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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의 菊
1. 牧隱詩藁卷之二
次仲剛韻 중강(仲剛)의 운에 차(次)하다.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물리치고 / 涼風吹暑去
오만 숲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니 / 紅樹尙交加
꿈꾸는 것은 오직 고향 마을이요 / 入夢唯鄕曲
맘에 걸리는 것은 바로 국가일세 / 嬰心是國家
풀 무성하니 난초는 더욱 향기롭고 / 草深蘭更馥
서리 짙으니 국화는 오히려 피었네 / 霜重菊猶花
세상 맛을 이제 처음 보았으니 / 世味初嘗鼎
한가로이 차나 마셔야겠네 / 悠哉且飮茶
2. 牧隱詩藁卷之三
次韻題完山記室華同年詩卷 三首。予訪華君至完山。同年尹典籤如京。偶相値。留數日。完山。百濟王甄萱故都也。 차운(次韻)하여 완산(完山)의 기실(記室) 화 동년(華同年)의 시권(詩卷)에 세 수를 쓰다. 내가 화군(華君)을 찾아 완산에 갔다가 마침 서울에 가는 윤 전첨(尹典籤)과 우연히 서로 만나서 수일 동안 함께 머물렀다. 완산은 백제 왕(百濟王) 견훤(甄萱)의 고도(故都)이다.
경림에 홀로 빼어나 부여잡을 수 없어라 / 獨秀瓊林逈莫攀
응시자들이 화군 얼굴을 다투어 보았네 / 白袍爭覩華君顔
풍채는 우뚝하여 산악같이 고상하고 / 風儀崷崒高山嶽
도량은 광대하여 온 세상을 좁게 여기네 / 汪度涵泓隘世寰
정사는 이미 여러 사람 위에 있거니와 / 政事已居諸子右
문장은 고인의 사이에 끼일 만하도다 / 文章可置古人間
당부호니 기실참군(記室參軍)의 꿈을 깨우지 마소 / 丁寧休攪參軍夢
단양에 취해 넘어져 정히 못 돌아오리 / 醉倒丹陽定未還
한림 공봉 나는 화군을 즐겨 따르거니와 / 翰林供奉喜追攀
더구나 동년끼리 한자리에 모였음에랴 / 況與同年此會顔
기실은 의연하여 막부의 가장 으뜸이요 / 記室毅然傾幕府
전첨은 늙었음에도 속세를 분주하누나 / 典籤老矣走塵寰
포의로 맺은 우의는 형체 밖의 것이요 / 布衣交契形骸外
금슬의 풍류는 서로 백중의 사이로세 / 錦瑟風流伯仲間
우연히 한번 즐긴 시간 번개처럼 빨라라 / 剛厭一歡如掣電
옆 사람은 더디 돌아감을 괴이타 말게나 / 傍人且莫怪遲還
견훤성 경치를 올라 구경하라 권하기에 / 甄城雲物勸躋攀
한가히 옛일 감상하며 한 번 웃음 짓노라 / 撫古悠然一破顔
의관 문물을 찾으려니 지난 일이 슬퍼라 / 欲訪衣冠悲往事
부질없이 남은 기록만 갖고 얘기를 하네 / 謾將圖記說遺寰
술자리는 서리 뒤의 황국 아래 무르녹고 / 酒闌黃菊淸霜後
주렴은 푸른 산 낙조 사이에 걷혀 있도다 / 簾捲靑山落照間
고금의 영웅들은 마치 날아가는 새처럼 / 今古英雄如過鳥
반드시 지쳐야만 돌아갈 줄 알지 않는다오 / 不須待倦始知還
[주D-001]경림(瓊林) : 경림은 원명(苑名)인데, 송대(宋代)에 진사(進士) 급제자에게 이 경림원에서 잔치를 내린 데서 온 말로, 진사시(進士試)에 고등(高等)으로 급제한 것을 의미한다.
[주D-002]단양(丹陽)에 취해 넘어져 : 단양은 지명인데, 취해 넘어진 고사는 미상이다.
