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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심리의 이중성 / 미래의 좋은 한국 만들기 – 심원(心遠) 김형효(1940~2018) -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 동서양 철학에 정통.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근대철학을 연구한 서양철학자다. 실존주의, 현상학, 구조주의 등 서양철학 전반에 정통했으며, 국내에 하이데거와 데리다에 대한 관심도 크게 불러일으켰다.
심원 선생의 사유는 서양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철학은 사유의 학문”이라던 그는 가브리엘 마르셀, 베르그송, 데리다, 메를로퐁티, 조르쥬 바타이유, 하이데거 등을 거쳐 노자, 공자, 장자, 주자, 퇴계, 율곡, 다산의 사상을 가로질러 막바지에는 원효의 정신세계에 심취했다. 심원 선생을 ‘철학계의 오디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략)
그가 남긴 언어의 사리들은 여전히 영롱하다.
제12대 국회의원(1985 ~ 1988) / 김춘수(1922~2004) 제11대 국회의원(1981 ~ 1985)
한국인 심리의 이중성(양면성) –
모든 약은 모든 독이기도 하다.
업도 그렇다.
장점과 단점도 그렇다.
어진 민족은 어리석기도 하다.
주어진 業을 藥으로 바꾸어 나갈 것인가. 지혜가 필요하다.
약이 독이 되기도 한다. –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다.
약이 되도록 하는 지혜 필요.
仁과 愚, 義와 不義는 같이 같다.
한국사는 왜 좋은 점만 얘기하는가? 단점도 얘기해야 한다.
한국인의 공동 심리 중의 첫째가 ‘순수성’이다. 이것도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150편의 시조를 분석한 바 있다. – 이화, 명월, 광명, 백설, 은한, 고죽, 청풍, 백운, 청초, 풍월, 매화, 연화, 송림... - 색깔로 보면 ‘흰색, 푸른색’ 많이 등장. - ‘지조, 절개, 충절’을 노래.
이익을 위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지조, 충절이 없는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싫어했다.
최고 애송시 – 윤동주의 ‘서시’ - 순수한 영혼의 애가로 볼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청아, 청초한 마음이다.
학문 중에서도 천문학, 고고학자의 영혼이 정치학이나 사회학자보다 깨끗하다고 본다.
최명길보다 김상헌을 더 높이 평가. - 최는 항복했기 때문에 후손이 기가 죽어 살아왔다.
친구지간이지만 정도전보다 정몽주를 더 높이 평가. - 조선조 주자학의 아이러니다. 자기 나라를 세운 사람을 폄하한다는 사실.
이성계보다 최영을 더 높이 평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보다 이를 반대한 김구를 더 높이 평가.
대단한 외교가이자 정치가였던 신숙주보다 성삼문의 충절을 더 높이 평가.
-
때 묻히지 않은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는 국민.
그러나 때 묻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한국인의 순수성의 장점. 신념윤리.
막스 베버 – 신념윤리(결과의 유용성보다 동기의 순수를 높이 평가함. 지사, 의사, 열사의 행동 강령과 직결되어 있다. -한국 문화가 지사의 문화이다.)와 책임윤리.
예컨대 장계석의 임시정부 독립 자금 후원 – 윤봉길 의사를 보고 놀람.
평생 시장에서 번 할머니의 전 재산 10억 대학 기부
IMF 때 금 모으기.
천주교 자발적으로 받아들임- 순교의 정신
현상윤의 <조선유학사> - 순수를 생명처럼 여겼다.
병자호란 이후 수백 명의 유학자가 산속으로 들어감.
성철 스님과 같은 고행...
우리의 단군지도와 풍류지도가 일본으로 건너가 사무라이가 되었다.
열린 사고 닫힌 사고. 和光同塵. 斂襲
신바람 ‘흥’과 ‘한’이다.
‘격정, 광란’ – 에너지를 정중동으로 예술화시켜야
恨은 위험하다. 怨恨으로 작용한다.(일본, 중국 사람들은 즉시 행동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조심한다.)
조선의 예(禮) 때문에 ‘댄싱 투게더’와 ‘싱잉 투게더’가 사라졌다.
‘열심’인가 ‘열광’인가. ‘풍류’인가 ‘광란’인가. ‘정중동’의 격정. ‘흥’인가 ‘한’인가.
우리는 한을 내적으로.
법원에 僞證과 詐欺가 일본의 36배.
속으로 감정이 삐뚤어짐.
해코지하려는 문화로 가서는 안 됨.
근본주의[fundamentalism],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근본주의를
“자기 자신의 신념이나 근거가 합리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울 때조차도
그러한 신념이나 근거를 정치적 주장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특이한 사고방식이나 고집스러운 태도”로 정의,
구조주의 [Structuralism, 構造主義]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전제.
단군사상은 현묘지도(玄妙之道).
깊이 있는 국민이 되자. - 깊이 있는 문화, 깊이 있는 마음, - 자정능력.
