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金時習)
온종일 짚신으로 되는 대로 거니나니 /
終日芒鞋信脚行
한 산을 걸어 다하면 또 한 산이 푸르네 / 一山行盡一山靑
마음에 생각 없거니 어찌 몸에 불리우며 / 心非有想奚形役
도는 본래 이름 없거니 어찌 거짓 이뤄지랴 / 道本無名豈假成
밤 이슬은 마르지 않았는데 산새는 울고 / 宿露未晞山鳥語
봄바람이 끝이 없으매 들꽃이 아름답다 / 春風不盡野花明
짧은 지팡이로 돌아오매 봉우리마다 고요한데 / 短筇歸去千峯靜
푸른 절벽에 어지러운 놀이 저녁 볕에서 난다 / 翠壁亂煙生晩晴
풍악이 높고 낮아 열 두 봉인데 / 楓岳高低十二峯
봉 머리 돌부리에 마른 솔이 걸리었다 / 峯頭石角掛枯松
티끌의 어지러움에 도리어
곽랑이 교묘한데 / 塵紛却是郭郞巧
세상 일은 모두
호접을 따라 비었더라 / 世事盡隨蝴蝶空
계수나무 열매가 떨어질 때에 저녁 볕이 엷은데 / 桂子落時殘照薄
버들꽃이 나는 곳에 저믄 산이 무르녹다 / 楊花飛處晩山濃
방석에 혼자 앉았으면 향 연기는 실 같은데 / 蒲團獨坐香如縷
풍교의 밤중 종소리를 사랑스리 듣는다 / 愛聽楓橋半夜鍾
펄렁펄렁 하나의 지팡이가 허공을 울리며 나는데 / 翩翩一錫響空飛
오월의 소나무꽃이 푸른 산에 가득하다 / 五月松花滿翠微
온종일 바리를 들고 다니매 천집의 밥인데 / 盡日鉢擎千戶飯
여러 해로 누더기 빌었거니 몇 사람의 옷이던가 / 多年衲乞幾人衣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 스스로 청정하고 / 心同流水自淸淨
몸은 조각 구름과 함께 시비가 없다 / 身與片雲無是非
강산을 두루 밟고 다니니 두 눈이 푸르렀는데 / 踏遍江山雙眼碧
우담발꽃[優曇花]이 피는 그때에 돌아가리 / 優曇花發及時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