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下心)
- 수월 권상호
당신의 마음처럼 여름 볕이 뜨거웠습니다.
찬물 한 가득 떠서 훅훅 뿌려대며 지열을 식힙니다.
경계를 넘나들던 바람이 숨고르기 하듯
수초를 헤치며 너울너울 개울을 밟고 지나갑니다.
낮게만 드리우던 개울물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더 낮은 곳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순간, 주변이 잠잠해졌습니다.
내 마음도 깨끗해졌습니다.
어디쯤 걸어왔을까.
새벽 비 내린 밭가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간밤의 수선스러운 꿈 자락을 걷어내고 나와
하이얀 산(山)이내 몽글거리며 흩어지는
밭둑 질척한 흙 위에 맨발로 서서 소리쳐 부른
존재의 나무, 각성의 나무, 비움의 나무여
평생을 경계에서 이탈해 헛발질하며 걸어온
나의 한 생애가 순간,
몹시도 부끄러워졌습니다.
흙 속에 튼실히 뿌리내린 어린 잡목 한 그루보다
더 부실하고 허약한 내 모습을 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왠지 내 마음은 참 즐거워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하심(下心)이
나를 키웁니다.
억하심정(抑何心情)은 놓아두라며.
권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