원효 일심, 화쟁지묘,
의상대사 진성지묘, 의상대사 교와 선의 묘. - 해동(海東) 화엄(華嚴)의 초조(初祖)
지눌의 진심묘체,
유학 – 화랑의 기지 묘. 율곡의 이기지묘, 퇴계 이기지묘,
한말 혜강 최항지의 신기지묘.
창의성, 강의식 말고 토론식으로 하라.
– 서양은 강의식. 妙用. 가능성을 각자 신바람 나도록 최선을 다함.
內聖外王 : 안으로는 성인(聖人)이고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 곧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을 겸비함을 이르는 말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 당태종은 내성으로 보면 엉망이다. SOB다. 세조를 인정하지 않듯이 당태종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을 볼 때 흑백으로 보지 말라. 종이 한 장 차이다. -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유튜브 -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Dr. Jekyll And Mr. Hyde) - 1부, 2부
<참고> 맹자의 성인론
성지청(聖之淸) : 修己를 통하여 인의를 체득함으로써 본래 타고난 깨끗함과 순수함을 굳게 지닌 상태 : 백이
성지화(聖之和) : 수기를 통하여 체득한 인의를 대인관계에서 나타내 보임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調和를 이루는 상태 : 柳下惠(백이 숙제와 더불어 죽림칠현의 한 사람) – 항상 모든 일의 원인을 자기에게 돌이켜 구하기 때문
성지임(聖之任) : 수기를 통하여 체득한 인의를 사회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상태 : 이윤[주문왕(周文王)은 반계(磻溪)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맞고, 은왕(殷王)은 신야(莘野)에서 이윤(伊尹)을 맞이함]
남과 더불어 선을 이루는 방법 ① 교육 ② 현실 정치에 참여하여 인정(仁政)을 펴는 일
<노자>의 습명(襲明) 사상 - 밝음을 입다. 밝음을 줄이라. 흑백을 가리지 않았다.
화광동진(和光同塵)- 빛과도 친하고 더러운 먼지와도 동거하라.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 노자는 실학적인 사상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서얼 반상 차별한 나라가 없다. 우리는 부모가 죄를 지으면 대대로 벼슬기 폐쇄. 불교 탄압 – 승려는 도성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선비들이 중을 노비처럼 취급.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신바람의 흥(興)과 한(恨)의 양면성. - 단군신교는 제천사신(祭天事神)
이능화는 ‘接神脫我(엑스타시스)’
현묘 지도 접화 군생 – 이 네 가지가 단군신교
신라의 화랑정신, 고구려의 早帛정신.
일본의 사무라이(무사도) 정신은 닫힌도덕이다. 자기 집단의 발전을 위해만 모든 노력을 쏟음.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 세상을 바꾸려는 근육
우리의 미륵반가사유상 – 내면을 바꾸려는 미소
한민족의 미래 결정 – 깊이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깊이 있는 마음에서 나온다.
농담 일색의 tv의 가벼움. 깊이 있는 문화는 깊이 있는 마음에서 나온다. - 단군신도의 현묘지도의 현대적 해석.
예, 원효의 일심지묘(화쟁),
의상대사의 친성지묘?
의천대사의 敎觀지묘(교종과 선종의 묘)?
지눌의 진심묘체,
유학에 있어서도 화담 서경덕의 기지묘용(기의 묘),
율곡의 이기지묘,
퇴계의 지지묘용,
해강 최항리의 신기지묘... 전부 妙와 관계된다.
妙가 한국의 미래와 직결된다. 묘용은 깊이에서 나온다.
창의성 있는 교육은 개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강의식으로 말고 토론식으로 하라는 말은 잘못이다. 서양은 다 강의식이다.
각자 자기의 가능성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한국인 마음 깊고 커져야 할 때/조우석 언론인
왜 이런 상황일까? 윤동주 신화를 떠받치는 한국인 집단정서의 이중구조를 잘 살펴야 한다. 한국인 집단정서에는 외곬의 순수주의 지향이 똬리 틀고 있다. 일테면 조선시대 시조에서 가장 빈번한 시어가 "명월(明月)"이고, "청산(靑山)"이며, "고죽(孤竹)", "송림(松林)" 등이다. 온통 지조-절개의 상징어들인데, 한국인은 그만큼 못 말리도록 순수를 좋아한다.
유감스럽게도 그게 때론 편협함으로 치닫는다. 조선조 당쟁도 그렇고, 양명학조차 사문난적으로 규정해 주자학만을 고집하는데서 보듯 우린 작은 차이나 현실에서 묻은 때를 참지 못한다. 그게 지나치게 명분에 매달리며 흑백논리에 대한 집착을 낳고 고질적인 근본주의를 키운다.
