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원곡체' 창안한 서예대가 김기승씨
2000년 08월 14일 (월) 19:05
"내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본받아서 실천하려고 한 것이 있다면 '밥 먹을 때도 나라 사랑 잠 잘 때도 나라 사랑' 이라고 하신 말씀이었으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밥 먹을 때도 글씨 사랑 잠 잘 때도 글씨 사랑' 이라는 신조는 나름대로 지켜왔다."
14일 서울 광장동 자택에서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원곡(原谷)김기승(金基昇)옹이 '원곡서문 제2집' 에서 술회한 말이다.
고인은 굵은 점으로 시작하는 점두획(點頭劃)법을 포함, 획이 두텁고 선이 출렁이는 독특한 한글서체인 원곡체를 창안했다. 원곡체는 컴퓨터 글꼴로도 나와 있으며 간판.달력.제호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서체다.
"중국 명필 중에 소동파.황산곡 등의 횡획 필치에 약간 출렁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종횡사(縱橫斜)로 '점두획' 의 분명한 획을 구사한 경우는 원곡체 이외에는 선례가 없죠. 근 반세기 동안에 초지일관 정진과 연구를 계속해 완전한 원곡체 국한문을 만들어낸 것은 선생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서예가인 일중 김충현씨는 "나는 오랜 세월 원곡 선생과 함께 많은 일을 했지만 한 번도 대립되거나 낯을 붉힌 일이 없다" 고 회고했다.
서예가 김영기씨도 "선생은 평소 '글씨사랑, 나라사랑' 이란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거짓말을 하지 마라' '시간을 잘 지켜라' '가정에 화목하라' 는 세 가지를 늘 가르치셨다" 면서 "국전 운영위원.심사위원 등을 가장 많이 역임하시면서도 특정 제자를 배려해 준 일이 한번도 없으셨다" 고 회고했다.
그의 저서 '신고 한국서예사' 는 이 분야 유일의 통사로서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1977년에는 고희 기념으로 원곡서예상을 제정, 올해까지 23명을 시상했다.
충남 부여 태생인 金옹은 휘문고를 중퇴하고 중국에 건너가 상해 중국공학(公學)대학 경제과를 마쳤다.
고교시절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는 동맹휴학을 주동했던 고인은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입당해 독립운동에도 기여했다.
국전 추천작가와 심사위원.운영위원 등을 거친 고인은 78년부터 95년까지 35회라는 기록적인 서예 개인전을 열었다.
85년에는 2백80여점의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으며 90년대초에는 1천여점을 연세대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차인실(車仁實)여사와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남 명호(明鎬)씨를 비롯해 1남4녀. 김성재(金聖在)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넷째 사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