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길
도정 권상호
길을 걷는다. 몰라볼 정도로 잘 정리된 추억의 고향 들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걷는다. 자동차는 도로표지판과 내비게이션을 보고 운전하지만, 내 몸은 길 도우미, 눈과 귀로 판단하고 걸어간다. 아무래도 걷기는 운전보다 안전하지만 험한 길, 오르막길이나 갈림길을 만날 때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가든 돌아가든 미국 시인 프로스트처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떨칠 수 없다. 우리의 인생길은 한 몸뚱이의 외길밖에 허락되지 않으니.
자전거를 탈 때 오르막길을 만나면 힘들다가도 내리막길을 만나면 덤으로 간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 상쾌한 기분은 오르막길을 오르지 않았다면 결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설령 내 인생길이 현재 오르막길일지라도 짜증 내지 말지니. 분명히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을지니.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다니면 큰 길이 된다. 인간도 자주 만나야 정의 길이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개척의 길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누군가 나를 믿고 나의 잘못된 길을 따라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길이 아닌 곳을 걸을 때에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西山大師(서산대사)의 게송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도 이 게송을 유달리 좋아하여 먹 자취를 남긴 바 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을 밟으며 들판을 갈 때에는
함부로 어지러이 걸어가지 말라.
오늘 내가 지나간 발자국은
후인의 이정표가 되고 말지니.
들길은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눈앞에 길이 길게 놓여 있다. 길다고 길인가. 그 길이 주목받고 있다. 길은 길을 걷는 자에게 길의 저편에 길(吉)함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기대가 있기 때문에 길을 걷는 자가 생기고 여러 사람이 다님으로 큰길이 생긴다.
길도 많다. 앞길, 뒷길, 옆길에 산길, 들길도 있고, 물길, 하늘길이 열리나 했더니, 요즈음엔 올레길, 둘레길 등 새로운 길이 줄곧 생기고 있다. 걷기문화의 열풍에 따라 만들어지는 길이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은 마음먹고 떠나야 하지만, 산과 내를 끼고 있는 여러 마을에서 올레길, 둘레길 만들기에 한창이다.
<사기(史記)>에 ‘桃李不言(도리불언) 下自成蹊(하자성혜)’라는 말이 있다. 복숭아나 자두 같은 과실이 익으면 사람을 부르지 않아도 따먹으러 모여들게 되니까 자연히 그 아래에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덕과 학식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도 그를 사모하는 사람이 모여든다. 물론 권력과 금력이 있어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겠지만…….
<明心寶鑑(명심보감)에 ‘路遙知馬力(노요지마력) 日久見人心(일구견인심)’이라는 말이 있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오래 지나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길은 통행하는 길, 도로를 가리키렷다.
맹자(孟子)는 ‘義者 人之正路也(의자 인지정로야)’라 했다. ‘의(義)라는 것은 사람이 가야 할 바른길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길은 도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한자에도 길을 뜻하는 글자가 여럿 있다.
‘길 로(路)’ 자는 ‘족(足)+각(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족(足)의 ‘지(止)’는 나가는 발이요, 각(各)의 ‘치(夂)’는 돌아오는 발이다. 처음의 구(口)는 발의 윗부분을, 마지막의 구(口)는 움집 입구를 가리킨다. 일을 마치고 제각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서 ‘각각 각(各)’자가 만들어졌고, 결국 ‘길 로(路)’는 ‘집에서 나가고 돌아오는 길’의 의미가 된다.
경(逕)은 좁은 길을, 경(徑)은 지름길을, 가(街)는 네거리를 가리킨다. 도리를 뜻하는 도(道) 자도 나중에는 도로(道路)라고 할 때처럼 길의 의미로 확장된다. 강원도(江原道)에서처럼 도(道) 자가 행정구역 단위로도 사용되는데, 이는 도(道)라는 행정단위가 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라고 할 때의 ‘ㅅ(시옷)’이나, 한자 ‘사람 인(人)’을 보면 두 갈래 길이 서로 만나는 이미지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므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끊임없이 만나고 싶어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알면서도 꼭 만나고 싶어 한다. 사랑으로 만나면 헤어질까 두렵고, 미움으로 헤어지면 만날까 걱정된다.
큰 안목으로 보면 만남도 헤어짐도 없다. 무한으로 유한을 보면 유한의 연속이 곧 무한이다. 조선 중기 학자 김인후가 엮은 <백련초해(百聯抄解)>의 한 연(聯)이다.
山外有山山不盡(산외유산산부진)
路中多路路無窮(노중다로노무궁)
산 밖에 산이 있으니 산이 다함이 없고
길 가운데 길이 많으니 길이 끝이 없네.
그런데, 끝이 있는 길이 있다. 인생길이다. 꽃 피듯 화려하게 나타났다가 잎 지듯 훌쩍 끊어지고 마는 삶. 짧은 인생이지만 영생을 꿈꾸고 좁은 육신이지만 우주를 꿈꾸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래서 예술과 종교가 태어났나 보다.
일가친척과 향우가 살아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보자.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갈 때마다 고친 길과 새로 난 길 때문에 혼돈이 온다. 복잡한 서울 근교에나 시원하게 뚫어놓지, 왜 쓸데없이 한적한 시골에 분위기 깨는 길을 많이 만들어 놓았을까. 전문가가 한 일이라 탓할 수야 없지만 통행량과 비교하면 시골 길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유지 보수도 쉽지 않겠지만, 전시행정으로 눈에 보이는 길에다 많은 재정을 쏟아 붓다가 보니 빚더미에 올라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는 보도가 들린다. 왠지 씁쓸하다.
먼 길은 동행이 있어야 한다. 아내와 함께한 고향길 동행이었다. 다음에는 처가 쪽으로 떠나 볼까나.
권상호
紅顔淚濕花含露
素面愁生月帶雲
예쁜 얼굴에 눈물이 드리우니 꽃이 이슬을 머금은 것 같고
흰 얼굴에 근심이 생기니 달이 구름을 두른 것 같구나.
시작(始作)의 중요성 자료
우리 속담 중에 처음 접하는 것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노자(老子)>에 나오는 ‘千里之行 始於足下(천리지행 시어족하)’와 통한다. '천 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라는 뜻으로, 모든 일은 그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용(中庸)>의 ‘등고자비(登高自卑)’와도 상통한다. 높이 오르려면, 낮은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왕 내친 길이라면 꾸준히 걸어 나가야 한다. ‘天無絶 人之路(천무절 인지로)’라 했다. 시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은 길을 막아설지 모르지만 하늘은 인간의 길을 끊지 않는다.
한자 ‘나아갈 진(進)’은 새가 나아간다는 뜻이다. 새에게 후진은 있을 수 없다.
길-국어사전, 속담, 어원 연구
한자- 뿌리찾기 등
行一步會見一步
見一步 行一步 算一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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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사전
http://www.toegye.ne.kr/dic/dic_first.asp
중국어로 많이 사용되는 성어
http://blog.daum.net/kangsm1009/15870174?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kangsm1009%2F15870174
<백련초해(百聯抄解)> 판본은 전라남도 장성(長城)의 필암서원(筆岩書院)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