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용필법 소고(권창륜)

 用筆法小攷 

                                                                 권창륜

        <目 次>

        1. 緖

        2. 形質 및 節奏

          가. 點劃의 美

          나. 疾澁

          다. 運筆의 節奏

        3. 結 語



        1.緖

        書法예술은 많은 流派와 風格을 나타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表現形式도 매우 多彩롭고 豊饒롭다. 각종 書體와 예술적 風韻 및 時代精神에

        이르기까지 千門萬戶의 琳琅이 눈에 가득하게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각자의

        風貌를 자랑하고 있다.


        비록 流派가 다르고 風格이 다르지만 모두 다른 意竟美를 表出해 내고 있다.

        近來의 白蕉 先生은 "五岳의 風景은 달라도 모두가 아름답고 五味의 맛도

        다르지만 모두가 독특한 맛이다. 百川의 물줄기도 流派가 다르지만 모두 바다로

        흘러간다. 蘭竹은 淸幽하며 木芍은 향기가 아름답고 古松은 奇堀하며 수양버들

        아리다워 모두 다 아름다움을 갖춘 物象들이라." 라고 말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書法이 多書體, 多流派, 多風格의 表現예술이며 결코 어떠한

        절대적인 예술기준에 얽매어 있지 않고 있음을 미루어 알게 된다.

        옛부터 지금까지의 서예사에서 十全十義의 서예가는 하나도 없었다.

        비록 歷代에 있어서 公認된 書聖 王羲之의 초서를 사람들이 비평하기를 " 格律이

        높지 않고 功力 또한 많지 않으니 비록 圓豊姸美하다 해도 역시 神氣가 缺乏 되고

        창날과 같은 날카로움이 없으며 物象의 奇妙한 생동감도 없다." 張懷瓘은

        <書議>에서 말하기를 "逸少의 草書는 여자같은 才能만 있지 大丈夫의 氣慨가

        없으니 대단한 것이 못된다." 고 하였으며 또한 그는 <書斷>에서 "王右軍의

        行書는「古雅不逮」"(옛스럽고 雅淡하지 못함) 하다고 貶下하고 있다.


        물론 評者들의 鑑識眼 및 欣賞 기준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비평을 할 수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書法예술의 風格이 모든 面을 다 갖추고

        곳곳에서 照應을 이루며 完全無缺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뛰어나면 다른 한 분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宋代의

        미불은 행서를 沈著痛快하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썼으나 含蓄蘊藉 함을 잃고 있어

        "氣焰殺人"을 면키 어렵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그의 書法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조금이라도 淳雅한

        風格을 벗어나면 곧 輕薄한 書風으로 점점 빠져 들어간다.", "힘차고 매서우며

        기이하고 늠름하나 끝내는 어느 한쪽으로 偏向되는 誤謬를 범한다." 라고

        <書林藻鑒>에서 말하였고 歐陽詢의 楷書는 險勁하고 날카롭고 매서우며 法度가

        森嚴하지만 또한 "溫秀함을 잃고 淸雅함이 缺如되었다." 라고 南唐의 李后主는

        말했다. 미불 또한 歐陽詢을 비웃어 말하기를 "歐陽詢의 書法은 마치 지금 막

        병을 얻은 사람처럼 顔色이 憔悴하고 擧動이 어려운 듯 하다." 董其昌의 행서는

        天眞爛漫하며 雅淡하고 자연스럽지만 역시 雄强함을 잃고 있다. 淸末의 康有爲는

        동기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譏評하였다. "香光은 비록 명성을 많이 얻었으나

        마치 굶어서 바짝 마른 道士처럼 神氣가 寒儉해 보인다.", "멍에를 멘 망아지

        처럼 속전되어 활기가 없고 겁이 나서 벌벌 떠는 모습은 結婚한지 갓 3日되는

        새색씨 같다."


