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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고구려인가?
▲광개토대왕릉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 (陵碑).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고구려 전성기 때
의 역사적 사실을 잘 알려준다.
최근 들어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등에서 부쩍 고구려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요? 우리 역사책 속에 잠자던 고구려가 갑자기 깨어나기라도 한 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썩 유쾌하지는 않군요. 바로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드넓은 만주(滿洲) 벌판을 호령하던 동아시아의 대제국 고구려. 우리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고구려를 중국이 느닷없이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고구려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어요.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의 이 같은 터무니 없는 주장에 분노하면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항해 고구려 연구재단을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왜 새삼스럽게 고구려를 넘보는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이 추진 중인 '동북 공정'프로젝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북 공정이란 2002년 시작된 중국의 국가적 연구 사업입니다.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중국 동북 지방의 역사를 연구, 앞으로 이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변동에 대비하려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입니다.
만주는 지금은 중국의 땅이지만, 예로부터 우리 겨레의 활동 무대였습니다. ^이 곳에는 현재 우리 겨레인 조선족이 수백만 명이나 살고 있어요. 역사적으로 따지면 조선족 자치주 지역인 간도 지역도 우리가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만주를 잃어버린 옛 땅으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만주를 영원히 자국 영토로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과거 만주 지역은 중국의 한족(漢族)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거란, 여진 등 우리 겨레와 만주족 등이 살았던 땅이 바로 만주였던 것입니다. 중국과 만주와의 역사적 관련성은 매우 적습니다. 그런데 만일 한국이 통일되어 만주나 간도 지역과 이 지역 조선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겠지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중국은 서둘러 동북 지방의 정치와 국경 문제의 안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만주 지역 역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할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중국의 동북 공정 가운데 특히 우리를 크게 자극하는 것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중국은 2003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선정하는 세계 문화 유산에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 벽화의 등록을 방해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에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중국 영토 내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을 정비하고서 이를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 신청을 했답니다.
만약 오는 6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북한이 신청한 유적이 보존 상태가 나쁘다든가 해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되지 못하고, 중국이 신청한 유적이 선정된다면 어찌 될까요? 세계인들은 '고구려 유적은 중국의 것.'이라고 착각 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북한의 고구려 역사 유적이 먼저, 또는 적어도 중국이 신청한 것과 동시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북한을 도와야 합니다. 이와 함께 고구려 역사를 세계에 널리 올바르게 알리고,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항할 준비도 해야 합니다.
중국은 현재 중국 영토에서 활동한 모든 나라의 역사는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과거의 역사적 관련성이 현재의 영토 지배를 정당화 시켜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사실 중국은 고구려를 자기들의 주된 역사로 기록하지는 않고 잇습니다. 진-한-삼국-남북조-수-당 등으로 이어지는 중국 정통 왕조의 변방에 위치한 속국(屬國)의 역사로 왜곡해서 기술합니다.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만주 지역의 역사는 영원히 변방의 역사에 불과합니다. 고구려를 제대로 계승할 의지도 없으면서, 고구려의 옛 영토를 영원?지배하려는 정치적 목적만을 앞세珥?비겁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결코 고구려의 정당한 계승자가 될 수 없으며,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된다면 그것은 고구려사 자체도 불행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역사 왜곡을 엄중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고구려를 연구하는 것까지 못하게 할 수는 없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고구려의 정당한 후손인 우리가 고구려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역사를 올바르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의지를 갖고 있어야 떳떳한 후손이 될 수 있겠지요.
우리가 고구려를 모른 체 외면하다 보면 고구려사는 중국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고구려를 잘 계승하면 고구려 역사는 영원히 우리 역사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역사는 바로 우리의 뿌리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잃어버린다면 곧 우리의 미래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 왜곡에 흥분하기 보다는 우리부터 먼저 고구려를 제대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평안남도 남포에 있는 강서대묘 내부에 그려진 현무도. 달리는 거북의 몸을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고구려인의 힘이 느껴지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역사, 그리고 고구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
◆ 역사는 나를 아는 거울
여러분은 '나는 누구일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해 보기 전에는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유일한 실마리는 인간이 무엇을 했는가? 뿐입니다.
