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일미(茶禪一味). 다인(茶人) 초의(艸衣·1786~1866) 선사에게 차와 선(禪)은 별개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다.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글씨와 선이 또한 별개가 아니었다. 제법불이(諸法不二)였다. 일상생활이 곧 선이었던 것이다.
다도 역시 마찬가지. 불을 피우고 물을 끓여, 그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융합하여 마시는 일상적인 생활이었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무아의 경지. 19세기 한국 다문화를 부흥시킨 그가 보여준 음다정신은 그런 것일 성싶다.
여기 예서로 쓴 ‘춘설전차’는 초의의 다생활 일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봄눈이 녹아, 생명이 움트는 시절에 마시는 차. 초의는 햇차가 만들어지면 으레 동갑인 완당 김정희에게 보낼 만큼 완당과는 교분이 돈독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서예 문외한이 보아도 옛날 글씨 같질 않다. 글자의 높이와 간격이 모두 다르다. 현대 서예를 보는 것처럼 변화가 풍부하다. 그러면서 글자의 구성과 자간, 여백이 톱니바퀴처럼 딱 들어맞는다. 그것도 큰 종이(91㎝×169㎝)를 우주 삼아 일필휘지로 조화무궁하니 대단한 필력이라는 평들이다. ‘춘설전차’는 문화재수집가 이원기씨가 소장중인 초의 작품 중 차와 불도에 관한 글씨만 모아 영인·발간한 ‘다인초의선사유묵’에 수록된 대표작이다. 차와 시·서·화·선이 하나됨을 보여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지나치리만치 절차와 형식에 따르는 일본풍 행다와는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