        이상에 열거된 書藝家들은 역사상 모두 大名家들인데도 이러하니 하물며 일반

        수준의 書藝家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글씨를

        배움에 있어서 거의 모두가 편승지폐(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에 빠져들기

        쉽다고 생각하였다. 대체적으로 蒼勁한 者는 老禿에 빠져들기 쉽고 雄强한 者는

        粗疏를 잃기 쉬우며 秀媚한 者는 경조에 가까워지기 쉽고 險絶한 者는 狂怪에

        빠지기 쉬우니 書法예술은 모든 면을 골고루 갖추고 無缺完美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한 반면 書法예술은 그 表現形式이 풍부하고 多彩롭기 때문에

        우리들로 하여금 無限探求의 魅力을 갖게 하고 새로운 예술의 높은 봉우리로

        등반하도록 이끄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格物致知하는 方法은 書法도 마찬가지 여서 어느 한 法度나 이치를 實踐하여

        認識에 이르고 다시 그 認識에서 새로운 이치를 추리하여 實險해 보는 考究의

        過程을 거쳐야 至高至純의 奧妙한 風格과 神韻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法"은 深厚한 功力과 숙련된 筆墨의 기교에서 생겨나고 "意" 는 作家의 예술적

        소양과 심미의 취향에서 생겨난다.

        法을 도외시한 意趣의 表現은 書法이 아니다.

        書法예술은 筆法․筆勢․筆意의 세 부분으로 나눈다.

        筆法은 科學的인 指法과 腕法, 身法, 用筆法 및 墨法등의 筆墨의 技巧를, 筆勢는

        점과 획 및 점획간의 타당한 조직 및 글자와 글자간의 行間의 承接呼應 관계를,

        筆意는 書寫中 表現되는 자연의 情趣와 文雅의 氣度 및 作家의 高貴한 人品을 그

        영역으로 한다.

        筆法과 筆勢는 글씨의 技法이며 筆意는 書法예술의 本旨이다.


        이상에서 거론된 書法의 三大要素는 어디에서나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논의되는

        書法예술의 重要한 관건이 되고 있는 점들이다.

        본고에서는 그 중에서도 서예 表出의 관건이 되는 用筆方法의 한 분야를 論하고자

        한다.

        多樣한 用筆方法 가운데에서도 점과 획의 形質美를 表現해 내는 重要한 方法의

        하나인 疾과 澁 및 運筆의 節奏에 대한 서술이다.


        2. 形質 및 節奏

        唐의 張懷瓘은 <玉堂禁經>에서 「夫書第一用筆, 第二識勢, 第三裏束.」이라 하여

        用筆을 書法의 最優位로 指目하였다.

        筆法을 또한 用筆이라 稱하기도 한다.

        이는 毛筆을 사용하여 如何히 글씨를 쓰느냐 하는 方法을 지칭한 말로써 執筆과

        運腕의 方法, 점획의 형태적 연구 및 점획간에 있어서 筆毫가 適宜하고 타당하게

        作用하는 法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문자는 점획의 組積으로 이루어 진다. 그 문자의 美를 추구하는 書法예술은

        구성요소의 基本元素인 점획을 원활하게 이루어 내는 要諦가 用筆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書法家들은 用筆法을 매우 중요시하여 「書法以用筆爲上,

        而結字亦須用工.」(元, 조맹부) 이라 하여 用筆을 書法의 最上으로 지칭 하였다.


        用筆의 방법은 執, 使, 轉, 用이다. 執은 붓을 잡는 법이며, 使는 運筆, 轉은

        行筆에서의 轉折呼應이며, 用은 점획의 按排結構法이다.

        孫過庭은 <書譜>에서 이르기를 『執爲長短淺深, 使爲縱橫牽체, 轉爲鉤環盤紆,

        用爲點劃向背.』라고 하여 四者의 職能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가. 點劃의 美

        書法예술은 點劃의 美, 結構와 章法의 美, 意竟의 美로 나누어 지며 그 중에서도

        가장 基本的인 要素를 지니고 있는 것은 점획의 美인 것이다. 점획의 美는

        形態美, 形質美, 動態美의 三個部分을 包括하고 있다.

        書法藝術을 欣賞的 角度로 보면 總體的으로 形體美와 意竟美로 兩分된다. 質은

        形속에 包含된 바탕이다.

        이는 書法을 形體와 結構로서 연구하는 "造形藝術"로 認定하게 되어 『盖書,

        形學也.』 (康有爲<廣藝舟雙楫>)라 하였고 또 다른 하나의 관점은 書家의 內心에

        있는 情感을 表出舒發하는 "意象藝術"로 認定하여 『言, 心聲也. 書心劃也.