[주D-003]고금의 …… 않는다오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히 산굴에서 나오고, 새는 날다 지쳐 돌아갈 줄을 알도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한 데서 온 말이다.
3~8. 牧隱詩藁卷之四
題南大藩司尹菊詩卷末 五首 남 대번 사윤(南大藩司尹)의 국시권(菊詩卷) 끝에 제하다. 5수(五首)
된서리로 온갖 풀이 시들 때에 / 嚴霜悴百草
고운 것은 두어 가지 국화뿐이라 / 粲粲數枝菊
미물일망정 내 회포 감동케 하여 / 微物感予懷
가을이 오면 날로 서로 따른다오 / 秋來日相逐
사람마다 국화를 심고 구경하지만 / 人人種菊看
기필코 국화를 다 알진 못한다오 / 未必能知菊
술 마시며 남산을 마주하노라니 / 把酒對南山
유연함에 따를 바를 잃었네그려 / 悠然失所逐
도연명 후론 국화 사랑한 이 적다는 / 頗怪周子言
주자의 말이 자못 괴이하여라 / 陶後鮮愛菊
같은 때의 다른 고인을 본다면 / 同時見古人
지난 자취를 굳이 따를 것 없어라 / 往躅不須逐
밭이 있어 차조를 심을 만하고 / 有田可種秫
집이 있어 국화를 심을 만하니 / 有屋可種菊
어떻게 하면 도연명을 본받아서 / 何當師淵明
돌아가 명리 쫓는 세상 사절할꼬 / 歸去謝馳逐
다섯 말의 쌀 때문이 아니요 / 不爲五斗米
세 길의 국화 때문도 아니로다 / 不爲三逕菊
집에 돌아가는 데에 뜻이 있어 / 志在歸去來
성화 같음을 누가 능히 따르랴 / 飛電誰能逐
[주D-001]술 …… 잃었네그려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도연명(陶淵明) …… 말 : 주자(周子)는 송(宋)나라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를 높여 이른 말인데,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아, 국화를 사랑한 이가 도연명 이후로는 또 있었단 말을 거의 못 들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다섯 …… 아니로다 : 도연명이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있을 때, 군(郡)의 독우(督郵)가 그곳 시찰을 나오게 되어, 아전이 도연명에게 의관을 정제하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말하자, 도연명이 말하기를, “나는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향리(鄕里)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 하고, 팽택 영의 인끈을 풀어 던지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는데, 〈귀거래사〉 가운데 “세 길은 묵어 가고 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도다.[三逕就荒 松菊猶存]” 한 데서 온 말이다.
9. 牧隱詩藁卷之四
卽事 즉사(卽事)
대신은 당일에 국가 안위가 부쳐졌건만 / 大臣當日寄安危
후일 만전의 좋은 계책 다 펴지 못했네 / 善後良圖未盡施
남전의 옥 가루 먹는 법은 본디 있으나 / 飧玉藍田雖有法
창해에 돛 거는 때인들 어찌 없으리오 / 掛帆滄海豈無時
찬 이슬 맞은 국화는 마치 젖은 돈 같고 / 菊花露冷金錢濕
바람 받은 소나무는 푸른 일산이 기운 듯하네 / 松樹風微翠蓋欹
억지로 읊조리니 읊조림 절로 괴로워라 / 強筆偶吟吟自苦
출처를 고인 가운데 누구를 따라야 할꼬 / 古人出處欲從誰
[주D-001]남전(藍田)의 …… 법 : 고대(古代)에 장수(長壽)를 위하여 옥 가루를 먹었다 하는데, 《위서(魏書)》 이선열전(李先列傳)에 의하면 “매양 고인(古人)의 옥 가루 먹는 법을 부러워하여 남전(藍田)을 찾아가서 몸소 옥을 캐었다.”고 하였다.
10. 牧隱詩藁卷之四
題朴中書詩卷 名絢 박 중서(朴中書)의 시권(詩卷)에 제하다. 이름은 현(絢)이다.
