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山觀水 李健熙(백산관수 이건희)
- 대구시 북구 침산2동 105-4호 백산명리
010-2803-4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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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我/ 虎視牛行/ 韜光養晦
가로 30 X 세로 80(행서)
* 무아[無我]
산스크리트로 아트만(atman:自我)에 대비되는 말.
원어명 anātman
이 말에는 ‘내가 아닌 것[非我]’이라는 말과, ‘나를 소유하지 않은 것[無我]’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아트만을 인간에게 내재(內在)하는 보편적 원리로서 실체시(實體視)하는 데 비하여, 불교는 그러한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 유무에 대한 물음에 석가는 대답하지 않았다는 ‘무기설(無記說)’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아는 나의 것,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집착을 배제하는 것이다. 또한 《아함경(阿含經)》에는 오온(五蘊)의 하나 하나가 무상(無常)하며, 무상하기 때문에 고(苦)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아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오온으로 구성된, 무상하며 고를 감수하는 존재인 인간은 그러한 아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아트만, 즉 내가 아닌 것을 아나트만으로 보아,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관념을 배제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점차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아설이 확립되었다. 대승불교에서는 상주(常住)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 ·자재력(自在力)의 속성[常一主宰]을 지닌 아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무아는 무자성(無自性)으로 설명되었으며, 나아가 공관(空觀)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인무아(人無我)뿐 아니라, 법무아(法無我:이 때의 법은 모든 사물을 의미함)라는 말을 낳게 되었다.
* 호시우행[虎視牛行]
현실을 호랑이처럼 예리한 눈으로 보되, 행보는 소처럼 착실하고 끈기있게 하라.
* 도광양회[韜光養晦]
(韜 : 감출 도, 光 : 빛 광, 養 : 기를 양, 晦 : 그믐 회)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1980년대 중국의 대외정책을 일컫는 용어.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도광이라고도 한다.
약자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힘을 갈고 닦을 때 많이 인용된다.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다.
또 제갈 량(諸葛亮)이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써서 유비로 하여금 촉(蜀)을 취한 다음 힘을 기르도록 하여 위(魏)·오(吳)와 균형을 꾀하게 한 전략 역시 도광양회 전략이다. 그러나 도광양회가 널리 알려진 것은 이러한 고사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부터 중국이 취한 대외정책 때문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중국은 '기미(羈縻)' 정책을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기미란 굴레를 씌워 얽맨다는 뜻으로, 주변국을 중국의 세력 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중국은 그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그늘에 가려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도광양회를 기미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대외정책의 뼈대로 삼았다. 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생길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이후 20여 년간 도광양회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2002년 11월 후진타오[胡錦濤]를 중심으로 한 제4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도광양회는 새로운 외교노선으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화평굴기·유소작위·부국강병 등으로 이어지는 대외전략이다.
권상호
1주일 이내로 써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