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 김민홍
그와 마주 앉아 있으면 맘이 흥그럽지만 끝내 소통되지 않는 부분이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긴 인간 관계에 완전 소통이란 거의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욕망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더 이상의 관계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것이다. 그저 적당한 선에서 필요한 부분 만큼, 그러니까 외로우면 외로운 만큼의 관계면 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명의 진정한 친구 보다는 열 명의 적을 만들지 않겠다던 그. 그의 원만한 인간 관계는 모두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필자에게 처럼 흥그러운 맘을 갖게 하는 듯 하다. 만나면 사람을 편하게 하는 그. 타고나기도 했겠지만 오랜 수련에 의해 탁마된 듯한 그의 처세는 늘 필자의 마음 한켠에 부러움을 주곤 한다. 허나 그것은 필자의 몫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닌 듯 하다. 그저 그 자리가 그에게 잘 어울리고 외롭고 고단하지만 이 자리가 필자에게 어울릴 뿐이다. 왜냐하면 인생엔 이프(if) 즉 가정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면 지금 더 나을텐데 라던가 하는 가정은 그저 생각일 뿐, 지금 현재가 바로 필자의 인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 때는 필자의 고단한 생의 원인을 부모 탓, 사회 탓, 현실 탓, 건강 탓 등으로 돌려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다. 허나 누구의 탓도 아닌 그것이 바로 필자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편하게 받아드리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하다. 생래적(生來的) 외로움 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뿐 그의 생각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명의 진정한 친구를 얻기 보다는 열 명의 적을 만들지 않겠다는 그가 갑자기 현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그의 고독이 실감나게 만져지지만! 그리고 어쩌면 그는 그런 고독감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권상호
글이란 자식마냥 쓰고자 하는 순간, 인식하는 순간에만 내 글이지,
쓰는 순간부터 이미 나 아닌 나가 쓰기 때문에
나의 글이 아닌가 봅니다.
오우 예스.
김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