잔잔한 가을 물처럼 마음 본디 텅 비었고 / 秋水無波心本虛
찬란한 문장은 임금님 조서에 빛나누나 / 粲然奎璧映天書
문장의 흘러나옴은 한도 끝도 없어서 / 文章流出無窮盡
조서를 이룰 땐 수시로 오색이 펼쳐지네 / 裁詔時時五色舒
시적을 항복시키려고 진영 먼저 열고서 / 欲降詩敵壁先開
천하에 술하고만 가장 친밀하게 사귀어 / 四海神交麴秀才
한 번 읊고 한 잔 마시기가 응당 잦은데 / 一詠一觴應數數
가을바람이 국화주 잔 불어 움직이누나 / 秋風吹動菊花杯
11. 牧隱詩藁卷之四
梁州謠。寄梁州任使君。양주요(梁州謠). 양주(梁州) 임 사군(任使君)에게 부치다.
객이 남녘으로부터 멀리 와서 / 客來南天遙
나에게 양주요를 전해 주었네 / 遺我梁州謠
지난해엔 여름 비가 심히 내려 / 去年夏雨苦
사방 들이 다 농사를 실패하니 / 四野無春苗
농부들은 낯빛이 매우 처량하고 / 農夫色甚哀
집에 들면 찬 재처럼 썰렁하였네 / 入室空寒灰
옛날엔 관창에 곡식이 묵었더니 / 官倉昔紅腐
지금은 먼지만 날릴 뿐이라네 / 今也生塵埃
늙은 할아비가 슬하의 손자를 / 老翁膝下孫
천금같이 애지중지하다가 / 愛重如千金
하루아침에 그를 재화로 여겨 / 一朝作貨視
보내고 나서는 길이 슬퍼했다네 / 旣送長悲吟
성곽을 두른 청산은 갑절이나 선명하고 / 靑山繞郭倍鮮明
문항은 썰렁하여 곡소리도 안 나는데 / 門巷蕭條無哭聲
두어 집 아전들이 세습 관직 염려하여 / 數家群吏念世職
없는 것을 쥐어짜서 접대품을 마련하고 / 強刮龜毛辦供億
빈 뜰에 열 지어 사군께 절하고 나서 / 空庭羅拜朝使君
어려움 호소하니 어찌 들을 수 있으랴 / 告訴艱難那可聞
사군은 차마 양주 곡식을 먹지 못하고 / 使君不忍食梁粟
산승에게 편지 보내 두어 곡을 얻어서 / 書與山僧得數斛
노파의 기국편을 소리 높여 읊조리니 / 高吟老坡杞菊篇
북해의 한찬전보다 월등히 뛰어났네 / 遠過北海寒餐氈
사군은 일찍이 천관의 관속이 되어서 / 使君曾作天官屬
눈동자가 반짝반짝 사람을 환히 비췄고 / 眸子照人光可燭
엄숙한 말은 광인의 말이 아니었기에 / 風霜口吻非其狂
간악한 자가 보고 놀라서 도망쳤었네 / 奸夫望之驚走藏
끝내 소인 등용으로 뜻을 펴기 어렵자 / 招得營營意難寫
훌쩍 떠나 남쪽의 지방관이 되었는데 / 翩然南游跨五馬
그 지방은 또한 전염병을 만났으니 / 南游又逢歲札瘥
조물주의 사람 놀리는 일을 어찌하랴 / 造物戱人知奈何
양주곡이 내 마음을 몹시 슬프게 하누나 / 梁州曲令我心惻惻
누가 너희들에게 옷을 주고 밥을 줄꼬 / 誰與汝衣誰汝食
사군의 백성 돌보는 뜻이 하도 깊으니 / 使君撫字深復深
후세에 양주에는 임씨 성이 많으리라 / 後世梁民多姓任
[주D-001]그를 재화로 여겨 : 유종원(柳宗元)의 〈동구기전(童區寄傳)〉에, “월인(越人)은 은정(恩情)이 부족하여 아들이나 딸을 낳으면 반드시 그를 재화(財貨)로 여겨서, 아이가 7, 8세 이상만 되면 부형(父兄)이 그 아이를 팔아서 이익을 노린다.” 하였다.
