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신의 고향 수동. 진녕산 자락의 여러 마을 중에서 우두머리 자리에 놓여 있으므로 수동, 물이 많다고 수동이라 해도 좋고, 수수한 사람들이 수월하게 태어나서 수월하게 살아가다가 죽기도 수월하게 하리라고 수월리 수동인지도 모를 일이다. 앞산이 야트막하여 달이 남먼저 뜨니까 수월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수동의 봄은 소나무에 물이 오르면서 시작된다. 낫으로 잔 솔가지 껖질을 살짝 벗겨 하모니카 불듯이 비비면 어느덧 입안에는 약간 텁텁하고 달직한 봄물이 잡힌다. 생식의 경지를 넘어 선식이라고나 할까?
여름밤의 잿마당은 수동의 매인스타디움. 동네 구석구석에는 반딧불이 불꽃 축제를 벌이고 있다. 짚불에도 견디다 못한 모기를 피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을 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이야기마당인 뒷동산에 오른다. 바람끝 쉬원한 뒷산에 올라 별을 바라보노라면 하루의 피곤도 어느덧 사라지고 만다. 초저녁과 새벽녘의 은어잡이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가을 중양절. 수동에서는 중구절이라고 한다. 마굼터나 독지메밭의 콩서리. 겨울의 연날리기. 어른들의 돼지계, 상여계. 상부상조의 미덕. 썰매타기. 외발 스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