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아침 안개에 갇혀 옴츠렸던 햇살 몇점
온몸에 쏟아져 다사로이 떨고 있다.
몸은 돌부처처럼 우두커니 서 있건만
마음은 그리움의 솥을 끓인다.
蒼山을 바라보니
마음 속의 임은 새털 구름으로 올라
하늘하늘 웃고 있다.
지난 봄꿈을 조알이며
몸을 흔들고 있는 나뭇잎 몇 점
여울의 사랑 노래에 춤추고 있다.
귓볼을 스치는 여린 바람에
구절초 향기가 따갑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 하늘 아름답고
그 가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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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수월 권상호
느즈막한 계절에
가으내 버티던 느티나무 잎 하나
빙그르르 휘돌며 떨어진다.
내 삶의 끝자락도 저와 같으렷다.
어제까지는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었다.
지난 계절의 모습을
장엄한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고
마지막에 펼친 고공 다이빙.
아침 이슬보다 영롱한 저녁놀이었다.
청춘보다 영롱한 노년(老年)이리라.
삶의 유혹(誘惑)과 죽음의 공포(恐怖)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의 연민에
대지에 떨어져서도 얼마간 살풀이춤을 계속된다.
삶의 유혹에는 명리(名利)가 가장 크다.
든 것은 똥밖에 없고, 진 것은 죄밖에 없는데
배부르고 등 따시면 만사가 그만인데.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속절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등산도 인생도 오르는 길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더욱 어렵다.
비움의 실천은 버림으로써 여백을 만드는 일.
꽃이 비록 아름답지만,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처녀가 아름답지만, 버려야 옥동자(玉童子), 옥동녀(玉童女)를 낳을 수 있다.
죽음이란 ‘버림의 끝’이다.
성취(成就)의 청춘도 아름답지만 버림의 노년은 더욱 아름답다.
주먹을 쥐고 태어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요,
손바닥을 펴고 죽는 것은 모든 소유로부터 비움이다.
생의 가장 큰 가르침은 죽음이다.
비운 만큼만 채울 수 있다.
잡아 보았자 두 개, 놓으면 우주가 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