        聲劃形, 君子小人見矣.』(漢, 揚雄.<法言, 問神卷第五>)라 하여 聲劃의 여러 가지

        상태에 따라 사람의 內在한 心性이 들어 난다고 하였다. 사실상 書法藝術의 美를

        구성하는 要點은 形과 意 二者中 하나라도 缺如되면 不可하다. 唐의

        張懷瓘은『筋骨立形, 以神情潤色.』이라고 하여 形과 神이 兼全하여야 神馳가

        興會하고 情感上의 共鳴을 얻는다고 하였다.


        歷代의 書法理論家들은 書法의 形體와 사람의 形體를 同一觀點으로 보았다. 또한

        意竟美가 그 사람의 神情, 氣質, 個性등과 密接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書品上에서 경조부골, 端莊大方, 淸麗秀雄, 敦厚拙朴, 風度瀟泗, 氣勢雄偉,

        剛毅嚴肅, 平淡自然, 含蓄蘊藉, 神態畢露등의 여러 가지 風格으로 表出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一個人의 體相과 心象이 書相으로 나타나 각기 다른 體態와 意竟이

        달라진다. 劉熙載는 <藝槪>에서 『書者, 如也, 如其學, 如其才, 如其意, 總之曰,

        如其人而己.』라고 하여 글씨 곧 人格의 總體로 보았다. 글씨의 結體나 人體는

        같다. 마치 手足의 구성조직은 同一하나 움직이는 姿態는 모두 다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원리에 의거하여 書法을 비유해 보면 한 획을 잘못 그으면 壯士의 한 팔이

        꺾인 것과 같고 한점을 잘못 찍으면 美女의 눈이 애꾸가 되는 경우와 같아서

        書法에서는 筋骨血肉을 形學의 基本 틀로 삼고 있는 것이다. 먼저 骨體의 모양을

        갖춘 연후에 精神을 추구해야 한다. 骨格이 成立되면 자연히 重心平穩하고 筆力이

        정오 하며 體勢가 堅定하면서 纖弱하지 않게 되며 나아가 骨格은 억세고 기운은

        용맹하며 근육은 豊富하면서 힘이 內在한 書藝의 感興을 받게 된다. 骨法用筆은

        書法의 根幹이며 祖宗이다. 骨이 서지 않으면 筋肉이 붙을 수 없으며 또한 一體의

        神情意態가 表露될 수 없다.


        나. 疾澁

        "疾澁" 이란 점획의 形質美를 表現하는 重要한 方法의 하나이다. 이는 高難度의

        用筆方法으로써 質感있는 점획과 意味있는 風韻이 含蓄蘊藉되어야 하며 그 表現이

        비록 朴實하면서도 外飾이 없고 內在律은 藏骨抱筋되고 含文包質 되어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무한한 餘韻을 남기고 千古에 賞音되는 名品이 되는

        것이다.


        澁筆의 前提 조건은 中峰運筆을 基本으로 한다. 한획내에서 頓挫, 輕重이

        느껴지고 획의 上下兩面에 鱗狀의 起伏이 있어서 매우 굳세고 정오하며 또한

        沈着渾厚하다. 또한 忠實한 內容과 豊富한 筆意가 들어 있음을 감지케 한다.

        黃山谷이『筆中有物, 如禪家句中有眠.』이라고 한 것과 같이 반드시 점획가운데

        事物의 形象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包世臣은 『書家名迹,

        點劃往往不光而毛.』라 하여 부골경조하지 않아야 되며 또한 整體는 平直하면서도

        局部는 起伏이 나타나는 山川流峙로 形容하기도 하였다.


        運筆할 때 平拖過去하면 無起伏의 扁薄한 점획이 되어 骨格과 立體感이 없고 먹은

        종이에 파고 들지 않으며 線條가 光滑하여 意趣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韓方明은 〈침필요설〉에서『不澁則險勁之狀無由而生, 太流則便成浮滑,

        浮滑則是爲俗也.』라 하였다.

        이는 古人들이 제기한 "寧澁勿滑"을 귀하게 여기는 바다.

        그러면 어떠한 方法으로 澁的 運筆法을 터득할 것인가?