[주D-002]노파(老坡)의 기국편(杞菊篇) : 노파는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당(唐)나라 시인 육귀몽(陸龜蒙)이 일찍이 집의 앞뒤에 구기자(枸杞子)와 국화(菊花)를 심어 놓고 봄ㆍ여름으로 그 지엽(枝葉)을 채취해 먹으면서 〈기국부(杞菊賦)〉를 지었으므로, 소식 또한 육귀몽의 〈기국부〉를 모방하여 〈후기국부(後杞菊賦)〉를 지은 것을 가리키는데, 그 대략에 의하면, “나는 바야흐로 구기자를 양식으로 삼고, 국화를 마른 양식으로 삼아서,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꽃과 열매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으련다.[吾方以杞爲糧 以菊爲糗 春食苗 夏食葉 秋食花實 冬食根]” 하였다. 《東坡全集 卷33》
[주D-003]북해(北海)의 한찬전(寒餐氈) : 북해는 한(漢)나라 때 흉노(匈奴)에 사신갔다가 북해에 억류되었던 소무(蘇武)를 가리키는데, 한찬전이란 곧 흉노가 소무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억류시켜 놓고 먹을 것을 단절시켜 버리므로, 소무가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백설(白雪)과 전모(氈毛)를 씹어 먹으면서 어렵게 생명을 유지했던 데서 온 말이다.
12. 牧隱詩藁卷之五
次金同年前後所寄詩韻 김 동년(金同年)이 전후로 부친 시운에 차하다.
살아서 요순 같은 임금 만난 게 다행하여라 / 自幸生逢高舜君
하늘이 과연 사문을 없애려 하지 않음일세 / 皇天未欲喪斯文
그대는 재능 갖추어 장차 크게 쓰일 터인데 / 知君蘊玉將求價
무슨 일로 전원에 가서 농사를 배운단 말가 / 何事歸田便學耘
옛꿈은 비 오는 밤 함께한 게 늘 생각나고 / 舊夢每思同夜雨
새 시는 봄 구름에 부쳐 준 게 자주 기뻤네 / 新詩屢喜寄春雲
아무쪼록 삼동엔 학문 더욱 열심히 닦아서 / 更須努力三冬學
마침내 큰 명성 이루는 사업을 기약하게나 / 事業終期遠播芬
그 옛날 상종하던 곳을 생각하니 / 憶昔相從處
시단이요 취향 두 군데였었네 / 詩壇與醉鄕
어둔 구름 속에 산사는 예스럽고 / 暝雲山寺古
가을 이슬은 초당에 서늘했었지 / 秋露草堂涼
연구 지은 것도 능히 기억하는데 / 聯句猶能記
술잔 기울인 걸 잊을 수 있으랴 / 傾杯可得忘
언제나 한 등불 아래 담소하면서 / 何時一燈話
풍우의 밤에 다시 침상 마주할꼬 / 風雨更同牀
소장 시절에 많은 공을 수립하고 나서 / 樹立脩功少壯年
문득 백발에 좋이 전원으로 돌아갔네 / 却將華鬢好歸田
묻노니 그대 무슨 까닭에 먼저 돌아갔나 / 問君何故先歸去
남녘을 바라보면서 때때로 한탄하노라 / 南望時時一悵然
매화는 절로 이르고 국화는 절로 더디되 / 梅花自早菊花遲
일종의 맑은 향만은 각각 때를 얻는다오 / 一種淸香各得時
우주 안에 그대 있음은 하늘이 명한 바니 / 宇宙有君天所命
행장 가지고 행여 너무 깊이 생각 말게나 / 行藏且莫苦尋思
풍과 소는 탕진하여 소리 없이 적적한데 / 風騷蕩盡寂無聲
심송은 너무 부화하고 포사는 맑았도다 / 沈宋浮華鮑謝淸
고금에 시가로서 그 누가 가장 왕성했나 / 今古詩家誰健步
이백 두보만 이름을 가지런히 하게 했네 / 且敎李杜獨齊名
[주D-001]풍우(風雨)의 …… 마주할꼬 :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친구끼리 서로 만나서 즐겁게 담소(談笑)하는 것을 이르는데, 백거이(白居易)의 〈우중초장사업숙(雨中招張司業宿)〉 시에, “와서 나와 함께 자지 않으려나, 빗소리 들으며 침상 마주해 자자꾸나.[能來同宿否 聽雨對牀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심송(沈宋)은 …… 맑았도다 : 심송은 당(唐)나라의 시인(詩人)인 심전기(沈佺期)와 송지문(宋之問)을 병칭한 말이고, 포사(鮑謝)는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인 포조(鮑照)와 사영운(謝靈運)을 병칭한 말인데, 부화하다, 맑다는 것은 그들의 시격(詩格)을 이른 말이다.
