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국사의 안뜰] 혼례 물품·조달 방식 꼼꼼히 기록… 사치 경계한 조선왕조

입력 : 2016-10-15 00:57:26 수정 : 2016-10-15 00:57: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6〉왕실발기에 담긴 순종의 혼례이야기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 모습을 그린 반차도(위 사진). 왕실의 혼례는 혼수물목이 수백 개에 이를 정도 큰 규모로 치러졌으나 사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 다양한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임오천만세 가례시 빈궁마마 의대발기 침방’(아래 사진)을 보면 가례시 빈궁의 속옷만 무려 3645건이나 적어두고 있다.
1882년, 왕실에서는 혼례준비가 한창이었다. 혼례의 주인공은 왕세자 척이었다. 그는 고종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이 일찍 죽자 두 살인 척을 왕세자로 책봉하였으며 아홉 살에 가례를 치렀다. 혼인은 예나 지금이나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두 집안의 만남이기 때문에 혼인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가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개인의 혼인도 그런데 국혼(國婚)은 말할 것도 없다.

척의 나이 여덟 살이 되던 해 왕실에서는 혼례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왕실의 혼례에서 일반 사가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먼저 전국에 ‘금혼령’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전국 모든 결혼적령기 처자들은 왕실혼례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신데렐라를 꿈꿀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지만 당시 사대부가에서는 국혼의 대상이 되는 것을 크게 탐탁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법이 엄하기 때문에 간택단자를 내야 하는 것이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였다.

1881년 11월, 전국에 있는 7살부터 11살까지의 처자들에게 금혼령이 내려졌다. 왕실은 밖에서는 간택단자를 받아 좋은 처자를 구하고자 하였으며, 안으로는 국혼을 진행하기 위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재정을 담당한 호조판서 김병시의 고민이 깊어졌다. 국혼에 드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한 아문(衙門·관청)에서 담당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모든 아문에서 합심하여 12만 냥을 마련할 것을 건의했다. 고종이 이를 윤허함으로써 경비를 모으는 방법은 일단락되었다.


◆‘왕실발기’ 어떤 자료인가

발기는 ‘건기(件記)’라고 하여 물목을 낱낱이 기록해 놓은 일종의 치부기록이다. 왕실의 혼례과정은 의궤나 등록 등 왕실에서 만들어 낸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왕실 혼례가 진행되는 단계에서 어떤 복식을 장만하였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혼례를 준비한 사람들에 대한 포상은 어떻게 하였는지 등 구체적인 물목을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는 ‘왕실발기’ 자료를 전수 조사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왕세자 척의 혼례과정에서 만들어진 다수의 문서를 볼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왕세자 척의 구체적인 혼례물목을 확인하게 되었다.

발기는 여러 가지 색깔의 한지를 두 장에서 많게는 수십 장까지 이어 붙이기도 하고, 소색(素色·하얀 색) 한 장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또 각각의 목록은 정자(正字)로 또박또박하게 쓴 것도 있고 흘려 쓴 것도 있다. 여기에 동일한 자료를 ‘한글’과 한자‘로 동시에 작성해 놓은 것도 있다. 특히 한글본과 한자본으로 된 발기자료는 불확실했던 물목의 내용을 명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혼례문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제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왕실발기를 중심으로 왕세자 척의 혼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처자는 무슨 옷을 입고 궁궐에 들어갔을까

일반적으로 왕실에서의 간택은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왕세자 척의 첫 번째 간택은 정월 15일 26명의 처자가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여기에서 7명이 선발됐으며, 재간택은 정월 18일로 3명의 처자가 간택됐다. 같은 달 26일 3명의 처자 중 최종적으로 여은부원군 민태호의 딸이 왕세자빈으로 간택됐다.

