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본위로 하여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자연을 읊은 고전시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국토를 '금수강산'이라고 칭송하면서도 그 자연환경, 즉 국토의 강이나 산 혹은 동식물 등을 구체적인 시적 대상으로 언급한 것은 많지 않다. 그 자연은 인간이 지닌 아름다운 심성이나 미덕 혹은 관념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서의 의의만을 가지는 것이다.(중략)
조선의 시조는 언뜻 보면 자연시로 보이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어휘의 대부분은 인간의 생활과 관련되는 '임, 일, 술, 말' 등이다. 자연의 정화라 하는 꽃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사실은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시조에 자주 나타나는 매화나 국화는 그 꽃이 지닌 아름다움보다는 그것이 인간적 덕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된 소재들이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 落木寒天에 네 홀로 퓌엿나니 아마도 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에서 국화는 그 자체의 존재성으로 이 작품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녀야 하는 절개의 표상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진다. 국화의 생태와 절개의 연관은 인간의 이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자연물을 읊은 대부분의 시조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동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을 읊은 대부분의 시조는 자연시라기보다는 인생시의 성격이 짙다. 즉 우리으 시가에 나타나는 자연은 인간과의 관련 속에서만 의미를 띠는 인간화된 자연, 인간에 봉사하는 자연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자연에 대한 우리 문학의 관념은 이처럼 인간 중심으로 이념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