13~15. 牧隱詩藁卷之五
種菊 三首 국화를 심다. 3수(三首)
국화 심어 나의 청결함 더하매 / 種菊添我淸
천공이 도리어 나를 시기해서 / 天工却娟嫉
비 그치어 바람으로 흔들어 대고 / 罷雨動以風
구름 거두어 햇볕으로 쬐어 대니 / 收雲炙以日
스스로 못 버티고 흔들거려라 / 搖搖不自持
토맥이 아직 조밀하지 못함일세 / 土脈方未密
원컨대 저녁 내내 흐리게 하여 / 願借終夕陰
국화의 생기가 넘치게 해줬으면 / 令渠生意溢
국화 심어 내 깊은 정취 더하니 / 種菊添我幽
문창이 갑자기 깨끗하고 고와라 / 軒戶俄淸姸
긴 줄기는 찬 옥을 깎아 놓은 듯 / 長莖削寒玉
연한 잎은 푸른 연기가 어린 듯 / 嫩葉凝靑煙
이미 갰다 또 비가 오려고 하니 / 旣晴又欲雨
네 본성 상할까는 걱정 없구나 / 不憂傷爾天
천공이 어찌 나에게 사정을 두랴 / 天工豈私我
만물의 생장은 각각 자연이라네 / 物生各自然
국화 심어 내 뛰어난 정 더함은 / 種菊添我逸
추운 겨울을 깊이 기약함이라오 / 深期在歲暮
서리는 맑고 아름다운 빛 밝아라 / 霜淸秀色明
막걸리와 서로 잘도 어울리누나 / 白酒相媚嫵
모자 떨군 건 절로 풍류였지만 / 落帽自風流
유연의 정취는 그 누가 알런고 / 誰會悠然趣
도연명은 천년의 인물이라서 / 淵明千載人
찾아가려도 길을 몰라 염려로세 / 欲訪恐迷路
[주D-001]모자 …… 풍류였지만 : 진(晉)나라 맹가(孟嘉)가 중양일(重陽日)에 용산(龍山)의 연회(宴會)에 참석하여 국화주(菊花酒)를 마시고 놀면서 자기 모자가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도 모른 채 풍류를 발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유연(悠然)의 정취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16. 牧隱詩藁卷之六
憶舊游 예전에 놀았던 일을 추억하다.
소년 시절엔 놀기를 좋아했으니 / 少之時好游
푸른 산 흰 구름 그곳이었지 / 靑山白雲處
승경을 만나선 돌아가길 잊었고 / 遇勝淡忘歸
명상에 잠겨 조용히 말도 없었네 / 冥心寂無語
그리워라 천재인이여 / 懷哉千載人
국화 먹고 계피술을 마셨으니 / 飧菊啜桂醑
높은 풍도는 절로 무리가 없어라 / 高風自罕徒
훌륭한 자취가 바로 이러했었네 / 芳躅乃如許
바위 틈 집은 본디 열쇠도 없거니 / 巖戶本無鐍
평탄한 길을 누가 험하다 하는고 / 坦途誰云阻
17. 牧隱詩藁卷之六
自詠 스스로 읊다.
