똑같은 포뮬라에서부터 유사한 모티프의 차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풍속화도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모범적인 선례가 있으면 그것을 모방하고 차용하는 것을 매우 선호했다는 사실이다. 판소리와 풍속화, 그리고 민화에서 관용적 포뮬라가 많이 사용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 유발 방식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전대와 당대의 일반 고소설에 비해 서술자의 설명이 축소된 반면 움직이는 대상에 대한 역동적인 묘사는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상을 클로즈업하여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풍속화에서도 선호하는 것이다. 대상의 사실주의적 정밀묘사는 당시 화단에 성행하던 화풍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진경문화의 바탕정신과 연관될 뿐 아니라 실학의 정신과도 그 맥을 같이한다.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겠다는 의식은 우리 것을 긍정하는데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판소리에서 활력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이 모두 서민 또는 천민이듯이 풍속화의 동적 제재의 대상도 거의 시민 또는 천민인 것이다.

판소리가 살아 숨쉬는 듯이 인물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풍속화가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역동적인 선으로 묘파해내는 경향은 당대의 현실을 보는 변모된 사유방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사회의 역동적 구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결과, 기존의 관념에 안주하던 세력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동적인 세계관 또는 역동적 사유방식이 확산되었으며, 문학과 예술장르에도 그러한 패러다임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판소리에서 희화화 방식을 강화하게 된 동기는 연행상의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청중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학을 지향하는 과장적 묘사는 연창자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비판과 풍자의 기운을 함유하는 골계의 중요한 또 다른 축이 바로 해학적 웃음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도 판소리와 같이 인물의 희화화를 통해 세상을 풍자한다. 그런데 그림에서의 희화화 방식은 인물의 표정과 행위에 주로 집중되어 나타난다.

조선왕조는 정치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고 서민층은 당시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자아의식에 눈뜨게 되었고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인간의 이중적인 면모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이 보편화되었다. 이런 시각의 전환이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 희화화 방식을 확산시킨 배경이 된 것이다. 대상을 희화화하는 시각은 당대인들의 희작화 경향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체제가 수용하지 못하는 잉여지식인들이 대거 방출되었고 그들은 문자의 유희를 즐겼다. 희작이 유행하게 되자 세상의 불평객들이 자신의 비판 의식을 담을 수 있는 희작에 대거 참여했던 것이다.

판소리에는 유교사회에서 금기시하고 억압했던 性談論(성담론)이 빈번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설시조와 민요,잡가,야담 등에도 나타나지만 탈춤과 판소리에 특히 잘 나타난다. 풍속화에서도 성적 노출이 심하게 나타난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 약간의 춘의가 느껴지더니 신윤복의 일련의 풍속화에 이르러서는 강도 높게 춘의를 발동시킨다. 국가적인 통치력이 추락한 상태에서 성본능에 대한 담론이 물꼬를 트자, 성담론은 걷잡을 수 없이 높은 수위까지 치달았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반감과 항거의 정신과 결합하여 상승 효과를 배가시켰다. 춘화를 포함한 춘의도류는 문학에서의 노골적인 성적 표현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 그리고 유흥문화가 난잡해지고 성담론이 개방화되는 추세에서 등장했다는 점도 판소리나 사설시조, 그리고 휘몰이 잡가등과 흡사하다. 당시 성담론의 확산은 하층민들이 지배 권력에 항거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3. 광대와 화공의 지향 의식 및 그들의 후원자들

판소리와 조선 후기 회화가 동질적인 성격을 갖게 된 배경은 그 예술의 담당 주체인 광대와 화공이 상당 부분 동질적인 성격이나 지향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현대의 연행 예술이란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조율되어 있고, 판소리는 판소리 나름의 과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판소리가 이들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판소리가 청․관중에게 던지는 현대적 의미가 항상 존재한다는 점이다.

판소리 광대의 층차는 매우 복잡하여 전국적인 인지도, 신분이나 계층, 사승관계, 특장 레퍼토리 등에 의해서도 각종 층위가 설정될 수 있다. 천민 출신의 광대에서부터 사대부 출신의 양반 광대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계급상의 층차도 광범위하다. 판소리 광대의 삶은 일종의 한맺힌 삶이다..소리 자체가 한맺힌 소리다.

