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2010. 4월호- 무소유(無所有)

4. 무소유(無所有)

 

법정(法頂)스님,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라 하셨죠.

먼 길 떠나시는 발걸음이 홀가분하시겠어요.

 

버려라, 버려라 하시더니

저희마저 버리고 가시는군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굴레에 갇힌 저희가

예뻐 보일 리 없었겠죠.

저희도

반드시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

반드시 홀로 떠난다는 것

반드시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알 듯하지만

 

언제 떠날지

어디서 떠날지

어떻게 떠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

맑은 가난으로

()보다 귀한 향기(香氣)로 남겠나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상호 프로필(011-9009-1999) : , 도정(塗丁), 수월.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예겸임교수. 라이브 서예 창시. 한국예술문화원 부이사장. 한국미술협회 서예초대작가 겸 심사. 서울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 한국문학신문 노원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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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결국 불행해진다.
'맑고 향기롭게'스님은 맑음은 개인의 청정이요,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하신 것은 마음은 비우기보다는 써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라는 건 마음을 써서 마음을 닦고 그 다음에 그 닦아진 마음을 가지고 세상과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단체의 활동이라는 것은 결국은 마음도 쓰고 몸도 쓰고 머리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맑음을 펼치고 자연과 우리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단체입니다.
.법정스님 말씀 중에 선행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신 부분이 있는데 많이 가진 것을 그저 퍼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내가 맡아 있던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하셨더군요.
'맑고 향기롭게'스님은 우리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본디 없다. 모두 우주의 선물일 뿐이니까 잠시 맡아서 우리는 관리하는 것뿐이다.그러니까 그것이 필요한 곳에 나누어 써야 한다는 얘기를 하시고 스님도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직을 맡으셨지만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똑같이 회원들과 같이 활동도 하시고 또 회비를 내야 될 때라든가 장학금을 내야 할 때는 당신의 통장을 헐어서 장학금을 내놓기도 하시고. 그렇게 평범하게 한 회원으로서 활동을 하셨죠.
'맑고 향기롭게'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름다운 얼굴은 추천장이요,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씨는 신용장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처럼 스님께서는 배려를 제일로 여기셨죠. 그래서 스님이 평소 하신 말씀에 '이절 저절 가운데 가장 큰 절이 뭔 줄 아나'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죠. 그것은 바로 친절이야, 이렇게 하셨던 것처럼 스님은 물이 논에 들어서 벼를 빛나게 하고 산에 들어서 나무를 빛나게 하듯이 우리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상당히 애를 쓰셨습니다.
49재 하면 연가가 천도됐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 이전에... 그래서 그 이후의 스케줄 같은 것은 없습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30여 년 전에 쓰신 글이지만
그 울림은 날이 갈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버리지 못하니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니 번뇌에 빠지고
번뇌에 빠지니 삶이 혼란스럽고 무거워진다.
근본적인 해결은
모든 소유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의식 작용을 제어하는 것인데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스님은
업(業)을 쌓지 말라고 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만이라도 버리라고 가르쳤다.

스님의 말처럼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하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먼 길 떠나는 나그네에겐 소유가 적을수록 좋다.
소유한 것이 적을수록 나그네의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늦게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가지고 갈 것이 하나도 없다는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의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세속의 눈으로는 무소유로 보이는 저작물까지
‘말빚’이라며 부담스러워 하신 스님의 삶이 부럽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가.

소유의 감옥
민주주의 수호자
생명주의 실천가
법정(法頂)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明峰)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불법(佛法)의 정상(頂上)에 우뚝 서 계실 법정(法頂)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