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라리요, 그 아름다운 여명<?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2011 정선아리랑제 -
도정 권상호
민심은 밥그릇에서 나오고 신명은 노래에서 나온다. 노래는 恨(한)을 興(흥)으로 끌어올리는 묘한 힘이 있다. 노래 중에서도 민요는 민중의 소박한 생활 감정이 소통으로 묻어나며 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애국가나 다름없다.
특히 ‘아리랑’은 한민족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전 세계의 음악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우리 민요, 아리랑을 뽑은 바 있다. 아리랑에 매료되어 한국에 유학 온 외국 학생도 있다. 그렇다. 아리랑은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김치와 다름없다.
아리랑이 대표적인 민요로 자리 잡은 이유는 ‘아리랑 고개’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반도에는 어딜 가나 크고 작은 고개가 있다. 독일 출신의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은, 차를 타고 달릴 때 5분마다 경치가 바뀌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자랑한다. 아기자기한 산이 많고, 그 사이를 그림처럼 흐르고 있는 S형, C형 강줄기.
선조들은 돌아가면 먼 길을 급할 때 넘기 위해 고갯길을 만들었다. 미아리고개, 추풍령, 문경새재, 박달재……. 가파른 고개는 ‘갈 지(之)’ 자로 꼬부랑 고갯길을 만들어 다녔다. 행여 길가의 나무를 다칠세라 지개를 만들어 지고, 괴나리봇짐을 머리에 이고 넘었던 고갯길……. 아, 어찌나 자연친화적인 선조들이었던가.
그러나 지금은 그 많은 고개 대신에 벌집처럼 구멍 길을 내어 쾌속으로 통과하고 있다. 우리만큼 터널이 많은 나라도 없으렷다. 터널 위에는 어김없이 ‘고개’가 있었는데……. 고개를 들고 고개를 바라보면 왠지 눈물이 난다. 저 고개에서 얼마나 많은 만남과 이별, 출세와 좌절, 노동과 휴식, 소통과 단절이 있었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리랑은 지역 아리랑과 구분하여 본조아리랑이라 부른다. 1926년 개봉되었던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을 대동단결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이 아리랑이 월드컵 응원가, 피겨 요정 김연아의 배경 음악, 심형래의 영화 <D- War>의 엔딩 곡으로 사용되는 등,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본조아리랑 외에 3대 지역아리랑으로 강원도 정선아리랑, 경남 밀양아리랑, 전남 진도아리랑 등이 있는데, 이번 가을의 라이브 서예로는 정선아리랑을 선택했다. 아리랑과 서예, 썩 어울릴 것 같지 않은가. 그렇고말고.
시월의 많은 문화 행사 중 ‘다산문화제’와 ‘정선아리랑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서울에서 더 멀고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정선 길을 택했다. 게다가 중국에서 서북공정에 아리랑공정을 넣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 나니 아리랑에 대한 더 큰 사랑을 지울 수 없다. 우리 핏속에는 아리랑 DNA가 박혀 있다. 작년에는 중국의 한글공정으로 시끄럽더니, 올해는 아리랑공정까지……. 끝 간 데 없는 문화전쟁이다. 있는 놈이 더 무섭다더니……. 조선족 문화를 빙자한 중국의 문화침탈은 아리랑은 물론 태권도도 넘보고 있으며, 이미 지난 2006년에는 조선족의 농악·널뛰기·그네타기·장구춤과 전통혼례 등도 중국의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이른바 중국의 문화대공정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정부대로, 문화재청은 문화재청대로, 붓쟁이는 붓쟁이대로 공론(空論)이 아닌 문화실천으로 각자의 역할 분담을 차분하고 충실하고 냉정하게 해 나가야 한다.
라이브 서예는 끝이 없다. 라이브 서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라이브 서예는 어떤 주제와도 어울릴 수 있는 예술이다. 이번은 ‘정선아리랑과 라이브 서예’ 공연이다.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이고, ‘정선아리랑제’는 이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강원도 대표 축제이다. 벌써 36회째를 맞으니 뿌리도 깊다. 올해의 주제는 ‘정선아리랑, 그 길을 가다.’이다.
정선(군수 최승준)의 5일 장터를 중심으로 정선읍의 중요도로는 특설무대와 거리무대로 꾸며졌다. 애산리 정선아라리촌에서는 ‘아리랑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주제로 ‘막걸리 문화 포럼’(정선아리랑제위원회 위원장 이종영, 삼척문화방송 대표이사 임무혁)도 함께 열렸다. 정선은 천년을 이어온 삶의 소리 아리랑의 시원지이다. 정선은 발효된 음료 강냉이 막걸리로도 유명하다. 중국의 문화공정 위기 속에 위협받고 있는 아리랑, 아리랑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및 세계화 사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아리랑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 그런 뜻에서 2018년에는 동계올림픽에 때맞추어 아리랑올림픽도 개최하는 것이다.
내 몫은 정선아리랑제 개막공연(감독 이길영)의 시작과 끝부분에서 라이브 서예를 펼치는 일이다. 목적은 정선아리랑을 사랑하는 여러 단체와 함께 정선아리랑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일이다.
식전행사가 끝나자 선녀들이 기다란 두 폭의 천을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강릉 단오굿(김명대 외)이 시작되자 한 손으로는 먹그릇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붓을 들고 무대 위에 오른다. 기를 모으고 ‘정선 아리랑, 세상을 품는다.’라는 내용을 행서 필의로 힘차게 써 내려간다. 휘호가 끝나면 미리 준비된 두 개의 기다란 죽간에 걸어서 무대 양쪽에 게양한다. 축제 내내 이 아리랑 깃발은 노래에 맞추어 정겹게 춘다. 무대 영상에도 ‘아리랑 아라리요, 그 아름다운 여명’ 타이틀이 개막임을 알린다.
이윽고 아라리 락밴드 고구려밴드(대표 이길영)의 웅장한 키보드 사운드가 깔리고 이길영의 한껏 신명난 목소리로 아리랑 나라가 펼쳐진다. 타악그룹 야단법석, 정선아리랑 군립예술단 등도 함께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四季)와 木, 火, 土, 金, 水 오행(五行)을 콘셉트로 꾸며진 철학이 있는 공연이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낮 동안 미리 그려놓은 초대형 사방신도(四方神圖- 靑龍, 白虎, 朱雀, 玄武)를 펼치고 나는 3미터짜리 초대형 붓을 잡고 가운데에서 지구를 그린다. 동시에 네 명의 선녀들은 오방색 천으로 붓대를 감아 돌며 가운데로 뭉친다. 완성된 사방신도 위에 마이미스트(유진규, 춘천마임축체 예술감독)가 순지를 들고 나타나 함박눈이 질탕하게 내리는 속에 신명나는 혼불 퍼포먼스를 펼침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정선아리랑을 중심으로 천지인(天地人)이 하나 되고 상생과 평화를 기원하는 뜻에서 기획된 ‘정선아리랑제’, 행사 끝자락에는 늘 소통과 공유에 대하여 되새기며 뒤풀이를 이었다.
유전자 무전자 사람 괄세 말어라. 인간세상 부귀영화는 돌고도 돈다.
니 잘 났니 내 잘 났니 싸우지덜 말어라. 하늘 아래 땅 아래 사람들의 조활세.
아리랑 고개는 아름다운 고개. 우리들이 넘을 고개는 한 고개뿐일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긴아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