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유로유휴(有勞有休)

유로유휴(有勞有休)

- 수고한 자에겐 휴식이 있으리 -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칼럼니스트)

한국 서예의 정론지 월간 <묵가>가 폐간(廢刊)이 아닌 휴간(休刊)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송 대표로부터 이러한 사연의 전언을 듣는 순간 내 호흡에 변화가 일어났다. 첫 숨은 정기 애독자로서 믿었던 <묵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 자체에 대한 충격이었고, 두 번째 숨은 한국 서예계의 버팀목인 <묵가>가 가던 길을 멈춤에 대한 탄식이었으며, 그리고 세 번째 숨은 세상의 흐름과 더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생각하며 새로운 모습의 <묵가>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간절한 기원으로 이어졌다.

마침 필자가 만여 권에 해당하는 책을 나누거나 버리던 차에 받은 소식이라서 종이 책에 대한 애처로움이 묻어난다. 문자와 이미지의 결합체인 잡지와 신문, 책 등은 2천 년 가까이 인류 정보의 보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한 인터넷 매체가 나타나 문자와 이미지는 기본이고 소리와 빛까지 더해주는 비주얼 동영상 시대가 도래하자 정보 전달의 제왕의 자리를 물려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구매가 더 많은 세상이고 보면, 종이 책보다 e북을 선호하는 추세는 당연하다. 더구나 정보 전달의 속도 면에서 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구글이 태어나기 1년 전인 1997년부터 개인 서재라 할 수 있는 홈페이지 ‘도정 권상호의 먹울림’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기 까지 활용하고 있고, 이후에 블로그 ‘문자로 보는 세상’을 만들어 메모장 및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유튜브를 통하여 서예와 한자 철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묵가>는 잡지라기보다 학술지에 가까웠다. 이전의 <까마> 정신을 이어받아 다른 잡지에 비해 요란하지 않고, 예술과 미학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더해왔다. 구안자(具眼者) 몇 사람을 위해서라도 고집스럽게 13년을 지켜왔다.

겨울나무는 다가올 환희와 생명의 봄을 위해 뿌리를 땅속에 깊이 내리고 겨울잠을 잔다. 묵가는 더 큰 소리를 위해 ‘먹 묵(墨)’자 ‘묵가(墨家)’에서 ‘침묵할 묵(黙)’자 ‘묵가(黙家)’가 되어 휴식을 위한 기분 좋은 동면에 들어간다.

머잖아 지금보다 더 씩씩하고 건강한 잡지로, 더 반듯하고 통 큰 목소리로 깨어나길 기도한다. 꼭 잡지가 아니어도 좋다.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 강의 방식이라도 좋겠다. 최초의 서예 방송은 어떨까. 물론 모든 일에는 전(錢)의 문제가 뒤따른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이란 말이 있다. ‘처음도 있고, 마침도 있음’,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음’, ‘시작이 있으면 마침도 있음’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묵가>를 위해 유로유휴(有勞有休)란 말을 만들어 본다. ‘노고가 있으니, 휴식도 있다’는 뜻이다. 수고롭게 일한 사람은 반드시 휴식할 권리도 있다. 지금까지 <묵가>를 지켜온 모든 분께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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