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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科目名 : 國語學史
指導敎授 : 池春洙 敎授님
發 表 日 : 1996. 11. 18.(月)
發 表 者 : 國語敎育科 4期 權相浩
借字表記法
1. 머리말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을 통틀어 借字表記法이라 한다. 또는 漢字借用表記法이라고도 한다. 이는 종래에 鄕札·吏讀·口訣·固有名詞 표기라고 구분하여 오던 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 표기는 삼국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줄곧 사용되어 옴으로써 많은 국어사 자료를 남기고 있다.
한자를 차용하는 방법은 한자의 음과 훈 중 어느 것을 차용하느냐에 따라 ‘음’과 ‘훈’으로 나뉘고, 또 이들을 한자의 본뜻에 맞게 사용하느냐, 본뜻을 버리고 表音的으로만 사용하느냐에 따라 ‘讀’과 ‘假’로 나뉜다. 이 방법이 복합되어 다음과 같은 借字體系가 나온다.
借字 |
정 의 |
차용방법 |
音讀字 |
한자를 음으로 읽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 |
表意字 |
音假字 |
한자를 음으로 읽되 그 본뜻을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 |
表音字 |
訓讀字 |
한자를 훈으로 일고 그 본뜻도 살려서 차용한 차자 |
表意字 |
訓假字 |
한자를 훈으로 읽되 그 본뜻을 버리고 표음자로만 차용한 차자 |
表音字 |
이는 표의문자적 성격과 표음문자적 성격이 복합된 것으로 ①表意字로 차용된 차자를 讀字, ②표음자로 차용된 차자를 假字라고도 부른다.
* 자주 쓰이는 假字
加(가) 居(거) 去(거) 古(고) 高(고) 果(과) 斤(근) 厼(소)(금) 只(기) 介(개) 乃(나) 那(나) 汝(너) 奴(노,로) 尼(니) 斤() 多(다) 如(다) 加(더) 丁(뎡) 刀(도) 道(도) 豆(두) 置(두) 月() 冬() 等(/들) 知(디) 羅(라) 良(라) 老(로) 以(로) 陵(르) 里(리) 立(립) 來() 亇(마) 休(말) 味(맛) 毛(모) 勿(믈) 彌(미,며) 每() 所(바) 朴(박) 甫(보) 夫(부) 火(블) 非(비) 沙(사) 所(소) 數(수) 示(시) 時(시) 賜() 史() 白(>) 參() 阿(아) 良(아) 也(야) 於(어) 余(여) 亦(여,이) 五(오) 烏(오) 臥(와) 隱(은) 乙(을) 音(음) 邑(읍) 衣(의) 矣(의) 伊(이) 召(소)(조) 之(지) 叱(즐) 齊(졔) 吐(토) 何(하) 乎(호) 屎(시)(히) 兒() 耳() * 밑줄 친 자는 訓假字.
|
이 체계는 시대나 개인 또는 문체에 따라 달라지므로 유동적이다. 假字는 원칙적으로 1음절을 표기하므로, 2음절의 훈을 가진 차자도 훈가자로 쓰일 때에는 1음절을 표기하는 차자로 바뀐다. (加의 훈은 ‘더으-’인데 훈가자로서는 ‘더’를 표기함.)
그러나 다음의 假字들은 그 모음이 탈락되어 音節末子音을 표기하는 데 쓰인다.
只(ㄱ) 隱(ㄴ) 乙(ㄹ) 音(ㅁ) 邑(ㅂ) 叱(ㅅ) 應(ㅇ) |
차자의 표음은 음독자의 경우 그 시대의 우리나라 한자음으로 읽히고, 훈독자는 우리말의 어형인 훈(새김)으로 읽힌다. 하나의 차자가 하나의 훈으로 읽힐 수도 있다.
<鄕藥救急方>에서 ‘草’는 ‘플’과 ‘새’로 읽혔다. ‘末’과 ‘粉’은 모두 ‘’로 읽혔다. 음가자도 대체로는 그 시대의 한자음으로 읽혔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俗音으로 읽히는 것도 있다. ‘省’이 ‘소’로 읽히는 것이 그것인데, 이는 上代의 한자음일 가능성이 있다. ‘彌’는 <향약구급방>에서는 ‘미’로도 쓰였지만 전통적으로는 고대의 한자음로 추정되는 ‘며’로 쓰이고 있다.
차자의 연결법칙은 語節을 단위로 하여 그 앞부분은 개념을 나타내는 音讀字나 訓讀字로 표기되고,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뒷부분은 音假字나 訓假字로 표기된다. 즉, ‘讀字+假字’의 특징적인 표기구조를 가진다. 이 순서는 문장표기에서 특히 현저하게 지켜진다.