        一般的인 說로서 初學者는 먼저 느리게 運筆하는 것부터 익혀야 한다. 한점한획의

        起筆과 行筆 및 收筆하는 過程중에서 提按, 육좌, 往復의 動作을 취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蔡邕은〈九勢〉에서『澁勢, 在于緊앙戰行之法.』이라고 명쾌하게

        澁筆을 규정하고 있다.

        소위 緊이란 緊迫, 收緊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앙이란 짧게 재촉하는 것으로서

        勢가 빠른 것을 말한다. 또한 戰行이란 對抗 및 相爭으로서 摩擦的인 뜻을 갖고

        있다. "緊앙戰行" 이란 곧 運筆할 때 있어서 逆勢로 나아가는 것이며 鋒前筆後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鋪開한 필두와 紙面이 서로 對立하여 摩擦動作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한걸음 한걸음 쫓아서 頓挫하되 回顧하는 筆意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고

        경솔하게 되면 滑過가 된다.

        이러한 상태를 劉熙載는 <藝槪>에서『用筆者皆習聞澁筆之說, 然每不知如何得澁.

        惟筆方欲行, 如有物以拒之, 竭力而與之爭, 斯不期澁而自澁矣.』라고 澁進의

        方法을 定確히 表現하였다.


        이는 마치󰡒수레를 끌고 비탈진 절벽의 다리 위를 미끄러지면서 내려갈 때 수레를

        끄는 사람은 그 반대 방향으로 힘을 버텨 주어야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치와 같다.󰡓이때에 내려갈려는 作用力과 反作用力의

        對抗이 곧 澁筆의 方法이다.


        옛사람들이 항상 "역수탱주󰡓,󰡒장년탕장󰡓,󰡒長錐界石" 이라고 한 것은 澁勢를

        生動感있게 比喩한 말이다.

        包世臣이 <藝舟雙楫>에서『余見六朝碑拓, 行處皆留, 留處皆行. 凡橫劃平過之處,

        行處也. 古人必逐步頓挫, 不使率然徑去, 是行處皆留也.』

        라고 한 것은 하나의 점획도 반드시 모두 澁筆을 써야 한다고 力說하고 있다.

        따라서 狹義의 澁은 運筆의 高低起伏에 의하여 점획의 兩邊이 미끄럽지 않고

        金石氣가 나타나야 骨氣十足하면서 自然히 창경정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做作的으로 灣灣曲曲하게 하여 마치 蛇蚓之態를 나타내면 절대로 아니된다. 또한

        一邊은 光滑하며 다른 한 邊은 톱날같은 剝之狀을 만들게 되면 이는 澁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매우 可笑로운 것이 된다. 이상과 같은 運筆方法으로서 오래오래

        연마하면 筆法은 숙련되며 調鋒動作은 自然스럽게 된다.


        蔡琰은 그 아버지 蔡邕의 <論筆法>을 記述하는 가운데 『書有二法, 一日疾,

        一日澁, 得疾澁二法, 書妙盡矣.』라 하였으나 疾과 澁이란 用筆의 가장 어려운

        一對 矛盾體이다.


        用筆이 너무 쾌활하면 곧 浮滑되기 쉽고 따라서 勢는 澁하지 못하다. 반면에 너무

        澁慢하면 筆勢가 凝滯되기 쉬우므로 勢는 疾하지 않다. 用筆이 澁勢를 이루게

        되면 筆勢는 또한 敖해져서 中峰運筆로서 풍실주경한 純熟의 筆力을 얻게 된다.


        疾은 단순히 快速的인 運筆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勢疾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勢가 빠르면 곧 澁하게 되기 때문에 󰡒疾澁의 妙󰡓라는 것은 適宜한

        澁進을 하면 點劃은 마침내 飛動하면서 凝滯之勢가 없게 되는 것이다. 流動的인

        筆勢가 되려면 自然히 往復의 疾的 감각을 띠게 된다.

        가히 中鋒筆力과 速度로서 筆毫와 紙張이 摩擦하는 것이 疾澁의 筆勢를 나타내는

        重要한 條件이 되는 것이다.


        顔眞卿의 行書墨迹인 <祭姪稿>는 筆力이 주경한 것이 마치 錐劃沙와 같고

        郁勃頓挫하고 字勢가 飛動하여 疾澁의 妙法을 얻은 가장 아름다운 典範이라

        하겠다.


