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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그치자 폭포를 구경하려고 혜화문을 나섰는데 정릉에 이르렀을 때 비를 만나 봉국사에 들어가서절구 3수 〔積雨初霽 爲看瀑布…

장마가 그치자 폭포를 구경하려고 혜화문을 나섰는데 정릉에 이르렀을 때 비를 만나 봉국사에 들어가서절구 3수 

積雨初霽 爲看瀑布 出惠化門 行至貞陵遇雨 入奉國寺 得三絶

 

지팡이 짚고 나선 동쪽 성곽 밖 / 携筇東郭出
온종일 물소리 속에 있더니 / 終日水聲中
별안간 산 비〔山雨〕가 급히 쏟아져 / 忽然山雨急
이내 몸 선궁(仙宮)으로 들게 하누나 / 送我入琳宮

비 지나자 구름이 달을 토하고 / 雨過雲吐月
고요한 산 나무숲에 안개 비끼네 / 山靜樹橫煙
고요할사 뭇 생물 잠들어 쉬고 / 寂寂群囂息
들리느니 백 길의 시내 소리뿐 / 惟聞百丈泉

아침에 동악(東嶽)의 산 빛 보았고 / 今朝東嶽色
내일은 듣겠네 조계(槽溪) 물소리 / 明日槽溪聲
하늘에서 쏟아지는 은빛 폭포가 / 九天銀瀑景
벌써부터 내 마음을 맑게 하누나 / 先向意中淸

조선 후기의 문신 윤기의 시문집. [서지적 사항] 20권 20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 및 편년을 알 수 없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주-D001] 장마가 …… 들어가서 : 
본서의 편차 순서와 이 시의 내용으로 보아 작자 나이 29세 때인 1769년(영조45) 초여름 장마철 뒤의 작품이다. 작자는 이때 혜화문(惠化門)을 나서서 정릉(貞陵)을 지나 손가장(孫家莊)과 조계(槽溪)폭포를 구경하였으니, 뒤의 〈조계폭포〉까지는 모두 이때 지은 작품이다.
정릉은 조선 태조(太祖)의 제2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능으로, 지금의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봉국사(奉國寺)는 정릉 북쪽에 있는 절로, 1395년(태조4)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조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봉안하고 약사사(藥師寺)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주-D002] 선궁(仙宮) : 
봉국사를 미화한 말이다.
[주-D003] 지팡이 …… 하누나 : 
봉국사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읊었다.
평성 ‘東’운으로 제2구(中)ㆍ제4구(宮)의 운을 맞추었고 제1구의 제2자(筇)가 평성인 평기식 수구불용운체 오언절구이다.
[주-D004] 비 …… 소리뿐 : 
봉국사에서 묵을 때 비 개인 달밤의 정경을 읊었다.
평성 ‘先’운으로 제2구(煙)ㆍ제4구(泉)의 운을 맞추었고 제1구의 제2자(過)가 평성인 평기식 수구불용운체 오언절구이다.
[주-D005] 동악(東嶽) : 
첫 수에서 동쪽 성곽 밖으로 나갔다고 했으니, 정릉과 봉국사가 자리 잡은 산을 일컬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30 참조.
[주-D006] 조계(槽溪) : 
정릉(貞陵)과 삼각산(三角山)의 중간에 있는 계곡으로, 지금의 북한산(北漢山우이동 계곡 서북쪽 지류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계곡에는 근기(近畿) 지역에서 보기 드문 조계폭포가 있었다. 조계(槽溪)는 그림 30(廣輿圖:규장각 古4790-58)에는 ‘漕溪’로 표기되어 있다. 그림의 우측 상단에 도봉산(道峯山)과 삼각산(三角山)이 있고, 두 산의 중간 지점에서 남쪽으로 우이천원(牛耳川源)ㆍ우이천하류(牛耳川下流)ㆍ조계(漕溪)가 보이고 조계의 남쪽에 정릉(貞陵)이 있다. 이로 보아 조계는 지금의 북한산(北漢山우이동 계곡의 서북쪽 지류 중 하나로 판단된다.
[주-D007] 하늘에서 …… 폭포 : 
조계폭포를 가리킨다. 이백(李白)이 여산폭포(廬山瀑布)의 장관을 묘사하여 “수직으로 삼천 척을 날아 떨어지니,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네.〔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라고 한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李太白集 卷20 望廬山瀑布》
[주-D008] 아침에 …… 하누나 : 
이튿날 구경하게 될 조계(槽溪)와 조계폭포를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하는 내용이다.
평성 ‘庚’운으로 제2구(聲)ㆍ제4구(淸)의 운을 맞추었고 제1구의 제2자(朝)가 평성인 평기식 수구불용운체 오언절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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