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에 부쳐
화발욕시방유색花發欲時方有色
꽃은 피려할 때 더욱 아름답고
수성택시각무성水成澤時却無聲
물은 못을 이룰 때 소리 없나니라.
경허鏡虛 스님의 게송입니다.
다 핀 꽃보다 막 피려하는 꽃이 더 아름답습니다.
열릴 듯 닫힌 문을 통하여
구름 사이로 얼굴을 반쯤 내민 산을 바라보는 것이
정녕 아름답습니다.
산골짜기 물은 청춘처럼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못의 물은 깊이를 더할 뿐
소리가 나지 않듯이
우리 인생도 나이가 들수록 깊이를 더할 뿐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서성書聖이자 다인茶人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노래입니다.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아 있는 곳에
차를 반쯤 마셔도 향기는 그대로요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깨달음이 있을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누나.
경허스님의 깨달음의 경계에 한 걸음 다가가고 싶습니다.
추사선생의 선풍仙風에 더불어 젖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닮아가는 것이 또 하나의 욕심인가 싶다가도
번잡한 생활 속에 한시름 잊고 싶을 때
이슬 머금고 향기 머금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안개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두 손 모아 비는 말씀
오래 살고
복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