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조선 독립의 서 - 만해 한용운

朝鮮獨立에 對한 感想의 槪要 - 原 文

 

韓 龍 雲 

 

一. 槪 論 

二. 朝鮮 獨立宣言의 動機 (1) 朝鮮民族의 實力 

(2) 世界大勢의 變遷 (3) 民族自決條件 

三. 朝鮮獨立宣言의 理由 (1) 民族自存性 

(2) 祖 國 思 想 

(3) 自 由 主 義 (自存主義와 *別 ) 

(4) 對世界의 義務 

四. 朝鮮 總督政策에 對하여 

五. 朝鮮獨立의 自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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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槪 論 

 

自由는 萬有의 生命이요 平和는 人生의 幸福이라, 故로 自由가 無한 人은 死骸와 同하고 平和가 無한 者는 最苦痛의 者라 壓迫을 被하는 者의 周圍의 空氣는 墳墓로 化하고 爭奪을 事하는 者의 境涯는 地獄이 되느니 宇宙의 理想的 最幸福의 實在는 自由와 平和라. 故로 自由를 得하기 爲하여는 生命을 鴻毛視하고 平和를 保하기 爲하여는 犧牲을 甘飴嘗하느니 此는 人生의 權利인 同時에 또한 義務일지로다. 그러나 自由의 公例는 人의 自由를 侵치 아니함으로 界限을 삼느니 侵掠的 自由는 沒平和의 野蠻 自由가 되며 平和의 精神은 平等에 在하니 平等은 自由의 相敵을 謂함이라. 故로 威壓的 平和는 屈辱이 될 뿐이니 眞自由는 반드시 平和를 保하고 眞平和는 반드시 自由를 伴할지라.

 

 

自由여 平和여 全人類의 要求일지로다. 그러나 人類의 智識은 漸進的이므로 草昧로부터 文明에, 爭奪로부터 平和에 至함은 歷史的 事實에 證明하기 足하도다. 人類 進化의 範圍는 個人的으로부터 家族, 家族的으로부터 部落, 部落的으로부터 國家, 國家的으로부터 世界, 世界的으로부터 宇宙主義에 至하도록 順次로 進步함이니 部落主義 以上은 草昧時代의 落謝塵에 屬한지라 回首의 感懷를 資하는 外에 論述할 必要가 無하도다. 幸인지 不幸인지 十八世紀 以後의 國家主義는 實로 全世界를 風靡하여 騰奔의 絶頂에 帝國主義와 其實行의 手段 卽 軍國主義를 産出함에 至하여 所謂 優勝劣敗, 弱肉强食의 學說은 最眞不變의 金科玉條로 認識되어 殺伐强奪 國家 或 民族的 戰爭은 자못 止息될 日이 無하여 或幾千年의 歷史國을 丘墟하며 幾十百萬의 生命을 犧牲하는 事가 地球를 環하여 無한 處가 無하니 全世界를 代表할 만한 軍國主義는 西洋에 獨逸이 有하고 東洋에 日本이 有하였도다.

그러나 所謂 强者 卽 侵掠國은 軍艦과 鐵砲만 多하면 自國의 野心壑欲을 充하기 爲하여 不人道 蔑正義의 爭奪을 行하면서도 그 理由를 說明함에는 世界 或 局部의 平和를 爲한다든지 爭奪의 目的物 卽 被侵掠者의 幸福을 爲한다든지 하는 等 自

 

欺欺人의 妄語를 弄하여 儼然히 正義의 天使國으로 自居하느니 例하면 日本이 暴力으로 朝鮮을 合倂하고 二千萬 民族을 奴隸待하면서도 朝鮮을 合倂함은 東洋平和를 爲함이며, 朝鮮民族의 安寧 幸福을 爲함이라 云云함이 是라.