조선시대의 화가는 크게 보면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가치관이나 이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양반 사대부 화가, 도화서라는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세화나 의궤 및 초상 등의 관용 그림을 그리는 벼슬아치 화가, 즉 화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오면 그림 수요가 폭증하면서 무명 서민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패트런은 장인을 고용하여 예술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사람, 예술을 애호하고 장려하는 고용주 또는 주문자 정도의 의미가 된다. 판소리와 조선 후기 회화는 고용주나 주문자 이외에도 그 예술에 영향을 끼친 주변 인물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들을 포함하지 않으면 판소리와 회화가 제작된 동기 및 과정 그리고 그 예술의 성격 파악이 어렵게 된다.

조선 후기 왕들은 이름난 명창들을 불러들여 어전 공연을 하게 하고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판소리의 경우 조선 후기 왕들의 패트런적 성격은 애호 감상의 차원이라고 생각된다. 왕의 판소리 관람이라는 사건은 양반 사대부들이 판소리에 환호하고 심취하게 된 결정적인 기폭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판소리를 애호했던 최고 권력층 가운데 특이한 존재가 한 사람 있는데 그가 바로 흥선대원군이다. 대원군은 애호 차원을 넘어 판소리의 후원자 내지는 후견인의 역할을 했다.

회화에서도 왕이나 왕족들의 패트런으로서의 역할은 판소리에서와 같이 대체로 애호 감상의 수준에 머문 것이 아니라 한 걸은 더 나아가 후원자 또는 후견인의 역할까지 자임하고 있어서 회화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회화의 소장자 내지는 감평자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 안평대군이 있었기에 안견이라는 화가가 존재할 수 있었으며, 예술을 애호하고 화원을 제도적으로 육성한 영조와 정조가 있었기에 김홍도와 같은 도화서 화원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판소리의 가장 큰 수요자가 양반 사대부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양반 사대부들의 판소리 향유는 어떤 식으로건 그들의 개입이나 간섭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를 발전과 성행의 계기로 보는가, 아니면 굴절과 왜곡의 단초로 보는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소리를 알아주는 안목과 그에 대한 신뢰가 맺어져 양반 사대부와 소리 광대 사이에 깊은 유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양반 사대부들의 조언은 판소리 사설 속에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된다.

지방의 향리들과 외아전들은 판소리 광대를 양반층에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야산이나 정자가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소리판에서 명창을 찾아내어 감사나 지방의 수령 방백들에게 소개해주는 형태였다. 신재효 또한 아전으로서 광대들을 선별하고 조언하고 지도했던 통인청의 아전들보다 판소리의 연행 방식과 광대의 형질화에 더 깊숙이 간여한 인물이다. 판소리의 패트런으로서 중인층은 철저하게 물적 보상체계에 의해 예능을 사주는 방식에서부터 판소리 광대의 지도 및 교육, 그리고 후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패트런의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 후기에 서화 애호 풍조는 양반 사대부 이외의 계층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서들 사는 곳 재상집 같아 도서와 완물이 방안에 가득하니 어찌 취미로 풍속을 옮길 수 있으리. 모두가 유행 탓에 풍속을 버렸다“고 비판한 신위의 말은 중인층으로 확산된 서화수장 풍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판소리 패트런으로서 서민계층은 지방의 토호부민, 한량, 일반 대중 이렇게 세가지 층위의 서민을 상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일반 대중들은 판소리의 물적 보상체계 바깥에 위치하는 특수한 종류의 패트런이다. 판소리 광대가 명창으로 명성을 높이게 되는 기반은 바로 이 일반 대중의 관심과 호응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민 계층은 판소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시절에도 계속 판소리를 돌본 유일한 세력이었기 때문에 판소리의 패트런으로서 소중한 존재다.

