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의 우화등선(羽化登仙)
도정 권상호
매미는 한자로 선(蟬)이다. ‘벌레 충(虫)’에다 ‘홑 단(單)’ 자가 어우러진 글자이다. 단(單) 자에 대한 어원으로, ‘싸움 전(戰)’ 자에서 보듯이 끝이 갈라진 나무막대기[干] 끝에 돌[口] 두 개를 달아놓은 무기라는 설이 지배적인데, 나는 매미의 상형으로 본다. 워낙 시끄러우니까 두 눈 대신에 입 구(口) 자 두 개를 붙여 놓은 것이다. 입 구(口) 자 두 개를 합하면 ‘시끄러울 훤(吅)’ 자가 된다. 참선의 의미가 있는 선(禪) 자를 보면 하늘의 계시[示]를 받으려고 매미[單]처럼 면벽하고 앉아 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 대목에서 /선/ 자 타령이나 해 볼 진데.
신선 선(仙) 자, 선인(仙人)은
매미 선(蟬) 자, 선익(蟬翼) 달고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하고,
착할 선(善) 자, 선인(善人)은
먼저 선(先) 자, 선인(先人) 따라 선행(善行)을 선양(宣揚)하며,
선방(禪房)의 승려들은
나뭇가지의 매미 선(蟬)처럼 면벽(面壁)하고 참선(參禪)일세.
임금도 때가 되면 왕위를 선양(禪讓)하고,
당선인(當選人)도 때가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니,
국민과 선연(善緣) 맺기 게을리해선 안 된다네.
선머슴 같은 이내 몸은 배 선(船) 자, 선상(船上)에서
부채 선(扇) 자, 선자(扇子) 들고 선선한 바람이나 맞으니,
무엇을 선망(羨望)하랴, 선경(仙境)이 따로 없네.
매미 소리가 자지러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정녕 한여름인가 보다. 이번 여름에도 여지없이 도심에까지 매미가 날아들어 밤낮없이 맴맴~ 하며 더위를 토해대니, 우리 집의 창문도 선성(蟬聲)으로 가득 찬다. 어찌 된 일인지 시골 매미는 분명히 낮에만 울었는데, 도시 매미는 밤낮이 따로 없다. 인간이 만든 전기불빛이 밤낮 구분을 흐리게 만든 탓일까. 후텁지근한 열대야에 매미 울음까지 더하니 가뜩이나 짧은 여름밤에 단잠 설치기 일쑤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낙동강 상류의 한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그 당시엔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나 강변 미루나무에서 들려오던 매미 소리가 그렇게 요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장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이라도 청하면 자장가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도심 매미는 자동차의 소음에 항거라도 하듯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다. 아마 아파트 벽의 공명 효과에다가, 낮보다는 그래도 조용한 밤이라는 상황 때문에 더 야단스럽게 들리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의 하루는 어찌 그리 길던지. 온갖 놀이로 긴 여름 낮을 메우곤 했다. 가느다란 막대기 끝에 쇠 꼬리털을 뽑아 올가미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올라 매미잡이 하면서 한나절을 보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매미를 잡다가 싫증이 나면 밭 언덕에 올라 숨죽여 가며 여치를 잡는다. 또 실패하면 실 끝에 보리 밥알을 달아 떡개구리 사냥에 나선다. 똑똑한 개구리란 놈은 오줌을 찍 갈기고 도망가는데, 궁금증이 많은 놈은 보리밥알 탐내다가, 보리밥알을 문 채 우주를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딱지처럼 땅바닥에 나부라져 몸을 파르르 떤다. 불쌍하다 싶어 침을 약 삼아 바르고 호박잎에 싸서 재우고 돌아오곤 했다. 아파하는 개구리를 보고 미안한 마음에 강물에 몸을 던진다.
그런데 “맴~맴~맴~맴~ 찌르르~” 매미 소리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매미의 일생을 알고부터는 오히려 그 소리를 진지하게 듣게 되었다. 굼벵이로 땅속에서 6~12년 동안 어렵사리 지내다가 어느 여름밤 바깥세상으로 나와 화려한 날개를 달고서 한 달도 채 살지 못하고 거침없이 떠나가는 매미. 그러고 보면 굼벵이는 수도자의 모습이요, 매미는 깨달은 자의 의연한 자태이다. 매미의 애벌레를 굼벵이라 하는데, 누에보다 짧고 통통하게 생겼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냥 봐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동작이 굼뜨다. 동작이 굼뜨므로 굼벵이라 이름 붙였나 보다.
애벌레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을 날개돋이, 곧 우화(羽化)라고 한다. 저 느려빠진 굼벵이가 껍질을 벗고 나와 날개를 달고 매미 성충으로 된다는 사실은 천지개벽(天地開闢)만큼이나 신기하다.
인간도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는 꿈을 꾸었으니, 이를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 하였것다. 이 말은 달밤에 벗들과 뱃놀이하면서 읊은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온다.
飄飄乎(표표호) 가벼이 떠올라
如遺世獨立(여유세독립) 속세를 버리고 홀로
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 날개 돋아 신선되어 하늘에 오르는 듯하구나.
매미는 우화등선(羽化登仙) 이후 한 달을 못살고 생을 마감한다. 짧은 기간에 수놈은 암놈과 짝짓기하고 죽고, 암놈은 나뭇가지에 알을 낳고 죽는다. 알고 보니 그 요란한 소리는 벙어리 암놈을 유혹하기 위한 수놈의 노래란다. 한 놈이 소리를 하면 주변의 많은 놈이 따라 부르는데, 암놈을 위한 수놈의 대합창이 매미 외에 또 있을까. 종족 번식을 위한 사랑의 오케스트라라고 할까. 아니면 짧은 성충 생애에 대한 한탄의 노래일까.
그 옛날 초가지붕을 일 때면 묵은 이엉에서 많은 굼벵이가 쏟아져 나온다. 보기에 흉하지만 한약 재료로 쓰인단다. 속담에 ‘굼벵이가 지붕에서 떨어질 때는 생각이 있어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굼벵이가 떨어지면 남들은 동작이 굼뜬 놈이 잘못하여 떨어졌으려니 하고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제 딴에는 멋진 날개를 달고 화려한 매미로 변신할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남 보기에는 굼뜨고 못난 행동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나름대로 요긴한 뜻이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렷다.
‘선부지설(蟬不知雪)’이란 말이 있다. 매미는 눈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눈이 내리기 전에 짧은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당랑포선 황작재후(螳螂捕蟬 黄雀在後)’라는 성어가 있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 하는데, 참새가 그 뒤에 있다는 말이다. 참새도 마음 놓을 일이 아니다. 포수가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을지도 모를 일. 약자를 건드리면 그 뒤에 더 강자가 도사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다가 보면 결국 큰 해를 입게 된다.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 없고, 매미에겐 내년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내세가 없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