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예의 현실 진단과 비전을 위한 제언
권상호(문학박사, 문예평론가)
1. 들어가며
흔히 시간의 흐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3분법으로 인식되고, 공간의 방향은 동서남북, 전후좌우라는 4분법으로 인식된다. 절대적 시간과 공간은 영원과 우주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상대적 시간과 공간은 개인의 노력과 인식에 따라 서로 다르다.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과 축적되는 시간이 그것이다. 흘러가는 객관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나, 축적되는 주관적 시간은 불공평하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는 때가 되면 누구나 다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축적되는 시간 속에서는 죽더라도 그 사람의 방명(芳名)이 오래 흐르는 이가 있고, 허명(虛名)의 악취가 눈총의 상처로 남는 이도 있다.
과거의 축적이 현재가 되고, 현재의 축적이 미래를 만든다. 그렇다면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올바르게 진단하고 그 핵심가치를 찾아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겠지만, 우리들의 관심은 시간 속에서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면서 변화를 거듭해 온 서예의 창조적 계승과 변화에 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여기에서 여러 예술 장르 가운데 서예인가. 첫째, 서양 예술을 대표하는 장르가 건축과 조각이라면, 동양예술을 대표하는 것은 서예이고, 둘째, 문자예술인 서예는 예술이기 전에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근간인 문사철(文史哲)을 담는 그릇이었으며, 셋째, 글씨만으로는 존재 가치가 떨어지기에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을 표방하며 오랫동안 동양의 대표적 예술 장르로서 자리매김해 오다가 근현대에 이르면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서예가 점차 소외 장르로 전락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웃 나라의 서법(書法), 서도(書道)를 표방하면서도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고 서예(書藝)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래의 이름은 ‘서(書)’라는 1음절 그 자체였고, 서(書)의 실천은 ‘점획(點劃)’ 2음절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 점의 표정은 무한하고 그 획의 기개(氣槪)는 경계가 없었다. 때로는 모나고 둥글게, 때로는 곧거나 휘어지게, 때로는 두께와 속도를 달리하며 좌충우돌,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면서 서예술(書藝術) 활동을 실천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글자를 쓰는 대신에 터치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기나 편지는 키보드를 쳐서 보내고, 메모나 메시지는 키패드를 터치하여 보낸다. 그러니 세상은 서예를 비롯한 손글씨가 소외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문방사우(文房四友)의 지조(志操)와 결백(潔白)에도 불구하고 서예의 입지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점차 좁아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예의 실용(實用)으로서의 역할은 사라져가더라도 예술(藝術)로서의 서예는 남아있고, 남이 뭐라 하든 붓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심지(心志) 굳은 지사적 서예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2년이 넘는 동안 긴 코로나 터널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AI, NFT, 블록체인, 메타버스(Metaverse), 디지털 플랫폼(Digital Platform) 등의 수많은 낯선 단어들에게도 시달려 왔다. 특히 이러한 단어들이 예술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니,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2. 한국 서예의 현실 진단
1) 문자 권력으로서의 서예
주지하다시피 서예는 문자(文字)를 매개로 하여 표현하는 조형 예술(造形藝術)이다. 다시 말하면, 서예는 종이 위에 필묵(筆墨)으로 점과 획을 결합하여 문자의 미적 질서(美的秩序)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서예를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해 주는 서예의 씨앗이 문자(文字)인데, 바로 이 문자가 동서고금에 큰 힘을 지니고 있으니, 이를 ‘문자 권력(文字權力)’이라 이름 붙인다.
문자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고, 또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는 때도 많았다. 태초에 문자는 제사장이나 권력자들의 전용물이었다. 근대까지도 문자는 소위 양반들만의 전유물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문자 대장동 게이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과 인본주의 탄생 이후는 누구나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사실상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문자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문자를 통하여 치러지는 각종 시험(試驗)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더 높은 지위와 자격을 얻게 되니, 여전히 문자는 권력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명징한 사실 하나는 문자에 표정(表情)을 입힌 서예를 중시하던 때에는 서예 역시 막강한 권력의 하나였다. 그러나 기계문명, 물질문명 시대를 거쳐 정보화 시대에 이르자 문자는 오직 빠른 가독성(可讀性)만이 문제가 되고, 문자의 미적 질서인 서예는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2) 서예에 대한 인식의 변화
옛 유생이나 선비들에게 있어 서(書)는 <주례(周禮)>에 나오는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라는 육예(六藝)의 하나로 필수과목이었으나, 오늘날의 공교육 현장에서는 선택 과목에서조차 빠졌다. 인물 선택의 기준이었던 신언서판(身言書判)에도 ‘서(書)’가 들어있었지만, 지금은 장관 추천 기준에는 고사하고라도 기초단체장 후보 명함에도 서(書)가 들어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동양에서 서(書)는 학덕(學德)을 갖추고자 하는 인물에게, 사회 지도층이나 군주(君主)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던 절대적 덕목이었다. 그래서 서예를 학(學)과 예(藝), 도(道)와 기(技)가 혼효된 동양예술의 극치로 보았다. 서예는 서사자의 인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