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광개토대왕비는 표면에 석회가 발라진 상태로 있으며 나무 받침대는 탁본을 뜨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현재 높이인 6.39m보다 낮은 6.20m라고 기록돼 19㎝가 땅 속에 묻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샤반느는 답사 내용을 ‘고대 한국의 왕국 고구려(L’ancien Royaume Cor?en de Kao-Keou-Li) 유적에 관한 보고서’란 제목의 논문으로 기록하여, 20세기 초에도 고구려가 한국사에 속한다는 분명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통용됐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