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서예 단상

  기록(記錄)은 영생(永生)이다몸은 한 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 끝내 썩고 말지만그 몸이 남긴 기록은 죽지 않고 오래 남는다.

인간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말과 행동단 두 가지뿐이다붓을 잡고 글을 쓰는 일은 의지적 행동에 해당한다말도 어쩌다 구비(口碑)로 남기도 하지만 휘발성이 강하여 내뱉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그러나 글은 붓을 놓는 순간 한 획도 사라지지 않고 탄생 때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남는다문학 속의 가공인물이든역사 속의 실존인물이든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인물은 기록에 의해 기억되는 자들이다.

기록의 도구도 칼키패드 등으로 바뀌어왔지만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칼이나 붓이다방촌(方寸)의 차가운 돌 위에 칼로 새긴 뜨거운 전각(篆刻)이나순백의 종이 위에 붓으로 쓴 글씨는 그 자체로서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예술로 남기 때문이다글이 예술의 옷을 입으면 서예(書藝)가 된다서예의 진정한 가치는 지필(紙筆상봉의 찰나들이 모여 문사철(文史哲)의 아카이브(archive)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그래서 서예는 먹으로 저장한 타임캡슐이다.

글을 안다는 것은 절대 권력이었다말하자면 문자권력(文字權力)이었다일찍이 글은 신성(神性)이나 권력(權力)의 상징이었다왕조가 바뀔 때마다 혁명이란 이름으로 문자권력을 먼저 휘둘렀다아무나 가까이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다다행히 오늘날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유의 글이지만 글로써 시험을 치고 선택받으며글로써 인간의 삶을 축적해 간다는 점에서 보면 여전히 글의 위력은 막강한 게 사실이다.

서예는 순간순간 감지되는 느낌의 흔적들이다하지만 아무 내용이나 쓴다고 해서 다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오랜 세월 동안 보존해 둘 만한 가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서예는 자신의 기록이기도 하지만더러는 고인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관 속에 들어가면 어차피 푹 쉴 텐데여생에도 편히 쉴 생각은 추호도 없다물보다 진한 피를 닮은 먹물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오늘은 북송(北宋)의 주돈이(周敦頤선생을 만나기 위해 먹을 갈았다코로나로 굳은 몸을 달랠 겸그분이 들려주는 애련설(愛蓮說)을 노래로 들으며 나는 붓을 들고 초서(草書)를 위한 변주를 시작해 볼까 한다.

이미지를 붓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서미화(書美化)’라 이름 붙여 본다서미화는 찰나의 집합 과정이다서예의 진정한 힘은 찰나를 사는 데 있다라이브 서예를 즐기는 오늘의 나를 두고, 100년 후에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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