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선보인 라이브 서예 (1) -
도정 권상호
해리포터가 빗자루 타고 공중을 날듯이 나는 붓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 동요에 빗자루 타고 허공을 나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붓대를 타고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 붓의 배기가스는 구름.
꿈이 현실로 나타났다. 마침 여름 방학기간이다. 방학이란 나에게 있어 잉여적 행동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노마크 찬스이다. 앗싸. 미국 워싱턴주 터코마시(시장 메릴린 스트릭랜드, 여, 48. Marilyn Strickland)와 서북미문화재단(단장 안경숙)의 초대로 열흘간 미국을 다녀왔다.
지난 7월 30, 31일에 터코마 다운타운 라이트 공원(Tacoma’s Wright Park)에서 개최된 ‘제25회 소수민족축제(25th Ethnic Fest)’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하나인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Live Calligraphy Performance)’ 공연을 펼치고 왔다는 말씀.
라이브 서예란 말은 ‘2002 한일 월드컵’ 때 남산 한옥마을에서 참가국 32개 팀을 응원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만들어 본 말인데, 여러 호사가들의 입을 통하여 이제는 일반화된 용어이다. 각종 행사에서 펼치는 붓글씨 잔치라고나 할까.
이 행사를 처음으로 기사화한 문화저널(munhwai.com 대표 김정태)의 타이틀은 ‘한국문화, 소수민족 축제 사로잡았다’, 부제는 ‘도정 권상호가 빚어낸 서예의 신비’였다.
축제에는 84개국 소수민족들이 참여하여 모국의 춤과 음악, 회화, 음식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부스에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었다.
사실 3년 전에도 전시 및 라이브 서예 공연으로 초대를 받아 선보인 적이 있다. 당시는 한지의 우수성을 알릴 겸, 종이 한복을 입고 한글 소개에 주력했고, 이번에는 백의민족의 흰색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에 흰 모자를 쓰고 사군자를 주로 쳤다. 물론 영문과 한글 서예도 빠뜨리지 않았다. 너른 녹색 잔디 위에 수십 미터나 되는 흰 종이를 펼쳐놓은 것만으로도 시각적 감동을 충분히 안겨 주었다.
1부 공연은 ‘도정(나의 호)의 붓질 마당’, 2부 공연은 ‘함께 즐기는 서예’이다. 매인 무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라디오 한국에서 협찬한 종이를 깔았다.
이윽고 무대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맞추어 붓가락도 흥을 돋운다. 내 팔뚝에는 푸른 힘줄이 돋아나고, 이마에는 땀방물이 송글송글. 이른바 붓은 노래하고 먹은 춤추는 형국인 ‘필가묵무(筆歌墨舞)’의 마당이다. 얼씨구. 우선 대나무와 난초 등을 쳐 나갔다. 사군자는 서예의 범주에 들기 때문에 ‘그린다’는 표현 대신에 ‘친다’고 한다. 그림 사이에 영문과 한글로 ‘Korean Wave(한류). 축 제25회 소수민족 축제’도 써 넣었다. 노래는 끝나면 허공으로 사라지고 없지만, 붓글씨는 언제나 착하게 그 결과물이 남는 법.
무대 위에서는 ‘팀 코리아’ 소개에 이어 벌어진 춤사위. 순간 도우미들의 협조로 내 작품?도 춤을 추며 무대 앞을 지나가는 것이다. 움직이는 서예, 춤추는 서예, 흥미롭지 않은가.
매인 무대 위에 오른 38개 팀 가운데 서북미문화재단 단원들이 가장 많은 갈채를 받았다. 화려한 의상으로 차려입은 단원들은 주로 부채춤과 화관무, 북공연 등을 선사했다. 환호 속에 사회자는 안경숙 단장을 무대로 다시 초대하여 인터뷰와 함께 앙코르 무대를 요청했다. 마침 내가 준비해 간 합죽선을 나눠 들고 즉흥 춤도 선보였다.
한국 문화와 서예의 홍보를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서예가의 영어, 틀려도 좋고, 맞으면 다행이다. 쪽팔림은 순간이나 서예 알림은 영원하다. 남이 와서 보고 느낀 점을 자국어로 소개하도록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지루하다. 내가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시범을 보이고 대화하며, 종이를 펼쳐놓고 붓을 그들의 손에 쥐어 주면서 써 보게 해야 적극적 홍보가 된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한류(韓流, Korean Waves)를 만드는 것이다. 스트릭랜드 터코마 시장도 함께한 라이브 서예, 멋지지 않은가.
스트릭랜드 시장의 아버지는 6.25에 참전한 미국인(작고), 어머니(82)는 서울 출생의 한국인이다. 무남독녀. 용산에서 태어나 2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케이스. 흑인 아버지와 코리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서 어려운 환경과 냉소적 시선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온 오바마 급의 위너. 공부면 공부, 피아노면 피아노, 수영이면 수영... 못하는 게 없었단다. 박수!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도 두 차례 외가 홈커밍을 한 바 있단다. 다음 기회에는 소생이 정성껏 모시리라.
행사 중간에 한국일보 및 문화저널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3년 전에 왔을 때에도 교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번에는 모두 적극적으로 체험해 보고 싶어하는 분위기였어요. 서예를 통하여 교포에게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제 자신에게는 보람과 긍지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한류 문화를 실감하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잠시 공원의 울창한 갈매빛 수목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로 점심을 때우고 2부 순서 ‘함께 즐기는 서예’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