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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강 - 광주 지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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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권상호 편

 

  光州(광주)를 풀어서 ‘빛고을’이라 하는데, 광주 역시 변화무쌍한 역사의 굴레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오늘의 湖南(호남)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光州(광주)란 명칭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고려와 조선시대를 이어 지금까지 광주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이름이 되었다.

 

  光州(광주)는 원래 삼한(三韓)시대 마한(馬韓)에 속했다가 4세기 초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때 백제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무진주(武珍州) 혹은 무주(武州)라 불려오다가 태조(太祖) 23(940)부터 ‘光州(광주)로 불렸다. ‘光()’ 자는 ‘火() 밑에 ()’의 구조로 ‘사람이 횃불을 들고 있거나, 머리에 불씨를 이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빛 → 세월 → 경치’의 뜻으로 발전했다. 月光(월광), 光陰(광음), 觀光(관광)이로다.

 

  百濟(백제) 때 무진주라 부르게 된 것은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습지 벌판)’이란 옛 지명에서 유래하는데, ‘未冬(미동)’은 ‘濕地(습지)’를 뜻하는 우리 옛말인 ‘물들, 물둑[水堤], 무들, 무돌[武珍]’을 표기한 것이다. ‘夫里(부리)’는 ‘벌’, 즉 ‘벌판’의 우리 옛말이다.

  百濟(백제) 시대에 와서 /무돌/ //는 한자음의 ‘武’로 표기하고, //은 뜻으로 볼 때 ‘珍’이 되므로 무돌을 ‘무진(武珍)’이라 하고 光州(광주)‘무진주(武珍州)라 했으며, 無等山(무등산)을 ‘武珍岳(무진악)’이라 했다고 한다.

  武珍(무진)은 한자어가 아니라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것으로 珍(보배 진)의 옛 한자 새김이 ‘들, 돌’인 것에서 武珍(무진)의 원래 발음은 /무들, 물들/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는 ‘물+들’(물이 많은 들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차자표기이기 때문에 武珍(무진) 외에 茂珍(무진)이란 표기도 썼으며, 광주의 명산인 무등산의 이름인 無等(무등)도 같은 말의 차자표기로 추정된다. 광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주 영산포 일대를 이두로 水入伊(수입이, 물들이)라 한 것으로 보아 옛날에 이 지역 일대에 늪지대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無盡(무진) 땀과 무진 애로 서석대(瑞石臺) 올라하니,

  바위마다 무지갯빛 무지무지 눈부신 산.

  그 빛이 물들 비추니 여기가 바로 光州(광주)인걸.

 

  이후 신라가 三國(삼국)을 統一(통일)한 뒤 전국을 9()로 나누는데, 광주에 都督(도독)을 파견하면서 ‘光州都督府(광주도독부)’가 되었다. 이때도 광주를 ‘무진주(武珍州)’라 했다. 당시도 무진주와 이웃 완산주(完山州, 全州)는 이름 그대로 불려왔으나, 景德王(경덕왕) 16(757)에 지명을 중국식인 2음절로 고치면서 武珍州(무진주)는 ‘武州(무주)’로, 完山州(완산주)는 ‘全州(전주)’로 바뀌게 된다. ‘完(완전할 완)’과 ‘全(온전할 전)’은 모두 ‘온전하다’는 ‘온’이란 우리말 뜻을 지닌 글자이다. 따라서 ‘完()’이란 글자는 ‘온’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근사음이다. ()은 ‘집[(집 면)]을 완전히[(으뜸 원)] 수리하다.’에서 모든 일에 흠이 없음의 뜻을 나타낸다. ()은 들여놓은[()] 구슬(王←玉) 중에서 가장 빼어나고 예쁜 구슬로 ‘온전하다’, ‘완전하다’를 뜻한다. 完璧(완벽), 完成(완성), 完了(완료), 未完(미완)이면 補完(보완)해야죠. 얼쑤, 完全(완전)하군.

 

  ‘光州(광주)라는 명칭이 처음 생긴 것은 高麗(고려) 太祖(태조) 때의 일이다. 이 무렵 전국 여러 고을의 지명이 새롭게 정해졌는데 특히 原州(원주), 尙州(상주), 忠州(충주), 公州(공주) 등 ‘州(고을 주)’ 자를 쓴 이름이 많이 생겨났다.

  ‘州(고을 주; ; zhōu)’의 갑골문, 금문, 전서의 모양을 보면 여의도처럼 川(내 천) 속에서 사람이 사는 섬을 가리켰다. 이것이 행정구역 단위로 쓰이자 ‘洲(섬 주)’로 본뜻을 살렸다. (섬 도)는 산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바다 위의 섬을 가리킨다. (섬 주; zhōu)에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舟(배 주; zhōu)가 필요하다.

 

  또 광주를 ‘빛고을’이라 하는 데는 無等山(무등산)의 입석군(立石群)과 관련한다. 광주의 진산 무등산의 대표적 절경은 돌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입석(立石), 서석(瑞石), 규봉(圭峯)이지만 이런 입석을 우리말로 ‘선돌’이라 한다. 선돌이 모인 입석군을 서석, 즉 ‘빛나는 돌’이라 하여 신성시했다. 이와 관련 무등산도 서석산이라 한 것이다. 고려시대 목은 이색은 社稷公園(사직공원) 양파정(楊坡亭)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시를 짓는데, ‘光之州’라 하여 빛의 고을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 외에 광주를 무진(茂珍), 광산(光山), 무양(武陽), 해양(海洋)이라고도 불렸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도 광주에 대한 기록은 ‘光山縣(광산현)’ 항목에서 찾아야 한다. 많은 성씨의 본관도 광산으로 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광산김씨(光山金氏)’의 사례다. 본래 광산김씨 발상지는 현재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平章洞)이란 곳인데, 1914년 이전에는 이곳 평장동이 광주 땅이었기 때문에 광산을 본관으로 쓰고 있다.

 

  ‘무등산(無等山)’이란 명칭은 서석산(瑞石山)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붙여진 이름으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의 백제, 통일신라 때 명칭은 ‘무돌뫼(武珍岳- 무돌의 이두음)’였다. ‘무돌’이란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 뜻으로 본다. 서석산(瑞石山)은 ‘상서로운 돌’이라는 뜻의 서석대(瑞石臺)와 관련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이 외에도 신령스런 산이란 뜻에서 ‘무당산’, 홑산으로 둥근 무덤처럼 생겼다고 해서 ‘무덤산’, 이성계가 왕명에 불복한 산이라 하여 붙여준 ‘무정산’ 등의 별명이 함께 내려오다가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이란 ‘대쪽()에다 써 놓은 관청()의 서류가 가지런하다’에서 ‘같다’, ‘등급’의 뜻이 나온다. 同等(동등), 等式(등식), 等級(등급), 高等(고등). ()는 ‘일을 하다[, ] → 일하는 사람 → 관청’의 뜻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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