이는 결국 인간의 역사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역사는 지난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 무엇을 했는지를 알려 주며, 인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도 한답니다. 인간이 오늘날 문명 세계를 이루게 된 것은 과거의 경험을 계속해서 후대에 전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간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경험과 지혜도 많았지만, 인간은 옛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을 살피고 배워서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왔답니다.
조선 시대 임금님들은 당시 최고의 학자들로부터 수시로 '경연'이라는 자리를 마련해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배우고, 이를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교훈과 사례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역사는 인간 경험의 보물 창고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미래를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옛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 고구려에는 장군총보다 큰 거대한 무덤들이 매우 많다.
◆ 고구려가 처음부터 힘센 나라는 아니었다
고구려 역사를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흔히 고구려를 힘이 세었던 자랑스러운 나라로만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고구려가 처음부터 크고 힘센 나라였을까요? 또 고구려는 한번도 적에게 패하지 않은 행운의 나라였을까요?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고구려도 처음 건국할 때는 아주 작은 나라였고, 또 전쟁에서 여러 차례 패해 굴욕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또한 705 년의 긴 역사를 가졌지만, 결국에는 멸망했지요. 우리는 고구려의 자랑스러운 면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고구려에 부족했던 점, 실수했던 점을 살펴보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답니다.
기원전 1세기를 볼까요?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고 강대국은 중원에 자리한 한(漢)나라였습니다. 당시 한나라의 인구는 5000만 명을 넘었고, 면적도 370만 제곱킬로미터 정도였답니다. 반면 고구려는 인구가 겨우 15만 명, 면적은 불과 2만 제곱킬로미터도 안 되었습니다. 도저히 두 나라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700 년 뒤인 7세기 무렵 고구려는 수(隨)나라, 당(唐)나라와 싸워서 승리를 했습니다. 당시 수ㆍ당의 면적과 인구는 한나라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면적이 50 배, 인구도 30 배 가량이나 커져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눈부신 성장을 했던 것입니다. 고구려가 이처럼 성장해서 강대국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선 중종 때조차 온 나라에서 군사를 총동원한다고 해도 6만 명을 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후기에는 30만 명 이상의 군대가 있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중국의 북경과 일본의 에도를 갔다 오는 것이 외국 여행의 전부일 정도였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멀리 중앙아시아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사마르칸트까지 다녀 왔습니다. 고구려에는 요동성 한 곳에만 50만 석의 곡식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 전국의 군량 비축량이 50만 석, 문종 ㎰〈?10만 석에 불과했습니다. 세조 때에 잠깐 90만 석으로 올랐지만, 성종 때는 50만 석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농업만을 중시한 조선보다 고구려가 군량을 더 많이 갖고 있었던 것일까요? 조선은 명(明)나라와 한 차례 싸워 보지도 않고 스스로 제후(諸候)국이라며 굽실거렸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하의 질서를 지키는 천손(天孫)의 나라이자,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나라라고 여겼습니다.
◆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키운 나라
조선과 고구려의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고구려는 대체 어떤 실력을 갖고 있었고, 고구려인은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었을까요?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살수대첩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제는 고구려가 어떠한 나라였기에 당시 세계 최강국인 수나라를 격파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보다는 그 바탕에 깔린 고구려의 특성, 고구려인의 생활 자세, 문화 등에 궁금증을 갖고 그것을 배워 보려는 자세가 더욱 필요합니다.
고구려는 당당히 세상의 주인공이자 대국인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구려의 당당함과 함께 대국을 건설한 고구려인의 노력을 배워야 합니다. 고구려가 처음부터 강한 나라였다면, 우리가 배울 것은 별로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숱한 좌절을 겪으면서 좋은 모습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반에서 꼴찌를 하는 친구라도 고구려의 역사를 보며 희망을 가지세요. 고구려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시간이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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