군자는 사람을 사정으로 사랑하지 않나니 / 君子愛人非徇私
조금만 치우치면 분명 속임을 받게 되리 / 少偏端的受他欺
위수 경수는 합쳐지면서 청탁이 구분되고 / 渭涇水合分淸濁
매화 국화는 피는 데 이르고 더딤이 있도다 / 梅菊花開有早遲
너른 조정 몰려 나가선 스스로 삼가야 하고 / 旅進廣庭當自愼
어둔 방에 홀로 있을 땐 하늘을 두려워해야지 / 獨居暗室畏天知
사를 막아도 꼭 참으로 막아지는 건 아닌데 / 閑邪未必眞閑得
당년에 시를 배우지 못한 게 후회스럽네 / 悔殺當年不學詩
[주D-001]사(邪)를 …… 후회스럽네 :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시경(詩經)》 삼백 편을 한마디의 말로 덮을 수 있으니,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다.’는 말은 《시경》 노송(魯頌) 경(駉)에 있는 말인데, 대체로 《시경》의 말 가운데 선한 것은 사람의 선한 마음을 감발(感發)시킬 수 있고, 악한 것은 사람의 방탕한 뜻을 징계시킬 수 있어서, 끝내 사람으로 하여금 성정(性情)의 바름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論語 爲政》
18. 牧隱詩藁卷之七
卽事 九首 즉사(卽事) 9수(九首)
산 빛은 한가한 가운데 더욱 좋고 / 山色閑中更好
시냇물 소리는 꿈속에도 맑건마는 / 溪聲夢裏猶淸
다만 부질없는 세속 일에 골몰하여 / 祇被塵緣汨沒
내 그윽한 정 저버림에 기가 꺾이네 / 垂頭負我幽情
밝은 달은 때로 왔다갔다 하거니와 / 明月時來時去
창랑수는 탁하기도 하고 맑기도 하네 / 滄浪有濁有淸
슬프다 내 평생에 사물을 관찰함은 / 慨我平生觀物
삼연한 공자의 생각 주공의 뜻이로세 / 森然孔思周情
술의 흥취와 시의 생각은 질탕하고 / 酒興詩情跌宕
하늘 모습과 바다 빛은 맑기만 하네 / 天容海色澄淸
일생의 세월을 어느덧 보내고 보니 / 斷送一生光景
공부는 다만 희로애락 잊는 데 있었네 / 功夫只在忘情
사륙변려문 지어서 기교 부리고 / 造語騈儷逞巧
청탁의 성운 맞춰 조화를 이루어라 / 諧聲淸濁含和
늙은 나는 이제 정신이 흐릿한데 / 老我如今怳惚
그대는 젊어서부터 활발함이 좋구나 / 喜君自少婆娑
평담함은 본래부터 맛이 적고요 / 平淡由來少味
청신함은 도리어 풍취가 많다네 / 淸新却是多姿
도끼로 깎은 흔적 전혀 없어라 / 斧鑿了無痕跡
동쪽 울에서 유연히 국화를 따도다 / 悠然採菊東籬
정회를 쏟아서 혼자 즐길 뿐이니 / 陶寫情懷而已
공덕을 선포하는데야 어찌하리요 / 鋪陳功德則那
늙은 목은이 근래에는 무양하여 / 老牧邇來無恙
온종일 청산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네 / 靑山盡日高歌
타파하면 원래 안팎이 없는 건데 / 打破元無內外
보아 오매 어찌 중간이 있으리요 / 看來何有中間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찾아오는 이가 모두 청한하리라 / 敲門盡是淸閑
일조의 허령은 스스로 만족커니와 / 一朝虛靈自足
다생의 장애는 모두가 텅 빈 거로세 / 多生障礙皆空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밝은 달 맑은 바람과 회통하리라 / 會通明月淸風
산색 보자고 어찌 애써 문을 열쏜가 / 山色何勞排闥
버들 그늘은 절로 뜰에 그득하네 / 柳陰自可充庭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태평한 천지 사이에 소요하리라 / 逍遙天地淸寧
[주D-001]도끼로 …… 없어라 : 시문(詩文)을 짓는 데 있어, 애써 첨삭(添削)한 흔적이 없이 자연스럽게 잘된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동쪽 …… 따도다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다생(多生) : 불가(佛家)의 용어로,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어 윤회(輪廻)의 고통을 받으면서 생사(生死)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말한다.
19. 牧隱詩藁卷之九
過涼亭下有感 양정(涼亭) 밑을 지나다가 느낌이 있어 짓다.