嗚呼라 弱者는 從古의 弱者가 無하고 强者는 不盡의 强者가 無하니 曝寒의 大運이 其輪을 轉하는 時는 復讐的 戰爭은 반드시 侵掠的 戰爭의 踵을 * 하여 起할지니 侵掠은 戰爭을 誘致하는 事라 어찌 平和를 爲하는 侵掠이 有하며 또한 어찌 自國幾千年의 歷史는 他國侵掠의 劍에 斷絶되고 幾百千萬의 民族은 外人의 虐待下에 奴隸가 되고 牛馬가 되면서 此를 幸福으로 認할 者가 有하리요. 何民族을 莫論하고 文明程度의 差異는 有할지나 血性이 無한 民族은 無하니 血性을 具한 民族이 어찌 永久히 人의 奴隸를 甘作하여 獨立自存을 圖치 아니하리요. 故로 軍國主義 卽 侵掠的主義는 人類의 幸福을 犧牲하는 最魔術일 뿐이니 어찌 是와 如한 軍國主義가 天壤無窮의 運命을 保하리요. 理論보다 事實, 嗚呼라 '劍'이 어찌 萬能이며 '力'이 어찌 勝利리요. 正義가 有하고 人道가 有하도다. 侵掠又侵掠 惡極慘極의 軍國主義는 獨逸로써 最終幕을 演치 아니하였는가? 血耶肉耶 鬼哭神愁의 歐洲 大戰爭은 大略 一千萬의 死傷者를 出하고 幾多億의 金錢을 *費한 後에 正義人道를 標榜하는 旗幟下에서 講和條約을 成立하게 되었도다. 그러나 軍國主義의 終極도 實로 色彩를 莊嚴함에 遺憾이 無하였도다. 全世界를 蹂躪하려는 海欲을 充하기 爲하여 苦心焦思 三十年의 準備로 幾百萬의 健兒를 數百*의 戰線에 立하고 鐵騎飛船을 鞭馳하여 左衝右突 東聲西擊 開戰 三個月 內에 巴里를 陷落한다고 自期하던 카이제르의 聲言은 一時의 壯絶을 極하였도다. 그러나 그것도 軍國主義的 訣別의 終曲일 뿐이며, 理想과 聲言 뿐 아니라 作戰計劃의 事實도 卓越하여 休戰을 開議하던 日까지 聯合國側 兵馬의 足跡은 獨逸國境의 一步地를 踰越치 못하였으니 航空機는 空에서 潛航艇은 海에서 自動砲는 陸에서 各各 其 妙를 極하여 實戰의 作略에 絢爛한 色彩를 發하였도다. 그러나 그것도 軍國主義的 落照의 反射일 뿐이다. 噫, 一億萬 人民의 上에 君臨하고 世界 一括의 雄圖를 自期하여 對世界에 宣戰을 布告하고 百戰百勝의 槪를 有하여 神耶人耶의 間에서 縱橫自在하던 獨逸皇帝가 一朝에 自己生命의 神으로 認하는 '劍'을 解하고 *凉落拓, 天涯淪落의 知蘭 遐*에 殘喘을 僅保함은 何等의 突變이냐? 此는 곧 카이제르의 失敗 뿐 아니라 軍國主義의 失敗니 一世의 快事를 感하는 同時에 其人을 爲하여는 一線의 同情을 禁치 못하리로다. 그러나 聯合國側도 獨逸의 軍國主義를 打破한다고 聲言하였으나 其 手段 方法의 實用은 亦是 軍國主義의 遺物인 軍艦 鐵砲 等의 殺人具인즉 是는 蠻夷로 蠻夷를 攻함이니 何의 別이 有하리요. 獨逸의 失敗가 聯合國의 戰勝이 아닌즉 數多한 强弱國의 合致한 兵力으로 五年間의 持久戰에 獨逸을 制勝치 못함은 此는 또한 聯合國側 準軍國主義의 失敗가 아닌가. 그러면 聯合國側의 砲가 强함이 아니요, 獨逸의 劍이 短함이 아니거늘 戰爭의 終極을 告함은 何故뇨? 正義 人道의 勝利요 軍國主義의 失敗니라. 然하면 正義 人道 卽 平和의 神은 聯合國의 手를 借하여 獨逸의 軍國主義를 打破함인가. 曰 否라. 正義 人道 卽 平和의 神은 獨逸人民의 手를 假하여 世界의 軍國主義를 打破함이니 곧 戰爭中의 獨逸革命이 是라. 獨逸革命은 社會黨의 手에서 起하였은즉 其 由來가 久하고 또한 露國革命의 刺戟을 受한 바 有하나 統括的으로 말하면 戰爭의 苦를 感하여 軍國主義의 非를 痛切히 覺悟한 故로 談笑容從의 間에서 戰爭을 自破하고 怒濤驚浪의 軍國主義를 發揮하려던 劍을 倒하여 軍國主義의 自殺을 遂하고 共和革命의 成功을 博하여 平和的 新運命을 開拓함인즉 聯合國은 其隙을 乘하여 漁父의 利를 得함이라. 今番 戰爭의 終極에 對하여는 聯合國의 勝利 뿐 아니라 또한 獨逸의 勝利라 하리로다.