삼국시대의 차자표기 문장은 俗漢文 또는 變體漢文이라고도 불리는 吏讀文의 초기적인 문체이다. 이 문장에서는 후대의 이두에 해당하는 中(긔), 以(로), 之(이라) 등이 나타난다. 그리고 어순이 한문의 어순으로는 어색하며 완전히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되었다.
차자표기법은 향찰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혼합된 표기법의 단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향찰은 고려시대 후반에는 쇠퇴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두와 구결, 고유명사 표기도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었으나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용되었다. 이 표기법을 통하여 얻은 국어표기의 경험과 전통은 훈민정음 창제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2. 鄕札
借字表記法의 하나로 우리말을 차자로 완전히 기록할 수 있었던 표기법이다.
향찰이라는 용어는 <均如傳>에 실린 崔行歸의 譯詩 서문에 나타난 것으로 향찰을 唐文, 漢文에 대립되는 뜻으로 사용하였는데, 鄕歌의 문장과 같은 우리말의 문장이라는 뜻으로 썼다. 현재 국어학에서 향찰이라는 말은 향가의 문장과 같이 우리말을 차자로 완벽하게 표기한 문장이나 그 표기체계(표기법)라는 뜻으로 쓴다. 향찰이라는 말은 문헌상으로는 <균여전>에 단 한번밖에 나타나지 않지만, 鄕歌·鄕言·鄕名이라는 말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鄕’이라는 글자로 자주 표현한 것을 보면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자주 쓰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초기학자들은 모든 차자표기를 吏讀라고 하여 ‘향찰’이라는 개념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는 신라시대의 차자표기법은 ‘鄕札’, 고려시대 이후의 차자표기법은 ‘吏讀’라고 하여 구별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향찰과 이두는 용도·문체·표기법상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이두는 고려시대에 와서 갑자기 향찰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향찰이 발달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향찰이 발달한 이후에도 공존하여 사용되어 왔으므로, 이들을 시대의 차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비록 명칭의 발생연대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실재하였던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1. 자료 : 향찰의 기록으로서 현재 전하여 오는 것은 주로 향가이다.
① <三國遺事> -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의 향가 14수
② <均如傳> - 고려초 향가 11수
③ <悼二將歌> - 고려 예종의 1수
모두 26수의 시가가 향찰로 기록되어 전한다.
④ 이 밖에 13세기 중엽에, 편찬 간행된 <鄕藥救急方>에 나타난 향약과 병에 대한 우리말[鄕名]의 표기도 향찰에 속한다. <향약구급방>의 우리말은 단어의 표기가 주종을 이루지만 齒齼病에 대한 “이가 솟고 시다[齒所叱史如/니솟다].”와 같은 순수한 국어문장을 향찰로 표기한 것이다.
2. 표기 구조 : 향찰의 표기 구조는 語節을 단위로 하여 ‘讀字+假字’의 구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즉 개념을 나타내는 부분은 한자의 본뜻을 살려서 표기하고, 조사나 어미와 같이 문법관계를 나타내는 부분과 단어의 語末音의 부분은 한자의 뜻을 버리고 표음문자로 이용하여 표기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이두나 구결의 표기구조와 유형상 같다. 그러나 향찰은 완전한 국어의 어순으로 배열하였고 가자의 부분인 吐가 조사나 어미를 거의 완벽하게 표기하고 있다. 또 고유명사가 아니라도 ‘丘物叱丘物叱/구믌구믌’과 같이 ‘가자+가자’의 연결구조를 사용한 예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이두문은 한문의 어순과 국어의 어순이 섞이어 쓰이는 것이 주종을 이루지만, 향찰은 인용구나 특별한 표현적 효과를 위한 경우를 제하고는 한문의 어순은 쓰이지 않는다. 또, 이두문은 套式이 많고 한문식 표현에 의지하는 바 커서 조사나 어미가 소홀하게 표기되는 수가 많으나, 향찰은 조사나 어미의 표기가 정밀하여 자연스러운 국어문장을 표기하고 있다.
