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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월간서예> 2023. 4월호 논단 - 인류 최고의 창작 동사 '짓다'

월간서예 2023. 4월호 <논단> - 통권 500호 기념 특집

인류 최고의 창작 동사 ‘짓다’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서예가)

창조(創造)는 신의 영역이고, 창작(創作)은 인간의 영역이다. 두 단의 차이는 ‘지을 조(造)’와 ‘지을 작(作)’에 있다. 뜻은 둘 다 ‘짓다’이다. ‘조(造)’는 신에게 나아가(辶) 희생물로 소(牛)를 바치고 소원을 말하는(口) 모습에서 본디 신과 관련한 글자였다. 그러나 ‘작(作)’은 ‘사람(亻)’이 밭을 갈거나 옷을 짓는(乍) 모습에서 인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곡선(曲線)은 신의 선이고, 직선(直線)은 인간의 선이다. 이는 에스파냐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말이다. 서예는 곡(曲)과 직(直)의 조화로운 만남에서 창작되는 예술이다. 해서를 먼저 공부하고 나중에 초서로 들어감은 직선에서 곡선으로의 중심 이동이라 할 수 있다. 직(直)이 양(陽)이라면 곡(曲)은 음(陰)이다. 한 획 또는 한 글자의 형태를 역학적으로 보면 대개 상양하음(上陽下陰), 좌양우음(左陽右陰)의 모습이다.

자연(自然)은 신의 작품이고, 예술(藝術)은 인간의 작품이다. 신의 창조물인 자연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직선을 표방하며 살다가 곡선의 세계인 자연을 닮고자 하는 행위가 어쩌면 예술 활동일지도 모른다.

서예에서 글쓰기에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글짓기이다. 지금은 ‘짓’이란 말이 주로 좋지 않은 때에 쓰이고 있지만, 인간이 몸을 움직이는 모든 행동이 ‘짓’이었다. 여기에서 파생된 동사가 ‘짓다’이다. 알고 보면 ‘짓다’는 인류 최고의 창작 동사이다. 옷도 짓고, 밥도 짓고, 집도 짓는다. 글도 짓지만 시, 소설, 수필, 희곡 등도 짓는다. 나아가 농사, 이름, 표정, 미소, 한숨, 매듭, 마무리, 약, 짝, 죄까지도 짓는다.

선종(禪宗)의 공안(公案) 중에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제 간이나 서로 합심해야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병아리가 달걀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는 것을 탁(啄)이라 하는데, 배우는 사람의 관심은 줄(啐)에 있다. 죽을(卒)힘을 다해 입(口)을 비비는 모습이 줄(啐)이다. 이것은 탄생을 위한 처절한 ‘몸짓’이다. 병아리의 짓은 쫀다기보다 약간의 태동(胎動)일 뿐이어서 사전에는 ‘빠는 소리 줄(啐)’로 기록하고 있다.

화창한 4월과 함께 ‘짓다’를 주제로 한 창작의 노래, 줄탁동시를 사제 간의 듀엣으로 연주해 봄은 어떨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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