조선 후기 회화의 패트런으로서 서민계층은 판소리와 달리 풍속화와 민화가 크게 유행하면서 나중에 형성된 패트런 집단이다. 서민 계층이 회화에 접근하게 된 것은 국가 경쟁력의 상승으로 유락 풍조와 호사취향이 만연되어 집안을 장식하고 치장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고 실용적인 성향으로 변화한 문예의식과 예술적 심미안, 그리고 느슨해진 신분제도로 예술 향유에서 계층의 구분이 희미해진 상황 변화가 계기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향락 소비 풍조가 만연하고, 이에 따라 자신의 기예를 파는 일을 업으로 하는 예능인이 출현하게 되자, 예술은 餘技(여기)의 산물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대두했다. 아마추어리즘의 시대가 가고 프로페셔널리즘의 시대가 온 것이다. 광대들은 예술적 성취욕이 강한 집단이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은 한으로 삭혀져 소리에 담겼고 그것은 예술혼으로 승화되었다. 광대들은 태생적 기반이 천민이어서 신분 고착에 대한 반감이 더욱 강했다. 그러나 당시 나타난 신분 제도의 이완 현상은 광대들에게 획득 신분에 대한 꿈을 갖게 했다. 광대의 출세욕은 판소리의 기본 성격을 적잖게 규정했다. 양반들의 인정과 비호를 받기 위해 그들의 성향에 맞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상층민이나 지배 권력의 부정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비판과 풍자를 직설적으로 생경하지 않게 해학적인 웃음 속에 적절히 용해시켰다. 투박함에 의해 생성된 발랄한 서민 정신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판소리인 것이다. 조선 후기 화가 중에서 사대부 문인화가와 서민 출신의 일반 화공들의 지향 의식은 어느 정도 분명한 선이 그려질 수 있다. 그러나 풍속화를 많이 그렸던 도화서 화원들의 의식 지향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예술가의 고뇌라든가 고독한 영혼의 문제 같은 것을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나 최북도 순응과 불만의 이중적인 의식세계를 가지고 갈등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화원들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추고 우리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소중함으로써 실경산수화를 활짝 꽃피울 수 있었고, 새 시대의 역동적인 흐름을 감지함으로써 그것을 풍속화 속에 역동적인 구도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4. 판소리와 풍속화에 나타나는 시간과 공간의 성격

모든 예술작품에는 그것이 허구적이든 사실적이든 공간과 시간이 존재한다. 시간과 공간의 성격이 역사적인 시기별로도 다르고 예술의 장르별로도 다른 것은 시․공간이 인간이 역사의식이나 예술인식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일 것이다.

판소리와 풍속화에 나타나는 동질적인 시․공간 구조를 파악하고자 전 시대의 문장체 고소설과 문인화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 살펴보기로 한다.

문장체 고소설에 나타나는 시간의 양상은 하늘에서 주어진 숙명적인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인생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근차근 진전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판소리에 나타나는 시간은 전혀 숙명적이지 않다. 고소설의 독자는 등장인물의 삶의 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운명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지만 판소리 소설의 독자는 등장인물의 미래사를 알 수가 없다. 판소리 소설에서 작용하는 시간은 각 개인들의 불확실한 시간이다. 판소리 소설들의 인물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아둥바둥대고 조바심을 내며 살아간다. 미래는 불확정의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시간강박관념에 걸려 있음으로써 시간은 매우 구체적인 양상을 띠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림에 나타난 시간의 양상을 살펴보면 문인화 속에는 순환 반복되는 정적인 시간이 흐른다. 문인화는 원거리 포착 방식을 더 선호하며 구성적인 특징인 여백도 시간을 정적으로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 또 문인화는 점묘와 먹의 농담을 활용하여 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한다. 그러나 풍속화에는 동적인 시간이 흐른다. 인간군상을 클로즈업 기법으로 확대 포착하는 풍속화의 세계에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잘 드러난다. 근거리에서 세속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인물의 형상만을 포착하여 제시한다.

풍속화에는 인물의 표정도 클로즈업되어 크게 나타나는데 각 개인의 세속적인 욕망의 모습을 표출하게 함으로써 풍속화 화면 속의 시간을 개인사적인 시간가 연계하여 매우 역동적ㅇ로 만드는 요소가 된다. 문인화가 점과 먹의 농담을 주로 사용했다면 풍속화는 선이 중요한 표현기제가 된다.

문장체 고소설에 나타나는 시간은 현실과 꿈이 뒤엉킨 몽환적인 시간이다. 현실이 꿈 같고 꿈이 현실 같은 세계다. 「금오신화」와 「구운몽」그리고 수많은 몽유록계 소설들에 나타나는 시간은 「운영전」과 비슷한 몽환적인 시간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문장체 고소설에 보이는 시간은 추상적인 시간이다. 시간적이 배경이 어느 때건 간에 사건이나 인물과 유기적인 관련을 맺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판소리 소설에 나타나는 시간의 모습은 문장체 고소설의 경우와 달리 매우 현실적이고 역사적이다. 판소리의 소설은 모든 상황이 현실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에 흐르는 시간은 역사적인 현실이 되고, 그럼으로써 개인들의 시간은 훨씬 더 생생한 현실감과 질량감을 갖게 된다.