        다. 運筆의 節奏

        用筆의 美는 다만 形態와 形質의 表現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同時에 그것들의

        動勢를 表現해야 한다. 우리들이 한 幅의 아름다운 書藝作品을 고요히 감상할 때

        종이 위에 停止된 字形 가운데서 一種의 動態的인 美가 나타나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自然界의 모든 사물은 모두 움직이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마치 舒展하는 구름,

        흔들거리는 수양버들, 長空中에서 빙빙돌다가 날세게 먹이를 잡아채는 숫매의

        勇猛함, 大地를 힘차게 구비쳐 흐르는 江河, 風雨, 雷電, 奔驥, 驚蛇. 龍飛,

        鳳翔, 虎臥와 같고 사람으로 말한다면 坐臥, 行立, 奔走, 歌舞, 戰鬪 等의 形象이

        모두 書法의 神情과 意趣와 妙하게 서로 닮아 있다. 따라서 紙面 위에 停止된

        字形으로 하여금 天機流蕩하고 神彩飛動하는 生氣가 흘러 넘치는 動勢의 變化를

        주어야 한다.

        王羲之 <喪亂帖>가운데 󰡒痛當󰡓 두 자를 보면 리듬과 律動感이 長江의 힘찬 물

        흐름과 같아서 迫進感있는 動勢를 느끼게 한다. 또한 呼吸의 開閉를 잘 활용한

        抑揚과 流暢한 筆勢, 어느 한곳으로 偏重되지 않는 重心, 鋼鐵같은 線條의 强性을

        지니고 있다.

        한 가락의 樂曲과 詩歌는 高低長短과 徐疾의 旋律로서 듣는 이로 하여금

        무궁무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겨 준다. 또한 現代에 流行하고 있는 藝術體操에서

        音樂, 體操, 舞踊의 三者가 어우러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美的 향수를 누리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生氣발랄한 書藝作品의 筆調는 반드시 音樂的 節奏와 詩的

        韻律을 갖추었기 때문에 다만 장르가 다른 예술분야일 뿐 그 共鳴의 度는

        매한가지이며 이것이 또한 예술의 共性의 效能인 것이다. 따라서 意趣가 흘러

        넘치는 用筆로서 輕重徐疾하게 調鋒馳毫하면 바로 動態美를 表現해 내는 기본

        方法이 되는 것이다.


        楷書는 行書에 比해 약간 느린 節奏的 運筆을 해야 한다. 그러나 平均的인 慢筆은

        아니 되며 起筆과 收筆時에는 一般的으로 느리게 쓰는 것은 藏頭護尾의 法을

        지키는 까닮이다. 획의 中間部分은 快闊하고 緊道한 迅疾의 節奏를 豊富히 하여야

        豊實하면서 怯弱하지 않는다. 逆勢로 切入할때는 快闊함이 驚蛇入草와 같아야

        한다. 또한 回鋒 收筆의 明快함은 緩去疾回 하되 마치 千里陣雲이 바람을 만나

        빨리 걷히는 것 같아야 한다.

        點劃之間의 交換하는 過程으로서의 快闊하게 날아 지나가는 動作을 取하여야 하며

        筆鋒이 가볍게 紙面을 스치면서 지나가는 游絲와 牽絲는 筆勢가 迅速하여야 한다.


        적법은 快闊하여야 험준하고 銳利하다. 懸針은 느리게 하여야 意趣가 충족하며

        態勢가 餘裕있고 아름답다. 垂露는 빨리 하여야 힘이 굳세고 붓이 능히 逆으로

        엎어진다. 輕重을 말할것 같으면 대체적으로 점획을 이루는 곳은 用筆을 比較的

        무겁게 하고 점획처가 아닌 곳은 경쾌하게 한다. 가장 경쾌한 것은

        無形之使운으로서 비록 筆迹이 나타나지 않지만 筆勢는 원활해 진다.


        點法은 重頓을 要하지만 引帶는 마땅히 경쾌해야하며 轉肩의 過度는 輕을 써야

        하고 捺劃의 ?駐處는 무겁게 하라.


