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은 2004년도 서예박물관 전시 2제로
멱남서당 소장 <추사의 한글편지>와
오일육 기증 <역매, 위창의 서화, 전각 & 서화사료>를 마련하였다.
예술의전당 사장 김용배
개막식 : 2004. 5. 25. 오후 5시
전시작품설명회 : 전시기간 중 매일 오후 2시
세미나 : 6월 5일 토요일 오후1시~5시
장소 : 서울서예박물관 문화사랑방
기조강연 : 한글편지를 통해 본 추사 김정희(건국대 국어학, 김일근)
제1주제 : 추사 한글편지의 국어학적 특징(정문연, 국어학 황문환)
제2주제 : 언간을 중심으로 본 필사 격식과 표지에 대하여(시립대, 국어교육학, 이종덕)
제3주제 : 추사가의 언간서체의 형성과 조형성의 비교 고찰(경인교대, 교육학, 박병천)
종합토론
수많은 명작을 남긴 대서예가 秋史 金正喜(1786~1856)가 한글 편지도 썼다. 대부분 아내에게 쓴 편지다. 위대한 예술가이자 학자로 숭배되는 추사지만, 구어체의 현장감 있는 표현이 압권인 한글편지에서 떠오르는 것은 자잘한 욕심과 결점, 희로애락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남자의 모습이다. 종손으로서 제사와 혼사 등 집안 대소사를 깐깐하게 챙기고, 음식 투정을 부리는가 하면 유배지에서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낸다.
‘추사 한글 편지’ 전시(25일~6월 27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는 40통(원본 32통 사본 8통)이 등장한다. 30대부터 50대까지 20년에 걸친 이 편지들의 발신지는 서울·대구·평양·제주 등 다양한다. 옛 한글 편지를 집중 연구해 온 건국대 김일근 명예교수의 ‘멱남서당’ 소장품이 대부분이다.
부인 이씨는 지병이 있었고 40대 이후 심해져 추사의 제주 유배 때 사망했다. 1842년 11월 13일 부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그 다음날인 14일과 18일 연달아 편지를 보냈다. “이 동안은 무슨 약을 드시며 아주 몸져 누워 지냅니까. 간절한 심려로 갈수록 걱정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부고는 다음해 1월 15일에야 제주에 도착했다.
30대 초반의 추사는 생기와 애교가 넘치는 남자. “서물(暑物·여름과일)이 한창때이오니 부디 참외 같은 것 많이 잡수시게”(1818년 6월 4일). “내행(內行)이 곧 올 것이라(당신이 오시시라) 생각되는데 어떻게 차려 오십니까. 어란 많이 얻어 가지고 오십시오. 웃어봅니다”(1818년 9월 26일).
평양 기생 죽향이와의 염문에 대해서는 딱 잡아뗀다. “나는 일양이오며(잘 있고) 집은 여도 잇고 잇사오니 임자만 하여도 다른 의심하실듯 하오나…다 거짓 말이오니 고지 듣지 마십시오”(1829년 11월 26일).
양자를 들이고는 ‘60이 돼서야 부모 소리를 들었다’고 기뻐하고 며느리에겐 무엇보다 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고 강조하고 손자가 태어나자 이름을 지어 보내기도 한다.
추사는 먹는 것, 입는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하고 까다로웠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빠르면 두 달, 늦으면 일곱 달이나 걸렸던 것으로 편지에 나오는데도 부인에게 밑반찬 일체를 보내게 했다. 김치 보내라는 아우성에, 음식이 변질됐다고 불평하고, 소금을 넉넉히 친 김치를 보내면 ‘너무 짜다’고 잔소리다. “…인절미는 모두 썩어 버렸습니다… 외 쟝과(장아찌)는 괜찮고 무우 쟝과는 또 변미하였습니다. 젓 무는 조금 쉬었으나 먹을 수 있겠습니다”(1841년 4월 20일). “민어를 연하고 무롬한 것으로 가려서 사 보내게 하십시오. 나려온 것은 살이 셔여 먹을 길이 업습니다. 겨자는 맛난 것 있을 것이니 넉넉히 얻어 보내십시요”(1841년 6월 22일). 추사의 편지들은 한글이라 해도 고어투성이에 자유분방한 흘림체로 적혀 있기 때문에 서예박물관이 따로 해석을 붙였다. (02)580-1300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
일반 대학생 3000원, 초중고 단체(20명 이상) 1000원. 02-580-1511, 1513, 1519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권상호
스토리가 있게 잘 기획된 전시이므로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권상호
‘옛사람이 글씨를 쓸 적에는 따로 간찰체가 없었다. 나도 70년 동안 벼루 열 개를 갈아 뚫었고 1,000개의 붓을 모두 망가뜨렸으나 일찍이 한 번도 간찰법을 익힌 적도 없고, 간찰체가 따로 있는 줄 알지 못한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한국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근역서화사와 중사간독첩은 하루빨리 국보로 지정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권상호
이동국 과장의 사회로 네 분의 발표를 듣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첫째번의 질문자가 나였다. 멱남 선생께서 평소보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일이 있다는 것은 최고 보약이다.
그런데 하루 유료입장객이 30명이라는 말을 듣고, 아직도 서예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