고운 담장 둘러친 웅장하고 화려한 누각이 / 鳥革翬飛繚畫墻
서리 빛처럼 흰 모래 길을 굽어 임했는데 / 俯臨沙道白如霜
당년엔 말에서 내려 천천히 가던 이곳을 / 當年下馬徐行處
오늘에 재갈 울림은 무슨 바쁜 게 있어설꼬 / 今日鳴鑣有底忙
깨진 주초 무너진 담장에 초목은 황량한데 / 破礎頹垣草樹荒
적막한 서쪽 봉우리에 저녁볕이 걸려 있네 / 西峯寂寂掛斜陽
인간이 잠깐 사이에 고금을 이뤘는지라 / 人間俯仰成今古
정자 밑의 행인이 속으로 몹시 슬퍼하네 / 亭下行人暗斷腸
봄날은 다스웁고 가을날은 서늘한데 / 春日微溫秋日涼
뭇 꽃들 두루 피고 국화 향기 불어주었지 / 群花開遍菊吹香
해마다 풍경이야 언제 바뀐 적이 있으랴만 / 年年風景何曾改
해마다 인정은 갈수록 더 상심스럽구나 / 歲歲人情轉可傷
20. 牧隱詩藁卷之九
詠菊 국화를 읊다.
국화가 난세 피해 동쪽 울타리에 있으니 / 菊花避地在東籬
하얀 꽃과 붉은 꽃이 각각 한 시절인데 / 白白朱朱各一時
천지도 그 마음 홀로 괴로움을 가련히 여겨 / 天地亦憐心獨苦
하늘 가득 바람 이슬에 서리를 더디 내리네 / 滿天風露降霜遲
엷은 구름 저녁볕이 성긴 울타리에 새들 제 / 薄雲斜日漏疎籬
노쇠한 백발 늙은이가 홀로 서 있는 때로다 / 白髮衰翁獨立時
정경이 절로 융화됨을 그 누가 헤아릴꼬 / 情境自融誰領得
예로부터 고상한 뜻은 늘그막에 생긴다오 / 古來抗志在衰遲
팽택에서 돌아가 울타리서 국화를 땄거니 / 彭澤歸來採向籬
남산의 빼어난 빛이 다시 아름다운 때로세 / 南山秀色更佳時
낙천은 본디 장수하길 바란 이가 아닌데 / 樂天不是延年者
이름과 더딤을 평론한 것이 가소롭구나 / 可笑評論早與遲
[주D-001]국화(菊花)가 …… 있으니 :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 국화를 따면서, 하염없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팽택(彭澤)에서 …… 때로세 : 일찍이 팽택 영(彭澤令)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간 도잠(陶潛)의 〈음주(飮酒)〉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 국화를 따면서, 하염없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낙천(樂天)은 …… 아닌데 : 낙천은 백거이(白居易)의 호인데, 그의 〈객유설(客有說)〉 시에, “요즘에 어떤 이가 해상에서 돌아왔는데, 바다 산 깊은 곳에서 누대를 보았고, 누대 안의 선감엔 방 하나가 비었는데, 모두 낙천이 오길 기다린다고 하더라 하네.[近有人從海上廻 海山深處見樓臺 中有仙龕虛一室 多傳此待樂天來]” 하고, 또 그의 〈답객설(答客說)〉 시에는, “나는 부처를 배울 뿐 신선을 안 배우니, 아마도 그대의 이 말은 헛소문인 듯하네. 바다 산은 본디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요, 돌아가려면 응당 도솔천으로 돌아가리라.[吾學空門非學仙 恐君此說是虛傳 海山不是我歸處 歸卽應歸兜率天]” 하였으므로, 소식(蘇軾)이 해월변사(海月辯師)를 조문한 시에서 백거이의 시 내용을 들어, “낙천은 본디 봉래산의 신선이 아니요, 서방정토에 의거해 주인이 되려 했다네.[樂天不是蓬萊客 憑仗西方作主人]”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이름과 …… 것 : 백거이가 국화의 이름과 더딤을 평론한 일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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