何故오? 今般戰爭에 獨逸이 孤注一擲의 最後 一戰을 決할지라도 勝負를 可히 知치 못할지요. 假使 獨逸이 一時의 勝利를 得한다 할지라도 聯合國의 復讐戰爭이 一起再起하여 獨逸의 滅亡을 見치 아니하면 兵을 解할 日이 無할지라. 故로 獨逸이 戰敗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戰勝이라고 할 만한 境遇에 在하여 斷然히 屈辱的 休戰條約을 承諾하고 講和를 請함은 곧 機를 見하여 勝을 制함이니 講和會議에 對하여도 可及의 屈辱的 條約에는 無條件으로 承諾함을 推知하기 不難하도다 (三月 一日 以後의 外界消息은 不知). 그러하면 現今主義로 見하면 獨逸의 失敗라 할지나 遠視的으로 見하면 獨逸의 勝利라 하리로다.

噫라 曠古 未曾有의 歐洲戰爭과 奇怪 不思議의 獨逸의 革命은 十九世紀 以前의 軍國主義 侵掠主義의 餞別會가 되는 同時에 二十世紀 以後의 正義 人道的 平和主義의 開幕이 되어 카이제르의 失敗가 軍國主義的 各國의 頭上에 痛棒을 下하고 威日遜의 講和基礎 條件이 各領土의 古査에 春風을 傳하매 侵掠國의 壓迫下에서 呻吟하던 民族은 騰空의 氣와 決河의 勢로 獨立自決을 爲하여 奮鬪하게 되었으니 波蘭의 獨立이 是며 체코의 獨立이 是며 愛蘭의 獨立宣言이 是며 印度의 獨立運動이 是며 比律賓의 獨立經營이 是며 朝鮮의 獨立宣言이 是라 (三月 一日까지의 狀態). 各民族의 獨立 自決은 自存性의 本能이며 世界의 大勢며 神明의 贊同이며 全人類의 未來 幸運의 源泉이라. 誰가 此를 制하며 誰가 此를 防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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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터럭처럼 여기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음을 한계로 삼는 것으로서 약탈적 자유는 평화를 깨뜨리는 야만적 자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평화의 정신은 평등에 있으므로 평등은 자유의 상대가 된다. 따라서, 위압적인 평화는 굴욕이 될 뿐이니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한다. 실로 자유와 평화는 전인류의 요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지식은 점차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가 몽매한 데서부터 문명으로, 쟁탈에서부터 평화로 발전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다. 인류 진화의 범위는 개인적인 데로부터 가족, 가족적인 데로부터 부락, 부락적인 것으로부터 국가, 국가적인 것에서 세계, 다시 세계적인 것에서 우주주의로 진보하는 것인데 여기서 부락주의 이전은 몽매한 시대의 티끌에 불과하니 고개를 돌려 감회를 느끼는 외에 별로 논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8세기 이후의 국가주의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국주의가 대두되고 그 수단인 군국주의를 낳음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우승열패·약육강식의 이론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국가 간에, 또는 민족 간에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수십만의 생명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이 세상에서 안 일어나는 곳이 없을 지경이다. 그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서양의 독일이요, 동양의 일본이다. 

