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30- 붓과 벗

붓과 벗

 

도정 권상호

  “학문과 예술의 가치는 실천과 공유에 있다.” 이것이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서예’의 가치관이다. 광장이나 거리, 산속이나 강가, 호텔이나 대학, 절이나 교회, 백화점이나 음식점, 아트센터나 카페, 전시회장이나 음악회, 잔치판이나 결혼식, 방송사나 신문사, 국내나 국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250여 회에 걸쳐 펼쳤고, 지금도 펼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펼칠 라이브서예……. 붓 쇼라고나 할까. 엊그저께는 여의도 홍보석 이화포럼에서, 내일은 설악산 신흥사에서 라이브 서예를 펼칠 계획이다.

  서예의 장래는 밝은가? 꼿꼿한 붓을 닮은 벗을 잡고 늘어지는 고민을 얘기해 보면 결론은 부정적이다. 세월이 바뀌어 붓으로 먹고 살기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배운 것이라곤 붓글씨밖에 없으니 입에 풀칠은 어려워도, 그냥 먹칠하며 지낸다는 것이다. 20년 이상 불철주야 노력하여 초대작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원에는 원생이 없고, 젊은이나 학생들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니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원 등지를 기웃거리며 차비 정도 벌어서 길바닥에 깔고 있겠구나. 나 역시 앉아서 서예 지망생을 받으며 살아가는 형편이었다면 라이브서예를 착안하지 못했으리라.

  “컴퓨터가 모든 글쓰기를 대신하는 시대인데 느려빠진 서예가 무슨 예술이여?

  여기저기서 붓을 꺾는 소리가 들린다. 외국 관광객의 필수 코스인 인사동에 그 많던 필방이나 표구점은 하나씩 밥집이나 술집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형편이다. 몇 안 되는 대학 서예과도 학생 채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대학원 서예 전공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다시 붓을 세워야 한다. 붓에 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매일 붓을 손가락 끝에 거꾸로 세우고 붓의 균형을 잡는 놀이를 한다. 어린 시절 긴 막대기를 손가락 끝에 세우고 팔을 움직여 가며, 막대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정신 집중하며 놀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앉아서 많은 원생을 받아 가며 편안히 가르치던 시대는 끝났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라이브 서예 현장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며, 관중에게는 보는 즐거움을 주고, 본인은 쓰는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단일 장르로서 서예만은 재미가 덜하다. 라이브 서예는 음악, 무용 등과 함께하기 때문에 절로 필흥(筆興)이 솟구친다. 진정한 서예는 즐기는 서예, 곧 ‘낙서(樂書)’이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능동적 자세로 ‘다가가는 서예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지랄 방귀를 떨던 차에 내 앞에 다가온 일본 영화 한 편이 있다. ‘서도(書道) 걸즈(girls) - 우리들의 갑자원(甲子園)’이 그것이다.

  서예를 일본에서는 서도라고 한다. 갑자원 즉 고시엔이란 야구 리그 결승전이 벌어지는 경기장(약 육만 명을 수용)이나 고교 최강을 가리는 리그전을 뜻한다. 이 영화에서는 야구 대신에 여러 학교의 서도부 학생이 참가하는 서예 리그전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불경기로 침체된 전통마을을 살리기 위해, 서도부(書道部) 고딩들이 서예에 음악을 접목시켜 ‘서도 퍼포먼스’ 펼친다.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라는 데에 더욱 관심이 고조되었다. 2시간 1분짜리 성장 드라마를 숨 죽여 가며 끝까지 뜯어보았다. 무겁고 큰 붓으로 펼친 마지막 퍼포먼스 내용이 ‘재생(再生)’이라서 더욱 가슴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영화가 끝날 즈음, 가슴은 뭉클하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입은 희망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를 두고 공감(共感)이라 하는구나. 내가 꿈꾸고 실천해 오던 라이브서예를 이웃 일본에서 벤치마킹이라도 해 간 것인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화장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할 때 붓을 사용한다. 붓이 지나간 자리는 아름답다. 그래서 인간은 붓을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애용할 것이다.

  붓은 먹물을 머금고 화선지 위에서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화려한 몸짓으로 놀기를 좋아한다. 이 대목에서 붓이란 벗과 술타령 좀 해 볼까.