        이러한 까닮으로서 用筆法은 輕重處를 잘 分別하여 恰足하게 하여야 健實한 획이

        된다. 소위󰡒무겁되 굵지 않아야 하며 경쾌하되 가늘지 않고 向背의 正確度에

        따라서 筆毫의 生死가 달려 있다." 라고 王僧虔은 <筆意贊>에서 말하고 있다.

        또한 輕如蟬翼은 高空游絲와 같고 重若崩雲은 高峰墜石과 같다. 運筆이

        沈着縱容하면 態度가 自在롭고 빠르게도 하고 느리게도 한 옛 法을 본받으면 곧

        奇異함을 낳는다.


        東坡는 <書說>에서『眞如立, 行如行, 草如走, 未有未能立而能行,

        未能行而能走者也.』라고 認定하였다.


        行書는 運筆의 節奏가 楷書에 比해서 조금 快闊해야 한다. 또한 力動感이

        있으면서 强烈해야 한다. 따라서 더 한층 和諧로운 旋律과 神采가 靈動함을

        갖추어야 한다. 舞筆이 景山興雲 같아서 펴지기도 하고 걷히기도 한다. 잠시

        경쾌하다가도 또한 무겁기도 하다.


        揮朝는 小橋流水 같아 굽이치기도 하고 휘감아 돌기도 한다. 느리다가도 갑자기

        빨라지기도 한다. 험경준리한 筆勢를 取함으로써 虛로서 溫和한 운치를 낳게

        한다. 점획은 沈著, 有力을 要하고 筆勢의 流暢함은 一氣貫注를 必要로 한다.

        天馬行空의 動勢를 얻어야 하는 반면 누더기를 걸친 老僧의 沈靜함이 있어야 하며

        剛柔가 融合되어야 神采가 빛난다.

        <王燕樓書法>가운데『楷書는 神靜하고 行書는 神動해야 한다. 靜하되 飛動之勢가

        들어 있어야 하고 動하되 淵穆之情이 넘쳐 흐르는 楷書와 行書는 곧 三昧之境에

        들어간다.』라고 한 것은 靜과 動이 融合되어야 書法의 높은 境地에 든다는

        것이다.


        前人들은 王羲之의 行書를 評하여󰡒龍跳天門, 虎臥鳳闕.󰡓이라 했다. 이는 書法의

        形象을 動中有靜, 靜中有動으로 比喩한 王書의 높은 韻格인 것이다.

        書法의 各種 用語는 여러가지 語彙로 表現되고 比喩되며 典籍 또한 無數히 많고

        衆說이 분운하여서 하나로 統一되지 않으며 또한 辭藻가 매우 많아 難敖하여

        理解하기 어렵다. <雜鉤書訣>에 있는 一段의 精采가 煥癸하는 文章은 우리들에게

        큰 감명을 준다.


        『能速한 速을 일러 入神이라 하고 能速不速은 賞會라 하여 不能速하되 速한 것은

        狂馳라 한다. 마땅히 느리지 않은 것을 느리게 하면 淹滯이며 狂馳則 形勢가

        온전치 못하고 淹滯則 骨肉이 鈍하고 弛緩된다. 縱橫斜直의 획을 빠르지 않게

        行筆하면서 멈춤이 없이 느릿느릿 運筆하고 팔목은 붓이 停滯되지 않도록 하고

        붓은 종이를 離脫하지 않아야 한다… 一遲一速하면 剛柔가 相濟된다.』


        이 문단은 <書譜>의 能速不速이란 一段을 더 자세하게 밝힌 것이다. 所謂

        󰡒能速󰡓이란 筆法이 精熟하며 筆勢가 迅速한 것을 가르키는 말이다. 能速의

        경지에 들면 빨리 쓰게 되고 그 빠른 것은 바로 초경함을 取하게 되어 때때로

        意外의 筆意를 나타내어 出神入化의 妙를 얻게 된다. 󰡒能速不速󰡓을 또한 賞會라

        함은 아름다움을 取하고자 느리고 조용히 徘徊하는 用筆法을 썼기 때문에 態度는

        매우 自在롭다.


        懷素는 能速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速을 힘썼기 때문에 이를 󰡒狂馳󰡓라 말한다.

