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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四大家
四大家는 조선 중기 古文 사대가로 흔히 ‘月象谿澤'이라고 통칭되는데, 선조, 광해군, 인조 연간에 활동했던 학자이자 문신인 月沙 李廷龜(1564~1635), 象村 申欽(1566-1628), 谿谷 張維(1587-1638), 그리고 澤堂 이식(李植,1584~1647)을 말한다.
조선 중기는 개국 이래 미증유의 외적 침략으로 굳건했던 주자학적 질서체계가 흔들리는 시기이다. 주자학적 질서의 지속적 성향과 변화 양상이 동시에 상존하고 있었다. 문학방면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러한 문학적 경향을 잘 대변해 주는 一群이 바로 사대가들이라 여겨진다. 다시말하면 전통적 문학관과 변화의 문학성이 병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문학 경향은 대체로 조선 사대부 詞章派들의 문학의식을 대변해 주고 있다.
문제는 이들 漢文四大家의 문학사적 성격이 무엇인가 알아보는 일이다. 사대가의 기본적 문예인식과 변화의 인식을 한문학사상의 제가의 평에 비추어 위상을 살펴 요약해 보고자.
당대에는 송시에서 唐詩로의 변이 현상이 뚜렸하였는데 이는 이지적 시풍에서 眞率한 인간의 참모습을 구사하고자 하는 唐詩風으로의 변이였다. 이 사대가들도 唐詩로의 변이에 동참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당송8대가의 古文을 典範으로 삼았다. 고문 운동은 중당(中唐)시대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이 제창하였다. 육조(六朝) 이래 그때까지 유행하던 변려문(儷文)은 기교를 중시한 나머지 허식에 흘러 내용이 허술하므로, 《맹자》 《사기(史記)》 등의 문장이 가진 간결함 ․힘참 ․명쾌함이 깃든 문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이야말로 산문의 이상이라고 하였다. 그 기본적 성격은 유교의 교의(敎義)를 선명하게 할 것을 목표로 하고, 도(道)의 문학으로서의 성격을 문학의 여러 분야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내었다. 또 고문의 작자는 사대부의 문학, 교양인의 문학으로서 철학 ․역사 ․사회 ․인생 등 모든 주제에 대해 관심을 표시한 것이다.
둘째, 이들은 성리학적 사고를 삶의 규범으로 삼고 실천하였다. 文을 載道之器, 곧 문학이란 도덕적 가치를 담는 그릇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셋째, 이들은 모두 집안 좋았고, 관료층 문학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들을 통하여 한문학이 귀족 양반의 전유물로 인식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1이정구는 시에 있어서 能化의 단계를 최고로 설정하였다. 이는 문예의 世敎性을 강조함이다. 그는 시의 전범을 盛唐詩로 인정하고 그에 입각하여 짓고, 서문등에서 논평.
2신흠은 자연적인 淸色의 시를 추구하였다→天得의 시를 시라고 생각. 館閣의 시보다 草野의 시가 더 낫다고 하였다. 당시 學唐派 시인들의 어설픈 학시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시대인식이 온건하였으나 유배생활을 하며 시를 토로할 때는 강렬.
3장유는 시에 있어서 天機論성을 주장. 천기가 곧 시라는 것이다. 천기는 각자의 진솔한 삶과 통하는 것으로 미천한 사람일지라도 참삶이 곧 천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후기 여항문인의 설 자리를 제공. 杜甫의 시를 특히 좋아하여 ‘重刻杜詩諺解序’를 썼다.
4이식은 철저한 程朱學者였다. 문예인식도 經世濟國의 효용론에 입각. 역시 두보 시의 공신으로 시를 배우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당시의 학당풍은 대조류였으며, 明學의 영향으로 더욱 성당시는 높이 평가되었다.
道와 文의 관계에 있어서는 사대가 모두가 道本文末의 전통관을 견지하였고, 문이 도의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이정구, 이식 두 사람은 시대 인식을 도덕상실의 위기시대로 생각→전통고문관 견지. 신흠은 장유와 더불어 전통고문관에서 변화의 측면에 서 있다.
이상 사대가의 위상은 한문학 사상 고문가의 전범으로 간주되며, 전통과 변화의 양면성을 엿볼 수 있는 문인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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