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해인> 2013. 9월호- 붓길에서 삶길을 묻다

붓길에서 삶길을 묻다

 

붓길은 학교요, 병원이자, 안식처이다.

붓길에서 삶의 방법을 배우고

붓길에서 자주 다니다가 보면 건강도 지키거나 찾을 수 있으며

붓길에서 머물면 그 이상 편안한 자리는 없다.

 

붓길을 걷는 사람은

길을 떠날 때나 쉴 때나

언제나 샤워를 한다.

가끔은 미친 듯 산발(散髮)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을 마치면 자신을 깨끗이 할 줄 안다.

 

붓길을 걷는 사람은

반드시 서야만 걸을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매일 서는 연습을 한다.

 

붓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화선지처럼 밝고 순수하거나

먹빛처럼 영원히 변함이 없다.

 

붓길은 걷는 사람은 언제나

가운데보다 가장자리에 선다.

변두에 서야 가운데가 잘 보임을 알기 때문이다.

 

붓길은 흥()에서 출발하여

()을 거쳐

()에서 마무리한다.

시흥(始興)리에서 출발하여 종무(終舞)리에서 푹 쉬자.

놀며, 쉬면서도 가끔은 손맛, 눈맛, 코맛을 즐기자.

귀맛까지 즐길 수 있다면

그댄 이미 입신(入神)의 경지에 노니나니.

 

일과 삶에서 지친 그대여

가끔은 붓길에서 인생길을 묻자.

끊어진 길 이어내고, 사라진 길 찾아내고,

없는 길은 만들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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