문인화에 나타나는 시간은 초월적이고 초역사적인 시간이며 자연의 순환과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반복되는 시간이다. 문인화에 보이는 자연 경물이 탈조선적이며 인물의 의복이 중국풍인 점도 문인화의 초역사성을 부각시킨다.

문인화와 달리 풍속화에는 역사적인 시간이 듬뿍 들어 있다. 상상 속에서 재구성된 이념산수가 아니라 卽物寫眞(즉물사진)이고 曲盡物態(곡진물태)다. 진경산수화에는 실경을 실사한 흔겅이 역력하며, 풍속화도 실경을 찾아 화면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그 배경적 요소들에게 역사적인 시간이 진하게 묻어난다. 풍속화의 화면에는 역사 현실의 시간이 질량감있게 흐른다.

문장체 고소설에서는 권위적인 서술자에 의해 시간이 조절되고 통제된다. 서술자는 중앙통제 방식으로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어하는데, 그에 따라 시간 또한 정확하게 흘러가고 배분된다. 또 균질적인 시간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와 달리 판소리 소설에서는 개인의 개별적인 시간이 주로 적용됨으로써 시간은 매우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인다. 판소리 소설에서 흔히 말하는 ‘부분의 독자성‘이나 ‘장면 극대화‘는 이러한 개인의 개별적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개인의 자유분방한 시간인식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천차만별로 형상화한ㄴ 원동력이 된다.

시간의 운동 방향이 문인화에서는 구심적이라서 역사 현실의 이야기들이 화면 속으로 흡입되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풍속화 속의 시간은 원심적인 운동을 통해 확산되어 나가는 경향을 보여 좁게는 그려진 피사체 인물의 생활로, 넓게는 그 인물이 살고 있는 당대 사회로 확산되는 것이다.

문장체 고소설에 나타나는 공간은 탈속의 공간이며 현실적인 공간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구운몽」이나 「운영전」은 그렇다 하더라도 「숙향전」이나 「홍길동전」에서도 공간 의식의 측면에서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판소리 소설에서 나타나는 공간은 한마디로 세속 공간이며 현실적인 공간 감각으로 느껴지는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일상공간에서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군상과 사건들이 모두 거기에 있다. 그리고 고증이 가능할 정도로 대부분 현실 공간을 토대로 하고 있다.

문인화에 배경으로서의 공간은 한마디로 초월적 공간이나 풍속화의 공간은 현실 공간이며 문장체 고소설에 나타나는 공간은 유교적인 윤리의식이 지배하며,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행해지는 이념적 공간이고 판소리 소설에 나타나는 공간은 물질적인 공간이다. 판소리 소설에서는 이념적 공간이 패러디를 통해 양반을 격하시키는 장소가 되는 경향이 있다. 작가의 시각이 개입되어 서술 대상을 바판하기도 하고, 웃음을 유발함으로써 연행적인 효과를 증대시키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문인화의 이념은 근원적으로는 유교 이념이지만 거기에는 도교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어 있다. 문인화 속의 이념적 공간들은 표면상 물질적인 공간과 전혀 관련을 맺고 있지 않다. 그럼으로써 공간적 구성이 한가롭고 긴장이 풀린 느슨한 관계를 보여준다. 반면 풍속화의 공간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의 현장이 전경에 나타난다. 문인화가 전체가 풍기는 이념적 정조를 통해 정신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풍속화는 부분들간의 기하학적 분배와 서로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물질적이고 질량적인 것을 추구한다.

문장제 고소설에서는 서술 주체와 서술 대상과의 내적거리(내적 공간)가 비교적 먼데 반해 판소리 소설에서는 서술 주체와 서술 대상과의 거리가 다양하게 설정되어 있다.

이제 그림에 나타나는 내적 거리의 성격을 살펴보면 문인화에 적용된 시점은 대체로 원거리 조감 시점이다. 화폭에 담긴 자연은 아주 광활한 영역에 걸쳐 있어 인간의 세밀하고 역동적인 형상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관념의 세계에 친숙해 있고 현상들을 종합적으로 관조하려는 사대부들의 이념적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에 풍속화는 묘사 주체와 묘사 대상간의 내적 거리가 무척 가깝고 현실의 물질적인 문제와 애욕의 문제를 선택하고 구성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판소리와 풍속화는 상당히 유사한 시․공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초월하여 작용하는 동시대적인 호흡과 정신사적인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5. 그림을 닮은 판소리의 언어

회화성을 강화하는 담화적 특징들로 묘사와 대화 그리고 설명을 들 수 있다.