        狂馳라 하면 곧 붓가는대로 아무렇게나 形體가 이루어지며 墨이 모여 어떤 形體만

        이루었을 뿐 바야흐로 마음은 昏迷해지고 손은 애매모호한 揮運에 그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다만 점획이 不精하면서 또한 미끄럽게 지나간 用筆을 써서

        그 意思가 淺薄하다.


        마땅히 遲筆하지 않아야 할때에 오로지 遲筆을 하면 곧 骨肉이 純弱하고 筆勢가

        凝滯되며 血脈이 막혀서 마치 진흙으로 빚고 나무로 깎은 허수아비와 같아 生氣가

        全然 없다. 또한 팔목에서 붓이 停止되지 않고 종이에서 붓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運筆의 妙法이다.


        이는 無形의 使轉을 取할때 筆鋒이 紙面 위를 높지 않게 지나가는 動作을 말하는

        것으로써 위에서 내려다보면 붓이 紙面에 붙어 있게 보이나 實際上으로는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方法으로 運筆하여 動과 靜이 融合하는 境地에 到達하면 剛柔相濟의

        效果를 얻게 된다.

        運筆의 節奏過程에 輕과 重, 徐와 疾은 相互 對立現象을 나타내며 또한 相互

        統一을 기해야 하는 矛盾體이다. 어느 한 方面만 지향하게 되면 점과 획의

        動態美를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느리면 滯하면 筋이 나타나지 않고 너무

        빠르면 無骨과 失勢의 病筆이 되고 만다.


        옛부터 傳해 내려오는 말로서 조맹부는 運筆이 나는 듯 하여 日書萬字(每日

        一萬字를 쓴다)를 쓰고 文徵明은 날마다 이른 새벽에 起床하자마자 千字文 一通을

        쓴 다음에 樓 아래로 내려와 손님을 맞았다 한다. 王荊公(安石)의 書는 斜風細雨

        같이 쓰면서도 사람들에게 󰡒勿勿不?󰡓라고 하였다.


        草書의 境遇에 運筆의 速度를 形容하는 말은 數없이 많다. 例를 들어 懷素의

        草書를 形容하여 󰡒忽然絶叫三五聲, 滿壁縱橫千萬字󰡓,󰡒馳毫驟墨列奔駟,

        滿座失聲看不及󰡓,󰡒奔蛇走훼勢入座, 驟雨旋風聲滿堂.󰡓이라 比喩하였으며 張旭의

        草書를 일러󰡒但覺烟雲龍蛇, 隨手運轉, 奔騰上下, 殊可駭愕.󰡓이라 하였듯이

        懷素와 張旭은 그 能速한 運筆의 節奏로서 熟練된 筆墨의 技巧를 터득한 것이 그

        關鍵이 되었다. 다만 運筆이 疾해야 되나 조급하고 분주하면 절대로 아니된다.


        다른 사람의 書藝作品을 자세히 靜觀할때 態度가 自在롭고 沈着從容한 感受를

        받으며 또한 筆法이 精到 하여서 하나의 失筆도 없어야 名書品의 範疇에 든다고

        하겠다.


        懷素를 貶下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草書인 <食魚帖>을 감상해 보면 姿意馳騁한

        運筆의 節奏로서 風神이 超脫하고 精神의 興會함이 腕底에 奔放하는 一種의

        動勢를 느끼게 한다.


        書法에 뜻을 둔 사람은 모름지기 마음 내키는 대로 쓸 수 있는 藝術의 境地에

        到達하는 方法과 技巧를 얻는 特別한 方途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刻苦勤奮하여

        오래오래 배우고 功力을 쌓으면 筆法이 精熟해 져서 書藝의 本領에 到達하는

        것이다.

        水到渠成 될 때 스스로 心手雙暢되어 글씨는 虛動되지 않고 드디어 규거에 들어

        맞아 信手萬變의 境地에 이른다.

        글씨를 배우는 사람은 基本筆法을 익힌 然後에 自己가 스스로 깨닫는 刻苦의

        努力이 따라야 한다.


        3. 結語

        以上에서 書藝의 가장 基本的인 用筆法에 대하여 古人의 論旨를 例擧해 가면서

        記述하겠다.