 

이른바 강대국, 즉 침략국은 군함과 총포만 많으면 스스로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도의를 무시하고 정의를 짓밟는 쟁탈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할 때는 세계 또는 어떤 지역의 평화를 위한다거나 쟁탈의 목적물 즉 침략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한다거나 하는 기만적인 헛소리로써 정의의 천사국으로 자처한다. 예를 들면, 일본이 폭력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2천만 민중을 노예로 취급하면서도 겉으로는 조선을 병합함이 동양 평화를 위함이요, 조선 민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약자는 본래부터 약자가 아니요, 강자 또한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 없는 것이다. 갑자기 천하의 운수가 바뀔 때에는 침략 전쟁의 뒤꿈치를 물고 복수를 위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니 침략은 반드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평화를 위한 전쟁이 있겠으며, 또 어찌 자기 나라의 수천 년 역사가 외국의 침략에 의해 끊기고, 몇백, 몇천만의 민족이 외국인의 학대 하에 노예가 되고 소와 말이 되면서 이를 행복으로 여길 자가 있겠는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문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가 없는 민족은 없는 법이다. 이렇게 피를 가진 민족으로서 어찌 영구히 남의 노에가 됨을 달게 받겠으며 나아가 독립자존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국주의, 즉 침략주의는 인류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가장 흉악한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이같은 군국주의가 무궁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론보다 사실이 그렇다. 칼이 어찌 만능이며 힘을 어떻게 승리라 하겠는가. 정의가 있고 도의가 있지 않는가. 

 

침략만을 일삼는 극악 무도한 군국주의는 독일로써 그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귀신이 곡하고 하늘이 슬퍼한 구라파전쟁은 대략 1천만의 사상자를 내고, 몇 억의 돈을 허비한 뒤 정의와 인도를 표방하는 기치 아래 강화 조약을 성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국주의의 종말은 실로 그 빛깔이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전세계를 유린하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노심 초사 20년간에 수백만의 청년을 수백 마일의 싸움터에 배치하고 장갑차와 비행기와 군함을 몰아 좌충우돌, 동쪽을 찌르고 서쪽을 쳐 싸움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파리를 함락한다고 스스로 외치던 카이제르의 호언은 한때 장엄함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것은 군국주의의 결별을 뜻하는 종곡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과 호언장담뿐이 아니라 독일의 작전 게획도 실로 탁월하였다. 휴전 회담을 하던 날까지 연합국 측의 군대는 독일 국경을 한 발자국도 넘지 못하였으니 비행기는 하늘에서, 잠수함은 바다에서, 대포는 육지에서 각각 그 위력을 발휘하여 싸움터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군국주의적 낙조의 반사에 불과하였다. 

 

아아, 1억만 인민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에 선전 포고했던 독일 황제. 그리하여 한때는 종횡무진으로 백전백승의 느낌마저 들게 했던 독일 황제가 하루아침에 생명이나 하늘처럼 여기던 칼을 버리고 처량하게도 멀리 화란 한 구석에서 겨우 목숨만을 지탱하게 되었으니 이 무슨 돌변이냐. 이는 곧 카이제르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실패로서 통쾌함을 금치 못하는 동시에 그 개인을 위해서는 한가닥 동정을 아끼지 않는 바이다. 

 

그런데 연합국측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타파한다고 큰소리 쳤으나 그 수단과 방법은 역시 군국주의의 유물인 군함과 총포 등의 살인 도구였으니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친다는 점에서는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일의 실패가 연합국의 전승을 말함이 아닌즉 많은 강대국과 약소국이 합력하여 5년간의 지구전으로도 독일을 제압하지 못한 것은 이 또한 연합국측 준군국주의의 실패가 아닌가. 

 

그러면 연합국측의 대포가 강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칼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여 전쟁이 끝나게 되었는가. 정의와 인도의 승리요, 군국주의의 실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와 인도, 즉 평화의 신이 독일 국민과 손을 잡고 세계의 군국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그것이 곧 전쟁 중에 일어난 독일의 혁명이다. 

 

독일 혁명은 사회당의 손으로 이룩된 것인 만큼 그 유래가 오래고 또한 러시아 혁명의 자극을 받은 바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괄적으로 말하면, 전쟁의 쓰라림을 느끼고 군국주의의 잘못을 통감한 사람들이 전쟁을 스스로 파기하고 군국주의 칼을 분질러 그 자살을 도모함으로써 공화 혁명의 성공을 얻고 평화적인 새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연합국은 이 틈을 타 어부지리를 얻는 데 불과하다. 

