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닮은 글씨
우선 이 아름다운 봄에, 봄을 닮은 작가 연석 이상덕 선생께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류정예작가로 선정되고 또 초대전까지 열게 됨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연석은 대상 수상자이기 전에 치열한 작가 정신, 실험 정신 및 작품 완성도 등이 뛰어나기 때문에 선정되었다고 생각한다.
연석 선생과 나와의 인연은 문화 1등 구 노원에서 출발한다. 노원서예협회 활동을 함께하면서 필연으로 만났고 여기서 많은 전시회를 통하여 작가적 감수성도 주고받았다. 서예에 대한 걱정과 작가로서의 고뇌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준 노원서예협회는 서로에게 항상 작은 기쁨으로 다가왔다.
연석은 한글 서예가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글 창제 정신인 ‘자주(自主), 애민(愛民), 실용(實用)’ 정신이 그의 인품과 작품에서 배어 나온다. 여기서 자주라 함은 그의 개성적 사고가 작품의 독창성과 닮아있음을 말하고, 애민이라 함은 평소 그의 주변 인물에 대한 배려의 모습과 감상자에게 다가가려는 작품의 내면이 오버랩 됨을 말하며, 실용이라 함은 작품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실생활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작품 구상을 말한다.
작품 조병화 시인의 ‘해마다 봄이 되면’에서 보여주듯이 연석은 봄을 닮은 작가이다. 봄처럼 부지런한 작가이다. 끝없는 열정으로 나이가 들수록 연찬에 더욱 골똘하고 있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께서도 요즈음의 연석처럼 바빠지셨다. 세종문화회관 운영만도 힘든데, 앉은 자리 옮기랴, 한국에서 가장 넓은 길 세종로 정비하랴, 광화문광장 지하에 세종대왕 전시관 운영하랴,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 전파하랴 눈코 뜰 새가 없으시다. 어디 이뿐인가. 뜻하지 않던 세종시라는 거대한 민족적 숙원 사업 때문에 잠마저 설치고 계시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덕(德)이 있는 사람은 거절할 줄 모르기 때문에 늘 바쁘다. 작가의 덕은 바쁜 일상에다가 묵향(墨香)마저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바쁘다.
연석은 봄처럼 꿈을 지닌 작가이다. 꿈을 지닌 작가이기에 비전이 있고 신뢰가 간다. 그래서 항상 표정이 밝고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연석은 초대작가의 타이틀로 행복한 마침표를 찍고 나서,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창신(創新)의 작가로서 아름다운 새 출발을 하였고 오늘도 열심히 자기 레인을 달리고 있다.
연석은 봄처럼 나날이 새로워지는 작가이다. 작가의 생명력은 끊임없는 창작에 있다. 창작이란 무한의 변화 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서예는 쓰면 되는 게 아니라 만 번의 NG 끝에 얻어지는 극적인 한 장면과 같다.
그는 이제 한문 서예에도 눈길을 돌리며 무한히 펼쳐져 있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국한문 혼용 서예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 서예는 일한문(日漢文) 혼용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으나 우리는 엄청난 자료에 비해, 거의 시도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필맥(筆脈)의 중심이 한문의 경우는 가운데로 흐르고 있으나 한글은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석은 국한문 혼용 글씨를 무리 없이 조화롭게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이고, 또 상당한 부분에서 성공하고 있다. 절묘한 중심 이동이 그 해답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연석 선생의 글씨는 유용성이 있다. 지하철 상계역을 내려오다가 보면 머리 위 중앙에서 그의 병풍 글씨가 맞이하고 있다. 평소 그의 도전적 심미안과 전시 공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물의 하나이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 대부분은 아파트라는 현대적 삶의 공간에 어느 정도 어울리는 칼라와 구도를 지니고 있다. 전통을 아우르면서도 선문(選文)과 형식(形式)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분명하다.
연석은 여전히 푸르게 숨 쉬는 한글서예 품속에서 낙관이 주는 이미지처럼 빨갛게 익어가는 미래를 스케치하고 있다.
2010. 3. 4.
삼각산 아래 부휴실(浮休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