3. 발달 과정 : 향찰은 차자표기법 가운데 가장 발달한 표기법이다. 관명과 같은 고유명사나 단편적인 단어의 표기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이두-구결-향찰의 순서의 순서로 발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유명사 표기는 ‘가자+가자’의 표기구조가 특징적인데, 이는 한문과 국어식 문장에 구별없이 쓰였다. 문장표기는 고구려에서 초기이두문인 변체한문이 발생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신라로 전하여졌다. 신라에서는 이 문체의 사용과 아울러 壬申誓記石에서와 같이 한자를 완전히 우리말의 어순으로 배열하여 표기하는 문체가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7세기경에 한문에 토를 다는 방법, 즉 口訣이 발달하였고, 이 구결의 토와 우리말 어순의 이두문이 接合되어 향찰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향찰의 토를 표기하는 차자는 고유명사를 표기하던 가자가 많이 쓰였고 또 ‘가자+가자’의 연결구조를 보여주는 것도 일찍부터 고유명사표기의 특징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향찰은 고유명사·이두문·구결의 표기가 합류되어 발달한 것임을 말하여 준다.
향찰로 표기된 향가는 삼국시대에 지어진 것도 있으나 그 표기법인 향찰은 8세기경에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향가는 구전되다가 후대에 와서 기록될 수도 있어 현재까지 전하여오는 자료로 보면 향찰과 같이 발달된 차자표기법은 8세기 이후에야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자료로서 토가 나타난 것은 8세기 초이므로 이 시기에 와서 향찰의 발달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755년에 기록된 <新羅華嚴寫經造成記>는 완전한 국어의 어순과 아울러 토를 보여주고 그 밖에 향찰의 특성인 말음첨기법과 略體로 표기된 차자를 보여주고 있다. 이 조성기의 토의 표기는 국어문장에서 필요로 하는 조사나 어미를 정밀하게 표기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것이 곧 향찰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향찰에 매우 가까운 표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14수 가운데 5수는 8세기 중엽인 경덕왕 때 지어진 것이라 하였고, 특히 信忠의 <怨歌>는 효성왕 즉위초(736)에 지어서 잣나무[柏樹]에 붙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시기에 향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진성여왕 2년(888)에는 角干 魏弘이 大矩和尙과 더불어 향가를 수집하여 <三代目>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均如의 향가가 神驗하여 널리 전파되었을 뿐더러 이따금 墻壁에 쓰여 있기도 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9,10세기에는 향찰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한문에 밀려 향찰의 사용이 차츰 위축되어 갔을 것이나 <삼국유사>를 편찬한 一然은 향찰 표기를 이해하고 향가를 실었을 것으로 믿어지고, <향약구급방>의 우리말 표기에서도 향찰로 표기된 문장이 쓰인 것으로 보아 13세기까지는 존재하고 있었음이 문명하다.
4. 표기법상의 특성 : 향찰로 표기된 자료들은 아직도 완전한 해독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삼국유사>이 향가를 중심으로 표기법상의 특징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槪念部의 表記
㉮ 音讀字 표기 - 太平, 善化公主, 薯童房, 四十八大願
㉯ 訓讀字 표기 - 春/봄, 母牛/암쇼, 浮去隱/간, 優音/시름, 岩乎/바회
㉰ 假字 표기 - 毛冬/모, 於冬是/어드리, 於內/어느, 達阿羅/아라, 阿孩/아, 巴寶白乎隱/보보온, 阿邪也/아사여
② 토의 표기
㉮ 末音添記 - 憂音/시름, 夜音/밤, 雲音/구룸, 道尸/길, 慕理尸/그릴, 心末/, 有叱/잇, 岩乎/바회, 折叱可/것거, 前乃/져나
㉯ 助詞의 표기
㉠ 주격조사 - 雪是/눈이, 脚烏伊/가로리
㉡ 속격조사 - 耆郞矣兒史/耆郞 즈시, 蓬次叱巷中/다봊ㅅ굴헝
㉢ 대격조사 - 房乙/방, 吾肹(힐)/나, 花肹/고
㉣ 처격조사 - 巷中/굴헝, 邊希/, 此矣彼矣/이뎌, 尊衣希/尊, 月良/아, 前良中/前아, 汀里也中/나리야(믈서리야)
㉤ 조격조사 - 筆留/부드로(균여전)
㉥ 호격조사 - 郞也/郞이여, 彗星也/彗星이여, 花良/곶아, 矣徒良/의아
㉦ 주제격조사 - 二肹隱/두블흔, 汝隱/너는, 君隱/君은, 民焉/民
㉰ 語尾의 표기
㉠ 종결어미
ⓐ 설명형 종결어미 - 知古如/알고다, 獻乎理音如/바도림다, 置內乎多/두오다, 四是良羅/넷이어라, 行齊/녀져
ⓑ 의문형 종결어미 - 何如爲理古/엇다리고, 去賜里遣/가시리고, 成遣賜去/일고실가
ⓒ 명령형 종결어미 - 陪立羅良/뫼셔라아
㉡ 연결어미 - 放敎遣/놓이시고, 捨遣只/리곡, 嫁良置古/얼어두고, 見昆/보곤, 古召旀(며)/고조며, 使以惡只/브리악, 吾下是如馬於隱/내해다마
㉢ 전성어미
ⓐ 명사형 전성어미 - 岳音見賜烏尸聞古/오롬 보시올 듣고, 白屋尸置內乎多/올 두오다, 浮去隱安支下/간 안디하, 明期月良/긔아
ⓑ 관형형 전성어미 - 去隱春/간 봄, 直等隱心音矣/고 , 行尸浪阿叱/녈 믌겨랏, 行乎尸道尸/녀올 길, 宿尸夜音/잘 밤
ⓒ 부사형 전성어미 - 白良/아, 唱良/블어, 入良沙/들어사, 遣也置古/기텨 두고
이 밖에 존칭보조어간의 표기에는 ‘賜/(시),’와 ‘敎/이시’가 쓰였다. 겸양보조어간에는 ‘白/’이 쓰였다.