그렇다. 순수함이란 약이자 독인데, 그건 국민 심성의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사적 유산이기도 하다. 시시때때로 폭민(暴民)정치로 돌변하는 한국정치의 소용돌이, 지구촌 최악인 북한 전체주의의 광기도 결국엔 그 차원이다. 순수주의가 편협함으로 흐르고 그게 끝내 악성종양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오해 마시라. 윤동주가 좋은 시인이 아니라는 게 내 말이 아니다.
1년 전 타계한 철학자 김형효도 한국인은 보다 깊이 있는 마음으로 진화해야 하는데, 그건 고대 이후 우리문화의 숙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원효-의상-퇴계-율곡 등 한국철학 대가들의 철학이란 결국 우리의 절제되지 않은 집단정서를 큰 저수지에 모으고 이성화하는 작업"이란 것이다.
그게 맞다. 연못이 깊으면 더욱 고요해지고, 더러운 걸 자정(自淨)하는 힘도 훨씬 커지지 않을까? 좋다. 한국문화가 깊고 커지면서 삶과 역사의 오욕까지 끌어안고 자정하는 힘, 역사 전체를 통찰하는 힘으로 자라나야 옳다. 그래야 한국인 마음 건강까지 담보할 수 있다.
* 한영우 – 한국인의 문화적 DNA
틀린 말- 역할, 월달
이종경 - “번갯불 번쩍할 때 바늘귀를 꿰어야 한다.” 독립운동에 나설 때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즉시 가담(加擔)하라는 의미였다. - 진관사 초월(初月)스님 – 일장기에 눌러 그린 진관사 태극기. 13세 때인 1891년 지리산 영원사(영혼의 근원, 경남 함양군)로 입산 출가. 법명은 동조(東照), 초월은 법호다. 1944년 6월 29일 입적. 만해와 동일. 만해, 용성을 따라가다 보면 초월을 만날 수밖에 없다.
과학의 발달 –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가는 길을 끊임없이 갈구, 내면에 깔려 있는 소유욕을 한껏 드러냄. 과학문명의 발달의 긍정적 효과가 태산처럼 크면서도 그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살도록 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철학과 인문학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왔고,
199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쩐의 전쟁터로 사람들을 내몰며 사유를 앗아 버렸다. 학문의 박제(剝製)화. 생존을 위한 소유욕에 매몰되어 가고 있다. 지금, 현대인들은 소유욕에 매몰된 대가로 힐링을 갈구할 정도의 각종 정신질환에 노울되는 역풍에 직면해 있다.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금의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간 중심의 세상을 발원하며 사유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 시대 ‘사유의 여행자’로 불리는 최고의 지성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모든 것인 소유적 본능에 기초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넘어서는 제3의 혁명으로 존재론적 본성을 회복하는 ‘마음 혁명’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는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사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마음혁명> 동서고금의 철학 사상이 우리의 역사적 운명과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로 한국인의 사유 지평(地平, 어떤 분야의 전망이나 발전 가능성)에 와 닿는지를 살피고 있다.
한국 서예의 새 지평은 ‘ㅎㅋㅊㅎ’
인류가 경험한 두 가지 큰 혁명인 산업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은 모두 소유론적 혁명의 세상보기인 것이다. 이 둘은 경제적으로 먹고 살 수 있게, 기술적으로 편안하게 만든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이기심의 독성을 일어주었다. 이제 인류를 제3의 혁명을 모색(摸索)해야 할 그런 시절인연에 이르렀다. 그것은 편리와 정의가 상충하지 않는 존재론적 혁명의 길이다. 이 존재론은 상대나 사물을 너와 내가 따로 있는 양변으로 보지 않고, 연기(緣起, 모든 현상이 生起 消滅하는 법칙.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서로 관계해서 성립하는 것으로,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함)로 보는 것이다.
한국 정치도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으로 양분’ 다 내려놓고 다시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서 우리 마음을 혁명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음을 떠나 세상을 혁명하려 하는 기조를 유지하는 한 갈등과 반목을 피할 수 없다.
존재론적 사유는 너와 내가 달라서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같이 있을 수 있는 존재의 근거가 되는 것.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소유론을 해체시키는 것이 곧 존재론. 우리는 본래 존재론적 존재였는데, 소유론적 존재가 되어 욕망으로 떨어졌다.
소유론은 자아의 철학, 존재론은 무아의 철학. 존재론은 결국 선적인 것과 만나게 된다. 본성은 지능이 쉴 때 깨어난다. 지혜는 본성의 발현이다. 지식은 자아의 꽃이나 지혜는 무아의 열매다.
동서철학을 회통하는 열쇠를 원효의 화쟁사상 – 이 우주의 법이 일원론도 이원론도 아닌 이중성의 사실로 존재함을 인식해야 한다. 일원적으로 합일하는 것도 아니고 이원적으로 갈라지는 것도 아닌 중도의 법인 ‘불일이불이’다. 원효는 이를 융이이불일(둘을 융합하되 하나로 만들지 않음)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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