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글전용으로 퇴출까지 당했던 한자가 다시 급부상하고 있는 요즘 조선조 500년과 개화기, 일제시대에 생산된 100여종의 천자문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전시가 열린다. 예술의전당이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 작고 400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하늘천따지-千字文과 조선인의 생각ㆍ공부ㆍ글씨’가 그것으로 16일부터 9월19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갖는다.
전시에는 이들 자료가 서체·주제·시대·저자별로 일목요연하게 진열된다. 그림이 곁들여진 ‘도상천자문’과 1000명이 한 글자씩 작성해 완성시킨 ‘천인천자문’도 눈길을 끈다. 천자문과 결부된 인쇄문화와 글씨예술,한자 구성원리,한글 변천 과정,전통교육제도,일제시대 민족교육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진다.
관람객 체험공간도 다양하다. 관객이 참여하는 천인천자문,한자의 생성원리를 수묵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국경진의 영상,사람이 악에 물드는 것을 슬퍼한다는 내용의 ‘묵비사염(墨悲絲染)을 여울목 무용단이 몸짓으로 설명하는 무대,작가 이상호의 ‘게임을 이용한 한자 여행’,천자문 탁본찍기 등이 마련된다.
전시기획팀의 이동국차장은 “한자가 사대주의 유물일수도 아니면 21세기 동북아 중심국가를 위한 한자문화권 맡扇?필요한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화가 외국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른 것으로 한자역시 우리 문화유산 일 수 있다. 이 전시는 한자와 문화의 결합양상을 당시 사회구조와 신화, 의료, 철학, 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자문은 어린 아이들이 글자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할아버지나 서당 훈장이 가르쳤던 한자 학습교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천자문은 단순한 글자 암기가 아니라 1000자 250구 125절의 방대한 서사시로 다 깨우친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이 안에는 중국 고사를 담은 구절이 있는가 하면 사계절의 생겨남과 농사짓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기강을 가르친다. 마지막은 어조사를 바로 쓸 줄 알아야 문장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 인간으로 성숙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자연, 역사, 예절, 철학 등 종합교재로서의 천자문 역할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천자문은 중국 양(梁) 무제(武帝)의 명에 따라 문학시종인 주흥사(470∼521)가 지었다. 당시 주흥사는 큰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하룻밤만에 천자문을 완성한 공로로 죽음을 면하기는 했으나 얼마나 노심초사했던지 아침이 되니 머리가 하얗게 세고 말았다고 한다. 천자문은 그래서 백수문(白首文)으로도 불린다.
천자문이 우리나라에 전래되기는 서기 258년 백제 왕인(王仁)이 일본에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비교적 널리 보급된 천자문은 왕희지의 7대손인 지영이 진서와 초서로 쓴 ‘진초천자문’과 당의 희소가 쓴 ‘초(草)천자문’ 등을 들 수 있다.
조선 문인사대부들은 다양한 필적으로 각각 천자문을 남겼다. 안평대군 박팽년 이황 김인후 조윤형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이 가운데 한석봉 천자문은 범국민적 한자교육을 위해 만들어져 가장 많이 사용됐다. 정약용은 실학자답게 일상생활의 한자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다면서 2000자로 된 아학편(兒學編)을 짓기도 했다. (02)580-1300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5/08/08 16: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