설명은 회화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지 못하며 대화에서도 ‘상황 묘사형 대사‘는 회화성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의 형상 묘사‘에 버금가는 회화적 성향을 보여줄 수 있다. 설명이나 대화에 비해 회화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진술 방식은 묘사다. 이상은 서사체에서 사용되는 진술 방식을 하위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회화성의 정도를 가늠해 본 것이다. 문장체 고소설과 「춘향전」에서 어떤 진술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회화성의 정도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설명의 대폭 감소와 묘사의 대폭 증가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춘향전」담화가 갖는 회화적 성격은 문장체 고소설에 비해 크게 강화되었으리라고 추론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춘향전의 회화성은 어휘의 성격에 따라서도 좌우되리라 생각된다. 회화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어절들은 ‘색채소+형상소+동작소‘가 결합된 형태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춘향전」의 경우는 거의 모든 대목의 진술에서 형태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거니와, 시각소의 분포가 문장체 고소설에 비해 한층 확대되어 있음으 볼 수 있다. 「춘향전」의 담화들은 관념어에 비해 형태어의 사용 빈도가 높고, 형태어 주변의 시각화 맥락도 강화되어 있음으로써 회화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문장체 고소설에 보이는 시각소들은 관용적이 표현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환기하는 회화성은 도무지 진부함 때문인지 시각을 무디게 자극할 따름이다. 이에 반해 눈앞에 현재 장면을 그리도록 유도하는 표현들은 판소리 사설의 담화적 특징이다. 「춘향전」은 시각소의 하위 구성요소인 색채소의 사용이 관용적이지 않고 참신하다거나, 동작소가 매 구절마다 적절하게 사용됨으로써 장면을 여실하게, 그리고 회화적으로 표현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춘향전」에도 관념론적인 비유는 상당히 많이 산재되어 있다. 하지만 문장체 고소설에 비해 관념성을 탈피한 시각을 자극하는 참신하고 구체적인 비유의 비중의 훨씬 높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춘향전」에는 문장체 고소설보다 훨씬 다양한 시각 매개어들이 시각적인 환기력의 증대를 앞장서 유도하고 있으며, 묘사적 진술의 성격에 있어서도 시각 환기를 통한 회화성이 문장체 고소설보다 훨씬 강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적 인식론 내지 세계관은 「춘향전」이 보여주는 묘사 대상의 물질화 경향과 어느 정도 궤적을 같이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질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몇몇 실학자들에 국한된 논의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론적 현상이었다. 당대인의 사물에 대한 관심은 판소리 문학에서뿐 아니라 동시대의 예술 장르인 회화영역에서도 잘 나타난다. 관념산수화에 비해 풍속화에는 사물에 대한 당대인의 관심을 반영하여 온갖 생활도구들이 등장한다. 그만큼 실물적 관심이 대두되었다는 증거인데, 그 바탕에는 실학과 관련된 물질주의적 인식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시각 기능의 증대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이 되어 문학과 회화의 묘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된다. 회화에서는 우리 산천을 직접 사생한 실경산수화가 유행하고, 우리의 인물과 풍습, 의습 등을 표현한 풍속화가 성행하게 되었다. 특히 판소리는 전통적인 성음의 세계에 바탕을 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시각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혜안을 발휘함으로써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판소리와 풍속화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당대인들의 인식론적 동향에 대한 하나의 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의 사회 전반은 중인 중심의 유흥문화가 번져나갔고 실학정신, 물질주의 또는 실용주의로 시각의 틀을 조정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당대에 등장한 연행 예술인 판소리와 시각 예술인 풍속화에 소재적 원천으로서, 또는 정신적 배경으로서 집약되어 있다. 그만큼 판소리와 풍속화는 시대에 예민하게 반응한 예술양식이다.

판소리와 풍속화가 닮은 꼴인 것은 두 예술이 서로를 닮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판소리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시각적 감각 체계를 풍속화에서 빌려오려 했고, 풍속화는 삶의 생생한 역동성과 율동적 구성을 판소리에서 배우고자 했다.

17세기와 18세기의 판소리와 풍속화에는 적어도 실험정신과 장인정신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고, 따라서 이 두 예술 양식은 당대 문예 부흥의 선봉에 설 수 있었으며 조선 후기 시대정신의 좌표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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