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각 문화권의 다양한 설화에 관한 기존의 이론들을 살펴보면 설화행위는 어느 곳에서나 이루어져 온 보편적 사실이며 형식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스타일, 목적, 구연시기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백여 년 동안 냉철한 사상가들에 의해 주목할 만한 설화이론들이 발표되었는데 이와 함께 설화의 기원, 의미, 전파와 변이 그리고 지역성을 띠지 않는 메르헨과 같은 여러 설화 형식들간의 관계 문제를 다루었다.
이 문제들에 대한 첫 번째 논의는 그림형제의 인접국가의 설화들에서 볼 수 있는 유사성과 동일한 플롯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한 민족에서 다른 민족으로 설화가 전파되어 이국적 토양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사실의 개연성이나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으나 한두 가지 특수한 예외가 모든 설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의 광범위한 전파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로 소급되는 몇몇 신앙의 편린들은 모든 설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초자연적인 신적 요소들이 비유를 통해 표현되었다.
오늘날의 학자들에게는 고고학적이고 민족학적인 문제로 보일 이에 대한 접근은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최근 발견된 단어들간의 관련성은 설화 연구자들에게 과거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반세기동안 연구자들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이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 학파에 속한 연구자들은 설화와 신화 사이의 유사성은 인도-유럽어족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하나의 유산이라고 보았다.
콕스경의 신화 기원론에 대한 앤드류 랑의 풍자적인 요약은 폭스경 자신의 장황한 논의만큼 환상적인 것은 아니다.
초기의 야만인들은 유기적인 생물이건 무기물이건 모든 존재는 살아있으며 의식적인 활동과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계는 야만인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신화에 끼친 언어의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인류가 본래의 단어가 가지고 있었던 ‘원의미’를 상실하자마자 단어들과 구절들은 새로운 설화의 근원이 되었다.
유럽설화의 기본은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 바 있지만 이 논의를 받아들여 쳇계화시킨 것은 벤파이였다. 또 10c를 전후하여 인도를 침략하고 정복함으로써 인도와의 관계는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때부터는 구전설화보다 문헌설화가 중시되게 되었다. 거의 200여년동안 몽고는 유럽을 지배하였고 이를 통해 인도의 사상이 유럽으로 전래되는 풍토가 열리게 되었으며 인도설화를 전 세계로 전파한 사람들은 회교도들과 불교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전설화는 각각의 국민성에 맞게 변이되었을 뿐만 아니라 형식과 특성 및 모티프 등 거의 전반적인 면에서 새롭게 구상되었다. 설화는 많은 변이를 겪으면서 다시 문헌에 정착되기도 하였으며 구전설화로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특히 국민성이나 개인성에 따라 이러한 설화들은 위대한 시적 가치를 부여하는 국가적 진실이나 개인적 통일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도이외의 문명이나 그 문명과 접촉을 가졌던 다른 민족들에게서 발견되는 불교적 관념의 발생과 역사를 설명하는 이같은 관점은 불교사상이 적어도 인도에서 기원한 이후에야 이들 지역에 완전히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 매력적이 사상이 중세의 금욕주의자들의 신조로 수용되었다는 것, 또 그와 대립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며 비록 음란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감성적인 측면은 문학을 본질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마르지 않는 샘을 창조하고 그것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메르헨이라고 할 수 있다.
『판차탄트라』에 수록된 설화들에 대한 벤파이의 세밀한 주석은 그의 학설에 권위를 부여하였고 그 후 적어도 30년간은 많은 설화연구자들이 그가 제시했던 10c 이전의 구전설화, 10세기 이후 회교도들의 영향을 받은 문헌설화, 중국과 티벳을 통해 몽고로 전해진 불교설화와 몽고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 불교설화, 이 세 가지 경로에 관심을 기울였다.
인도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장하였던 벤파이 이후 바이마르의 듀칼 도서관 사서였던 라이홀드 퀼러는 설화의 주석에 관심을 기울였을 뿐, 유럽 설화의 기원이라는 일반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벤파이의 학설을 더욱더 옹호한 사람은 임마뉴엘 꼬스낀으로 두 가지 면에서 벤파이의 이론을 수정하였다.
대부분의 설화 연구자들은 인도가 많은 서로하의 원천으로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도는 단지 설화를 창조하고 전파한 여러 중심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설화의 기원에 대해 랑은 오늘날의 설화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원시사상에 주목하여 이러한 요소의 존재는 그 설화가 고대의 산물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였으며 “다원주의”를 신봉하고 있다고 이야기된다.19c까지 설화학계의 어떤 이론보다도 뛰어난 것이었으며 20c로 접어들면서 그의 이론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발전적으로 계승되었다.
설화는 그것을 전승하고 있는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설화는 매우 오래된 것이었는데 점차 변이를 거치면서 미개인의 시대에서 오늘날의 문명시대로 전승되어왔음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또 세계 각지로 전파된 설화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화 내용이 가지는 ‘의미’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라이엔은 근본적으로 꿈이 오늘날의 설화에 나타나는 여러 요소들을 야기시켰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프로이드학파 역시 실화를 억압된 욕망이 꿈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설화의 기원 문제에 대해 사실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지는 못했다.
실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설화장르는 실제적인 가치를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신화와 전설에서 시작되어 실용적 가치는 거의 없는 요정담과 노벨레로 전개되어 왔다. 또 설화 속에는 宗敎儀式의 흔적이 남아있다.
설화나 신화와 같은 전 세계적인 현상에 대한 연구는 어느 한 지역의 설화나 신화만을 통해서 이루어질수는 없는 것이다. 신화와 설화의 발전과정은 대단히 복잡한 것으로 각양각색의 변이를 거치면서 외래요소를 수용하기도 한다.
보아스는 설화의 타이프와 모티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할만한 연구를 하였고 설화타이프가 비교적 분명하게 발전되어 온 유럽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전파와 수용의 대상이 된 것은 개개의 모티프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보아스의 시작단계에 있었던 연구는 그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