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붓질
도정 권상호
붓질을 한자어로 運筆(운필)이라 한다. 차를 몰면 運轉(운전)이요 붓질하면 운필이다. 붓이 서 있는 자국은 點(점)이요, 붓이 지나간 자국은 劃(획)이라 한다. 그런데 點劃(점획)은 살아있어야 한다. 점획이 그럴 양이면 붓이 살아있어야 한다.
붓이 살아있으려면 붓끝과 붓의 허리가 살아있어야 한다. 붓끝은 미끄러지지 않고 허리는 꺾이지 않고 탄력을 받을 때 살아있는 붓이 된다. 수많은 붓끝이 화선지에 나 있는 수많은 숨 쉬는 구멍, 곧 지공의 구석구석에 박혀 있고, 허리가 유연하게 움직일 때 이른바 심획(心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허리란 위에서 누르는 힘을 받쳐줄 수 있는 허리이다.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허리가 받쳐줄 때 솟구치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붓의 허리도 온전히 지탱할 수 있어야 힘 있는 점획을 구사할 수 있다. 이럴 때 붓끝은 장어꼬리처럼 저절로 힘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더러는 붓 끝에 힘을 주라고 가르치는데 붓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붓의 허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먹칠만 할 따름이다. 단전에 힘을 줘야 자식을 얻을 수 있다. 뿌리에만 신경을 쓰면 白血(백혈)?만 분출할 뿐이다. 서예를 즐기면 즐길수록 세상 이치와 상통함에 스스로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게 된다.
어떠한 몸동작과 붓질이 서로 다를 수는 있어도 허리가 살고 붓끝이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붓의 허리가 살아야 붓끝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붓끝이 자유로울 때 글씨를 쓰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마득히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붓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이다.
광야처럼 펼쳐진 흰 종이를 보고 마음을 정화하고, 윤택한 먹을 갊으로써 마음 밭을 갈며, 낭창낭창한 붓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몸의 중심을 잃지 않고, 점획을 그은 다음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순간순간 일회성 삶의 궤적을 경건하게 대하게 되며, 다 쓴 붓을 깨끗이 씻음으로써 마음의 때를 씻는 묘리...... 붓글씨를 쓰는 일은 이와 같이 단순한 먹칠이 아니라 고도의 정신 수양의 과정이다. 점과 획을 교차시켜서 만들어내는 먹빛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라.
물론 준비하고 쓰는 과정이 이만저만 귀찮은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피하지 말라.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보턴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게 다 되는 줄로 알고 있다. 볼펜으로 필기하는 것조차 거북해 하는 귀차니즘에 젖어 있다. 귀찮음은 당신에게 내린 신의 선물이고, 고난은 당신에게 내린 신의 축복이다.
잠시 붓을 놓고 피리를 불어본다. 엄밀히 말하면 리코더이다. 소리는 흩어져 허전하지만 먹자국은 굳어져 믿음이 간다. 어쩌면 소리는 허공에 사라져 없어지기에 아름답고, 붓길은 화선지 위에 영원히 보석으로 남아 있기에 아름답다.
고 정주영 회장의 말씀. 해 보기나 했어? 이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