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9- 직업(職業)과 일자리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9
직업(職業)과 일자리

직업은 인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늠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교유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관심을 두는 점은 그 사람의 직업이다. 이와 반대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서로 다툴 때도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라며 직업을 따지게 된다. 관계 설정에서 우리는 왜 상대의 여러 정보 중 직업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걸까. 그것은 직업을 알면 그 사람의 관심 분야와 재능은 물론 가치관과 생활수준까지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이란 말은 오늘날 한·중·일에서 함께 사용하고 있는 단어이다. 우리의 경우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이나 조선의 <세조실록> 등에 ‘직업(職業)’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 말의 탄생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사용이 흔하지 않음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신분이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의 하나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으로 본다.

직업(職業)의 사전적 의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이다. 따라서 임시적, 단기적 개념이 강한 아르바이트(Arbeit)는 직업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직업을 줄여서 ‘직(職)’ 또는 ‘업(業)’이라고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직(職)은 ‘사회적 지위’를, 업(業)은 ‘생계를 유지하는 일’을 뜻한다.
‘벼슬 직(職)’은 ‘귀 이(耳)’와 ‘새길 지(戠)’의 합자로, 본뜻은 ‘귀로 들은 소리를 창끝으로 새기다’이고, 여기에서 ‘기록하는 행위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의 뜻으로 발전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戠)’ 자는 무언가를 꼭 기억하기 위한 ‘메모’의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을 기억하기 위하여 적는 일은 ‘알 식(識)’이고, 나무를 박아 영역을 표시하는 일은 ‘말뚝 직(樴)’의 몫이다. 지식(知識)이라 할 때는 ‘알 식(識)’이지만, 사람 이름 밑에 쓸 때는 ‘적을 지(識)’로 읽어야 한다.
‘벼슬 직(職)’ 자를 보면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귀(耳)의 소중한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로는 상관의 말을, 아래로는 백성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이를 잘 기록하여(戠) 선정에 힘쓰라는 교훈이 들어있다. 나랏일을 살피는 ‘관청(官廳)’도 백성의 말을 잘 들으며 다스림에 힘쓰라는 의미에서 ‘귀 이(耳)’ 자가 들어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벼슬 직(職)’은 ‘귀로 들은 것을 기록하다’에서 출발하여 ‘잘 알다’가 본뜻이며, 나아가 ‘벼슬, 직책, 지위’ 등의 뜻으로 의미 확장이 이루어졌다.
누구나 다 귀가 두 개인 것을 보면 양쪽의 말을 균형 있게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국회 청문회장의 각 의원께 ‘청문(聽聞)’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주고 싶은 이유이다. 양반집에서 잡일을 맡아보던 사람을 ‘청지기’라 하는데, 이는 ‘청직(廳直)’과 상통한다. 청지기 역시 상전의 말만 들어선 안 된다. ‘귀 이(耳)’ 자에 ‘두 이(二)’가 들어있음은 놀라운 일이며, 두 글자는 발음도 서로 같다. 그렇다면 ‘눈 목(目)’과 ‘코 비(鼻)’ 자 속에 들어있는 ‘두 이(二)’ 자의 비밀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일 업(業)’은 ‘여러 개의 갈고리가 달린 나무틀’의 상형으로 지금 봐도 튼튼한 옷걸이를 닮았다. 이 글자는 많은 물건을 걸어 둘 수 있는 도구에서 출발하여, 편경(編磬)이나 편종(編鐘)과 같은 무거운 악기를 거는 도구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학업(學業), 공업(工業), 산업(産業), 직업(職業) 등에서 보듯이 업(業) 자가 ‘일’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업(業) 자의 다양한 유용성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직업을 순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일자리’ 정도 되겠다. ‘일자리 절벽’이라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밥통이 떨어졌다’라는 말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음을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말인데, 이로 보면 ‘일자리’란 용어는 적어도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을 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일자리를 잃게 됨을 더러는 ‘밥줄이 끊어졌다’라고도 하는데, ‘밥줄’이 ‘식도’의 뜻임을 감안하면 일자리의 의미가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우리 주변에 밥줄이 끊어질까 봐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살아가는 답답한 이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자리를 ‘얻기도, 옮기기도, 버리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일자기를 ‘잃거나, 빼앗기기도’ 한다. 하기야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자리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권력으로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은 아무래도 대통령일 것이고, 능력으로 줄 수 있는 사람은 각 기업의 대표와 고용주일 것이다.

<용비어천가> 제1장에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라는 말이 나온다. 일은 ‘복된 노동’이다. 또 ‘이루다(成)’의 어근 ‘일’은 명사로서 ‘일(事)’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일의 목적은 이룸에 있고, 이룸이란 뜻하던 일의 완성에 있다.
우리말 ‘일’의 어원은 무엇일까. ‘일찍’이란 부사, ‘일어나다’란 동사를 살펴보면 ‘일’의 어원은 ‘해 일(日)’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수렵, 농경사회에서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일을 놓았다. 혹여 달이라도 밝으면 일손을 ‘놓고’ 함께 ‘놀게’ 되는데, 여기에서 ‘놓다’와 ‘놀다’도 동원어로 볼 수 있다. 해와 함께 일어나 일하고, 일손을 놓으면 놀게 됨은 삶의 진리이다. 서녘 하늘에 ‘놀’이 지면 일과를 마치고 ‘놀’ 때가 되어 성찬과 함께 놀이마당이 펼쳐지는데, 그렇다면 ‘놀’과 ‘놀다’도 상관이 있지 않을까.
부정부패를 ‘일삼아’ 저질러 오던 관리에 대한 적폐(積弊) 청산의 기치가 올랐다. 부정한 일을 반복할 때, 우리는 ‘일삼다’라는 표현을 쓴다. ‘일삼다’라는 단어는 ‘일 같지 않은 일을 일로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고어에서 ‘일벗다’는 ‘도둑질하다’의 뜻인데, ‘일’에서 ‘벗어나(脫)’ 할 수 있는 짓은 도둑질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서양에서 직업(일)의 의미는 종교 개혁을 기준으로 달라진다. 종교 개혁 이전에는 직업을 ‘속죄’나 ‘노동’의 의미로, 이후에는 ‘소명(召命, 신의 부르심)’이나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직업의 의미는 경제적 보상을 통한 ‘생계유지’와 자아실현을 위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전문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실업대란’을 방치하면 국가재난 수준의 ‘경제위기’가 다가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11조 2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 처리를 당부하며, 이를 통해서라도 고용을 개선하고 소득 격차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 청년실업은 국가재난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고, 우리는 한 세대 청년들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금을 쏟아 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타당한지는 깊이 있게 따져 봐야 한다. 노동개혁과 공공부문 일자리 줄이기로 ‘프랑스 개조’를 외치는 마크롱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는 나라 곳간을 헐다 국가 부도를 당한 그리스를 닮아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나라 곳간에 항산(恒産)이 없으면 국민의 항심(恒心)도 사라질 것이다. 맹자의 말이 되새겨지는 시점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권상호
http://www.fantizi5.com/ziyuan/
권상호
http://www.ftizi5.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