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달을 읽는 물고기와 하늘을 얘기하는 새
삼복더위에 생각나는 곳은 海印寺(해인사)이다.
바다 海(해) 자가 있기 때문일까?
해인사 중에서도 堆雪堂(퇴설당)은 더욱 간절한 곳이다.
눈 雪(설) 자가 있기 때문일까?
유월 열사흗날
서울을 넘어 남양주시 수락산 자락을 찾는다.
계곡 한 편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나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세상의 때를 씻으며 붓을 잡는다.
물속 고기들도 행초서로 시를 쓰고 있다.
긴 여름날도 속절없이 저물어 가고
동산에는 달이 붕긋 고개를 든다.
밤하늘은 마침내 달 눈을 크게 뜨고
옅은 구름을 법문으로 읽고 있다.
밤새도 소리 공양을 시작하는데
순간 해인사 퇴설당 주련이 떠오른다.
퇴설당 주련엔
鏡虛(경허)선사께서 우주와 하나 된 경지를 노래한
5언 7구 깨달음의 주련이 서 있다.
여전히 산 능선은 세상 먼지를 막으며 서 있고
계곡 물소리는 바깥소리를 잠재우고 있다.
春秋多佳日(춘추다가일) 봄가을 내내 참 좋은 날 많더니
義理爲豊年(의리위풍년) 마땅한 약속 지켜 풍년이 들었구나.
靜聽魚讀月(정청어독월) 달을 읽는 물고기 소리 고요히 들으며
笑對鳥談天(소대조담천) 하늘을 얘기하는 새와 웃으며 마주하네.
雲衣不待蠶(운의불대잠) 해진 옷도 그만이라 누에 칠 일 없으리니
禪室寧須稼(선실영수가) 어찌하여 선방에서 농사까지 바라리오.
石鉢收雲液(석발수운액) 돌로 만든 발우에 곡차 한 잔 거두리라.
수월 권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