        『深識書者 惟觀神采, 不見字形.』이란 말도 있으나 初學者는 筆法을 遵守하여

        筋,骨,血,肉이 具備된 雄建한 書品을 創出하는 것이 先決 要件이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書의 究極의 竟界는 衆妙具臻한 然後에 自成一法함이 그 道徑이며 衆法을

        涉獵하지 않는 蹊徑의 길은 千古에 있지 않는다. 다만 千里길도 첫걸음부터

        차근차근히 硏究하는 功力밖에 별다른 道理가 없다. 正鋒으로 뻗세고 굿꿋함을

        取하고 側鋒은 輕快한 筆勢로서 姸麗함을 나타내 주기 때문에 剛柔의 形質美를

        産生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한 걸음 나아가 점획의 動態美와 意竟美를

        追求해야 한다.


        古代의 書法家들은 森羅萬象의 變容하는 모습을 觀察하여 書法의 豊富한 營養素로

        삼았으며 宇宙의 道를 觀照하여 깨우친 心領神會를 書法藝術의 意竟으로

        나타내었다.

        ․高峰墜石, 利00金, 大石當衢에서 點法의 深入穩當함을,

        ․千里陣雲, 萬歲枯藤, 利劍長戈, 强弓硬矢, 長空新月로 부터 形態와 力動感이

        들어나는 필획을,

        ․大河의 굽이치는 흐름에서 曲勢取直의 筆法을

        ․强風을 맞아 舒展하는 구름의 變化와 奔騰하게 흘러가는 江流를 보고 體勢가

        萬變하는 流暢한 筆勢를,

        ․龍跡天門, 虎臥鳳闕, 孤蓬自振, 驚沙坐飛에서 動과 靜의 體勢를

        ․높고 낮은 峰巒과 參差한 樹木에서 起伏을,

        ․閃光이 明滅하는 星辰으로부터 章法의 疏密한 布局의 法을 깨우쳤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일과 몸은 모두 法을 얻는 因素들인 것이다.

        이러한 硏究와 功力이 곁들여진 古來의 名作들은 點?의 變化가 無雙하고 意態가

        天然스러워 萬古에 賞音되는 까닮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불은

        말하기를『古人書各各不同, 若一一相似, 則如"奴書󰡓也, …又 筆筆不同,

        "三"字三劃異, 故作異. 重輕不同出子天眞, 自然異.』라고 하였다.

        布算, 布棋와 같이 形態의 無變化한 用筆을 奴書라 稱하고 있다. 王羲之는 萬點을

        찍어도 그 類形이 다르다고 한다. 唐의 馮承素가 摹한 <永和帖>을 例로 들어

        보아도 同一形態의 점획이 하나도 없다. 그 中에서 7個의󰡒一󰡓字와 20個의

        󰡒之󰡓는 筆勢에 따라 變化를 주었기 때문에 그 態勢가 모두 다르다. 果然 千古의

        名品이 아닐 수 없다. 王僧虔의 筆意贊에서『書之妙道, 神采爲上, 形質次之,

        兼之者方可紹于古人.』이라고 하였듯이 形과 神이 兼備되지 않는 書는 神韻이

        나타나지 않는다.

        知識을 높이고 見聞을 넓혀서 功力을 많이 들이면 書의 妙를 다하는 것이

        哲理이다.

        書法은 한마디로 矛盾과 對立되는 가운데에서 統一과 和諧의 法理를 摸索하는

        것이 逆說的인 過程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寄正, 疏密, 大小, 長短, 開合, 闊窄, 參差, 伸縮, 俯仰, 向背, 等의 對立的

        要素들을 協調, 和諧, 照應, 映帶 等의 結構美로 昇華시켜야 한다.


        參考 文獻

        <九勢> 蔡邕

        <論筆法> 蔡琰

        <法言> 揚雄

        <玉堂禁經>張懷瓘

        <書議> 張懷瓘

        <書斷> 張懷瓘

        <授筆要說> 韓方明

        <書譜> 孫過庭

        <山谷題跋>黃庭堅

        <書說> 蘇軾

        <筆意贊>王僧虔

        <海岳名言>米揷

        <藝舟雙楫> 包世臣

        <廣藝舟雙楫> 康有爲

        <玉燕樓書法>

        <離鉤書訣>

        <書林藻鑒> 馬宗囍

        <書法拔法述要> 劉小晴

        <書法大辭典> 書譜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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