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께서 쓴 글씨 중에서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보물 제569-9호)
물론 원시는 이태백이 섬서성의 여산 오로봉을 보고 지은 시이다. 안의사는 張을 丈으로 썼는데 張이 맞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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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老峯爲筆 靑天一丈(張)紙 (오로봉위필 청천일장지)
三湘作硯池 寫我腹中詩 (삼상작연지 사아복중시)
오로봉(五老峯)으로 붓을 삼고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삼상(三湘)의 물로 먹을 갈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 장부의 기개가 흘러넘치는 구절이다. 중국시인 이백의 오언절구로 전해져온다. '산을 뽑아서 하늘을 종이로 삼아 가슴에 담긴 말을 쓰고 싶다'는 표현은 문체상의 기교보다 안의사의 호연지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조국을 등지고, 이역만리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구사일생의 고비를 넘기기도 한 안의사가 숱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구국거사를 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웅혼(雄渾)한 기상이 밑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안의사의 호방한 기질은 아버지 안태훈진사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태훈진사는 정의(正義)를 가훈으로 삼고, 매사에 의리를 존중했다. 또 도량이 넓어 많은 사람들을 표용했는데 동학 농민 전쟁 때 19세의 나이로 해주공락작전에 선봉으로 뛰어든 백범 김구선생에게 전쟁후 거처를 마련해준 사실은 유명한 일화이다. 안의사는 청소년시절 가장 즐기던 것으로 첫째 친구와 의를 맺는 것이요 (親友結義), 둘째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요(飮酒歌舞), 셋째 총으로 사냥하는 것이요(銃砲狩獵), 넷째 날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다.(騎馳駿馬)라고 했듯이 의리와 호방함을 갖춘 무사적 기질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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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옮기면
큰 뫼 붓으로 삼고
푸른 하늘 종이 삼아
긴 강 벼루물 찍어
내 마음의 시를 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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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덕무 선생의 <청장관전서>에도 다음과 같은 시가 나온다.
무은(蕪隱)에게 붓과 종이를 청함
서재의 생애가 너무나 쓸쓸해 / 生涯書屋太蕭然
필총(筆塚) 옆의 파초잎도 다 없어졌네 / 蕉葉春空筆塚邊
이상하게도 내가 사흘 동안이나 시가 없어 / 怪我無詩三日久
오로봉(五老峯)으로 붓을 삼아 푸른 하늘에 쓰고 싶네 / 欲將五老寫靑天
필총(筆塚) : 다 쓰고난 붓을 한곳에 묻어 무덤처럼 된 것을 말한다.
오로봉(五老峯)……쓰고 싶네 : 오로봉은 강서성(江西省) 성자현(星子縣)에 있는 여산(廬山)의 높은 봉우리인데 붓끝처럼 뾰족하다. 그래서 이백(李白)의 오로봉시(五老峯詩)에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으로 벼루의 먹물을 삼아 푸른 하늘 한 장 종이에 내 뱃속의 시를 쓰련다.[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 하였다.
靑禾
김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