혼례를 치르기 전에 어느 정도의 밀약이 있다고는 해도 처음 궁궐에 들어가는 처녀들에게는 가슴 설레고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무슨 옷을 입고 들어갈까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간택에 참석하는 처자들의 복식은 각자의 집에서 준비한 옷을 입고 간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것은 혜경궁 홍씨가 쓴 ‘읍혈록’에서 궁궐에 들어갈 때, “집안이 극히 빈곤하여 의상을 해 입을 길이 없었으므로 치마감은 선형(先兄) 혼수에 쓸 것을 사용하고, 옷 안에 넣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저고리 안은 낡은 옷의 안을 넣어 지어 입히시느라 노력하셨다”는 내용에 근거한다.

그런데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발기 중 ‘임오정월 가례시 간택처자 의차’라는 표제가 달린 발기를 보면 사가에서 장만한 옷을 입고 궁궐에 들어갔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이 자료는 왕실에서 처자들에게 내려 준 옷감을 적고 있다. 분홍색, 송화색, 초록색, 보라색, 두록색, 옥색 등의 저고리 감과 다홍색의 치마감, 그리고 명주와 모시 등의 옷감이다.

왜 이런 옷감을 내려주었을까. 당시 간택에 참여하는 처자들의 복식이 점점 화려해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왕실에서는 명주와 모시 이상을 입지 못하도록 여러 차례 전교를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왕세자 척의 혼례에서는 간택처자들에게 직접 옷감을 내려줌으로써 신부집에서 갖는 경제적인 부담도 덜어주고,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간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사치로 흐르는 혼례문화까지도 바로 세우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빈궁은 속옷만 3600여건, 왜 그렇게 많았을까

간택을 통해 선발된 왕세자빈이 본격적인 왕실의 법도를 배우면서 준비를 하는 동안 혼례에 필요한 물목들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음을 발기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혼례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은 바느질이다. 특히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의대(衣?)는 일반 사가에서는 그 제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맡길 수도 없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임오천만세 가례시 빈궁마마 의대 침방’ 자료를 보면 속옷만 무려 3645건이다. 어마어마한 수량이 아닐 수 없다. 속옷의 종류도 다양하려니와 바느질은 어떻게 했는지, 어떠한 순서로 입었는지까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납작누비바지와 잔누비너른바지가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잔누비, 중누비 등 누비의 간격을 규정하고 오목누비, 납작누비 등 형태를 지정하여 침방에 소속된 침선비에게 내려 보낸 일종의 작업매뉴얼도 있다.

이 많은 속옷은 누가 다 입었을까. 왕세자빈이 혼자 다 입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순종의 비 윤비를 모셨던 김명덕 상궁은 “왕과 왕비는 처음으로 바느질해서 입는 진솔옷만 입었다”고 하고, “마마께서는 가지고 계셨던 옷이며, 버선 등을 양반이나 나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고 했다. 이것으로 보아 왕세자 척의 혼례 때 만든 수많은 옷들도 ‘의대반사(衣?頒賜)’를 통해 왕실의 정을 느끼게 하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
◆사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다

왕세자 척의 혼수물목에는 의대 이외에도 ‘패물’, ‘직조’, ‘보자기’, ‘이불, 베개’ 등 다양한 혼수를 장만하였다. 이런 혼수물목을 싸는 보자기만도 수백 개로 확인되었다. 왕실의 혼례가 화려했음은 당시 장만하고자 했던 물목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왕실에서도 혼례가 사치로 흐르는 것을 늘 경계했다. 그렇기 때문에 처자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궁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옷감을 하사하기도 했고, ‘상방정례’, ‘국혼정례’ 등을 편찬하여 절약하고 검소하게 혼례를 치르도록 정례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예나 지금이나 혼례는 일생에서 한 번 치르는 것이라 생각하여 자칫하면 사치로 흐를 수 있다. 지금도 결혼을 준비하다가 혼수 때문에 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본격적인 결혼시즌이다. 요즘은 허례허식보다 ‘작은 결혼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왕실에서 솔선수범했던 것처럼 사치를 경계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