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빛이 빚어내는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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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권상호
글빛 박혁남 교수는 오래전부터 얼굴보다 작품으로 익히 알아온 작가이다.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서예전공에서 함께 근무하면서부터는 서로의 예술 세계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필 벗의 한 사람으로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뻐하며 지내고 있다. 그 사이 그에게 기억되는 커다란 이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예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오랫동안 골똘히 천착해 오던 시작(詩作)활동을 통하여 시단에 등단하게 된 일이요, 다른 하나는 미래 도시 인천에 빛갤러리를 개관하여 많은 문화예술인과 접하면서 서예술의 실용성과 소통 문제에 대하여 남다른 키워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내적 성숙을 가져와 작가로서의 창작 에너지원이 되었고, 후자는 외적 교류를 통한 일상에서의 서예술 재해석과 위상 제고의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서예의 가장 큰 아포리아는 서예술의 혼이라 할 수 있는 선문(選文)에 있다. 선문은 오브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먼저 대두되는 것은 작가의 개성적 고민이자 선문 내용에 따라 선체(選體)와 장법(章法)이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인 박혁남에게 있어 적어도 선문만은 문제되지 않는다. 늘 시를 창작하고 또 붓으로 신중하게 옮겨보곤 하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씨앗은 소리와 빛이다. 조형예술에 속하는 서예는, 그 중 빛이라는 씨앗이 발아한 것이다. 소리는 듣고 빛은 보는 것이지만 그의 서예 작품에는 묘하게도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 그의 붓길의 고유성과 신비성은 보여주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들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붓길에는 보는 즐거움에다 읽고 듣는 재미도 더한다.
글빛 박혁남 교수의 글빛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질박하고 꾸밈없는 서체와, 배경으로 처리한 그림과, 상큼하게 얼굴을 내미는 낙관이 현악 3중주처럼 그윽이 다가온다. 그의 작품에 대한 관전 포인트는 정제된 여러 시각적 요소가 빚어내는 하모니에 있다. 순간 가슴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이 일고 이윽고 반해버리게 된다.
솜솜 뜯어보면 그의 글씨는 자유와 여유의 옷을 입고 있다. 고전을 바탕으로 깔고 있으면서도 서예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획은 획 나름대로 글자는 글자 나름대로 제각기 포즈를 취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썩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글빛만의 빛과 향기에서 개성적 표정이 있는 한글 서예의 무한한 가능성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자기 일에 열정을 쏟을 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기분 좋은 창의적 열정이다. 한글 서예의 아방가르드에 서서 새로운 지평을 끊임없이 열어 갈 때, 아름다운 서예 세상이 열리리라.
글빛도 빛이요, 혁남도 빛이다. 이천구년 세모에 경인(京仁)에서 각각 두 차례에 걸쳐 펼치는 그의 먹빛잔치는 경인고속도로 위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한다.
갈채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