3. 吏讀
한자의 음과 訓(새김)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차자표기법의 하나.
명칭 : 吏書 - <帝王韻紀>
吏道 - <大明律直解>
吏讀 - <訓民正音>의 鄭麟趾 서문, <世宗實錄>
吏刀 - <선조실록>
吏頭, 吏吐, 吏札, 吏文 등의 명칭도 쓰였다.
‘吏’는 胥吏의 ‘吏’와 같은 뜻임이 분명하지만, ‘讀, 道, 刀, 頭, 吐’는 국어의 어떤 말을 글자만 달리해서 표기한 것이라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이고, 그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대체로 口訣의 吐와 같은 어원으로 ‘句讀’의 ‘讀’가 변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와 같이 보면, ‘이두’는 서리들이 쓰는 吏讀文의 토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는 조사와 어미를 나타내는 토가 중심이 되지만, 그 밖에도 체언·용언·부사들도 있으므로 이두문에 쓰이는 우리말의 보조어라고 할 수 있다. ‘이서, 이찰, 이문’도 이름만 달리하였을 뿐 실제로 지시하는 내용은 이두와 같다. 이두를 이두문에 쓰이는 국어의 보조어라고 하면 이것은 협의의 吏讀 개념이다.
한편, 조선조 초기에서부터 차자표기 일체를 가리켜 이두라고 하여 왔다. 당시에는 이두와 구결(토)을 제하고는 차자표기를 가리키는 명칭이 세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세기 초기 학자들은 鄕歌를 표기한 표기법도 이두라고 하여, 향가를 ‘이두문학’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 개념이 학자에 따라서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어서 廣義의 이두라고 불린다. 그러나 <均如傳>에서 향가와 같은 완전한 우리말의 문장을 향찰이라 불렀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향찰과 이두를 구별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향찰과 이두는 문체·용도·표기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광의의 이두에 포함되는 것은 향찰 이외에도 口訣이 있으나 이 역시 협의의 이두와는 구별된다. 吏讀가 쓰인 글은 한문의 개조가 있는 데 반하여 口訣은 한문을 그대로 두고 한문의 독해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토만 단 것이다.
1. 성립과 특징
이두 계통의 명칭으로 가장 오래 된 것은 <帝王韻紀> 중의 吏書이다. 이 명칭은 사회적으로 서리 계층이 형성되면서 생겨났을 것으므로 통일신라시대나 그 이전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라시대의 차자표기 일체를 향찰이라 하고, 이두는 고려시대 이후에야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자료상으로 보면 이두문체는 이미 삼국시대에 발달하기 시작하여 통일신라시대에 성립되어 19세기말까지 계승되어온 것이고, 향찰은 통일신라시대에 발달하여 고려시대까지만 사용되어온 것이므로 향찰과 이두를 시대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이두문은 한문의 문법과 국어의 문법이 혼합된 문체로서 때로는 한문 문법이 보다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국어 문법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여 그 정도가 일정하지 않다. 이두 문체의 이러한 특성은 그것이 기원적으로 文書體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두는 또 시대에 따라 그 표기법이 발달하기는 하였으나 문어로서의 보수성이 강하여 후대로 내려올수록 현실 언어와 거리가 멀어져 갔다. 여기에다 조사나 어미의 표기도 한문 문맥에 의지하는 바가 커서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특징들은 이두와 향찰이 구별되는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2. 창제자
이두는 薛聰이 만든 것이라는 기록이 일찍부터 있어왔다. 이 견해는 <帝王韻紀> 이래 <대명률직해> 등의 여러 서적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제왕운기>보다 앞서는 시기의 기록에서는 설총이 이두를 지었다고 하기보다는 그때까지 발달되어온 차자표기법을 정리하여 경서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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