  벗과 술은 오랠수록 좋고 옷과 차는 새로울수록 좋도다. 얼씨구. 술자리에서 필(feel)이 통하면 그 자리에서 소울메이트(soul mate)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정한 벗이란 발효된 된장처럼 오래 묵어야 제격일세. 절씨구. 내 나이 육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붓 친구 자네와 사귄 지도 어언 오십 년 가까이 되는구먼. 그러고 보니 우리는 곰삭은 벗일세 그려. 잘헌다.

벗이란, 옷은 물론 마음까지 ‘벗어도’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 법이여. 그래서 ‘벗’이라지.

  오래된 침몰선에서 인양된 술은 한 병의 낙찰가에 억 소리가 나기도 한다. 고분의 청동기에서 발견된 술도 애주가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내 붓 벗이 마시기 좋아하는 고묵(古墨)의 가격도 끝이 없다.

  술과 벗이 만날 때 술은 벗이 되고, 벗은 술이 된다. 술안주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시구가 있다. 북송(北宋) 문인 취옹(醉翁) 구양수(歐陽修)가 떠든 것이다.

 

  酒逢知己千杯少(주봉지기천배소)

  話不投機半句多(화불투기반구다).

  친한 벗을 만나 술을 마시면 천 잔도 적고,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반 마디 말도 많다.

 

  ~ 좋다. 지기(知己) 정도 되는 벗이라면 옷 벗고 샤워하는 사이가 아니라,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벗이다. 그런 친구라면 시간과 공간은 물론 술값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벗과 함께 마시는 술은 생활의 즐거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붓 벗도 나의 손길 부족함을 탓한 적이 없다. 붓 벗이 즐겨 마시는 술인 먹물도 탓하지 않는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피부를 자랑하며 언제나 자리에 누워 기다리는 애인, 화선지양도 절대 탓하는 일이 없다. 붙잡고 다니고 싶은 벗이기에 ‘붓벗’이라 부르고 싶고, 느낌이 통하는 벗이기에 ‘필벗’이라 부르고 싶다. 붓벗은 절대로 몽니를 부리는 법이 없이 참으로 무던한 친구이다.

 

  붓을 뜻하는 한자는 원래 聿()이었으나 진시황의 진 나라 이후부터는 筆()로 썼다. 이 글자를 보면 붓은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것과 붓을 잡은 손, 붓대 및 붓털로 구성되어 있다. () 자 아래쪽의 二()가 붓털인데 전서 시대에는 붓 모양대로 밑으로 드리워지게 썼었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는 붓을 ‘붇’으로 표기하고 있다. 붓은 손에 붙어야 하고, 또 자주 붙[, ]잡아야 한다.

  붓과 비슷한 것으로는 비(빗자루)가 있다. 붓은 지나가면서 흔적을 남기지만 비는 흔적을 없앤다.

  벗이여, 우리 민족에게는 한()과 흥()과 정()이 많다오. 오늘 하루쯤은 세속의 일을 접고 삶의 고통에서 오는 원한(怨恨), 필흥(筆興)으로 승화시키며 우정(友情)을 나눠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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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서도걸즈 - 우리들의 갑자원
나루미 리코 특집 2탄.
일본 제일의 종이 생산지인 에히메현 시코쿠 주오시를 배경으로 불경기 때문에 침체된 상점가, 이러한 마을에 활기를 되찾기 위해 서도부 여고생들이 서예와 음악을 접목시킨 서도 퍼포먼스를 탄생시키기 까지의 갈등과 노력을 보여주는 성장 드라마.

종이 위에 무도라고 불리우는 어쩌면 정적인 서예를 음악과 결합시키 화려하게 보여주는 서도 퍼포먼스. 실제로 일본에는 서도 퍼포먼스 대회가 있다는 것 같다.
영화상 일수도 있지만 상당히 화려하고 서예가 이렇게 멋지다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안젤라 아키의 '手紙'를 배경으로 보여주는 여고생들의 서도 퍼포먼스 '재생'은 정말 멋있었다.
노래도 정말 좋았고 거기에 재생이라는 글자가 정말 힘이 넘쳐보이는게 좋았다.
개인적으로 먼저 본 무사도 식스틴에 비해 이쪽이 더 보는 재미를 확실히 선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