 

이번 전쟁의 결과는 연합국뿐만 아니라 또한 독일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약 이번 전쟁에 독일이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면 그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설사 독일이 한때 승리를 거두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연합국의 복수 전쟁이 일어나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군대를 해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이 패전한 것이 아니고 승리했다고도 할 수 있는 때에 단연 굴욕적인 휴전 조약을 승낙하고 강화에 응한 것은 기회를 보아 승리를 먼저 차지한 것으로서, 이번 강화 회담에서도 어느 정도의 굴욕적 조약에는 무조건 승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3월 1일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음). 따라서 지금 보아서는 독일의 실패라 할 것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독일의 승리라 할 것이다. 

 

아아, 유사 이래 처음 있는 구라파전쟁과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독일의 혁명은 19세기 이전의 군국주의, 침략주의의 전별회가 되는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정의·인도적 평화주의의 개막이 되는 것이다. 카이제르의 실패가 군국주의 국가의 머리에 철퇴를 가하고 윌슨의 강화 회담 기초 조건이 각 나라의 메마른 땅에 봄바람을 전해 주었다. 이리하여 침략자의 압박 하에서 신음하던 민족은 하늘을 날 기상과 강물을 쪼갤 형세로 독립·자결을 위해 분투하게 되었으니 폴란드의 독립 선언, 체코의 독립 선언, 아일랜드의 독립 선언, 조선의 독립 선언이 그것이다 (3월 1일까지의 상태).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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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의 주동적 인물로 피체・투옥되었던 1919년 당시 왜인(倭人) 검사의 심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기 위해서 옥중에서 기초한 것이다. 정연한 논리와 조리 있고 해박한 이론, 시대와 민족을 초월한 선생의 탁월한 사상과 고결한 식견은 담당 왜인 검사로 하여금 예우(禮遇)와 경의를 불러 일으켰으며, 그 왜인 검사의 입으로부터 ‘이론은 정당하나 본국 정부의 방침이 변치 않으므로 어쩔 수 없다.’라고 언명한 유명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사상과 이론의 탁월함 뿐만 아니라. 1919년에 기록된 이 논문에서 이미 미래에 다가올 세계사조와 몇 개의 정치적 문제의 예언을 적중시키고 있어 선생에 대한 위인으로서의 흠모의 정을 더욱 깊게 한다.

그 당시 선생은 옥중에서 기초한 이 글의 전문을 작은 글씨로 휴지에 적어, 접고 접어서 종이노끈을 만들어, 형무소로부터 차출하는 의복 갈피에 삽입, 간수의 감시를 피해 형무소 밖으로 유출시킨 것이 원문 그대로 등사되어 만주방면의 우리 동포들에게까지 전해졌었다고 한다. 원문이 기재된 원고는 선생이 별세한 해인 1944년에 유씨 부인과 김관호(金觀鎬) 님이 선생의 문갑을 열고 유고를 정리하다가 찢어진 봉투 속에 26년간 보존된 그대로의 원고가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인데, 그 후 다른 종이에 배접해서 다솔사(多率寺)의 최범술(崔凡述) 님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글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의 ‘독립선언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민족사상서로서 우리 겨레의 영원한 재산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뜻에서 1971년에 발행된 《나라사랑》 제2집에 실렸던 이 글을 원문 그대로 다침이 없이 여기에 전재한다.

<순국지 3월호 서문 : 황인덕>

 

만해 한용운 선생이 백 년 전에 쓴 '조선 독립의 서' 친필 원고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예술의전당은 한용운 선생이 3.1운동 이후 옥에 갇혔을 때 일본 검사의 요구에 답해 쓴 '조선 독립의 서' 원본을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또 한용운 선생이 민족 대표들의 심정을 듣고 남긴 '3.1 독립운동 민족대표들의 옥중 시' 친필 원고도 볼 수 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인 '자화상'은 3.1절부터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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