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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이생규장전 원문 해석

李生窺墻傳 

 

松都有李生者 居駱駝橋之側 年十八 風韻淸邁 天資英秀 常詣國學讀詩路傍 善竹里 有巨室處子崔氏 年可十五六 態度艶麗 工於刺繡 而長於詩賦 世稱風流李氏子 窈窕崔家娘 才色若可餐 可以療飢腸

1)송도에 이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2)낙타교 옆에서 살았다. (나이는) 열여덟이었고, 풍채가 맑고 뛰어났으며 타고난 재주가 빼어났다. 항상 국학에 나아갈 때는 길옆에서 시를 읊었다. 2)선죽리에 대단한 집안(→巨室 :부와 지위가 높은 집안)이 있었는데 (그 곳에) 처자 최씨가 있었다. 나이는 십 오륙 세였고, 태도가 염려하고(→艶:육체적 아름다움, :정신적 아름다움) 3)자수에 능하였으며, 시와 글에도 능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풍류 이씨의 아들이요, 요조 최가의 딸이라 불렀으며, ‘재주와 미모가 만약 먹을 수 있을 요량이면 가히 주린 배를 채울텐데.’라고 하였다.

 

譯註 

1)김시습의 금오신화는 모두 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배경으로 설정된 도시는 모두 과거에 榮華를 누렸던 추억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은 남원이며, 이생규장전과 용궁부연록은 개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취유부벽정기의 배경은 평양이며, 남염부주지의 배경은 경주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그 시대적 사명을 다른 도시에 넘겨 준 이러한 과거의 도시, 추억의 도시에서 금오신화의 이야기는 이루어진다.

 

2)글의 첫머리에 기술하고 있는 낙타교와 선죽교는 앞으로 이 소설에서 전개될 이야기에 대하여 전반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즉 낙타교는 이생의 일생을, 선죽교는 여인의 일생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낙타교의 이름은 고려 태조가 거란이 보내 온 낙타를 다리 밑에 매어 두고 먹이를 주지 않아 굶어 죽게 한 데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이는 이생이 앞으로 순탄하지 못한 생을 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선죽리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죽임을 당한 선죽교가 있는 곳으로 여인의 이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불행한 죽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최씨녀=작가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볼 때 작가가 갈구하였던 삶의 모습을 암시해주고 있다.

 

3)자수는 여자의 재주를 재는 척도인데 자수에 능하며, 게다가 시부에도 능하므로 최씨녀는 모든 면에 있어 뛰어난 여자임을 말한다. 또한 앞에서 이생을 국학에 나가는 훌륭한 젊은이로 묘사하였으므로 둘의 만남이 운명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李生嘗挾冊詣學 常過崔氏之家 北墻外垂楊裊裊 數十株環列 李生憩於其下一日竅墻內 名花盛開蜂鳥爭喧 傍有小樓 隱映於花叢之間 珠簾半掩 羅幃低垂 有一美人

이생은 일찍이 책을 끼고 국학에 나아갔는데 항상 최씨의 집을 지나게 되었다. (그 집은) 뒷담 밖에 늘어진 버드나무가 간들거리고 수 십 그루의 나무가 둘러서 있었다. 이생은 그 아래에서 쉬었는데, 1)어느 날 담 안을 엿보게 되었다. 이름난 꽃들은 만발하였고, 벌과 새는 다투어 울었다. 곁에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꽃 덤불(花叢之間)사이에서 은근히 비추었다.(隱映) 2)주렴이 반쯤 가리워져 있었고 비단 휘장은 낮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어떤 미인이 있었다.

 

譯註 

1)여기에서 엿봄이란 대상의 진실된 모습을 알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당대의 사람들이 그들을 ‘풍류 이씨의 아들이요, 요조 최가의 딸’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이미 이러한 세상의 평판을 듣고 있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 소문의 진실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를 당연히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2)이생이 그 안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담은 다가서면 안을 볼 수 있는, 약간은 트인 경계이다. ‘담 너머로 안을 보니 주렴이 반쯤 가리워져 있었고 그 안에 어떤 미인이 있었다’는 부분에서 주렴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내부를 보여주는 일종의 차단막 구실을 하고 있다.

 

 

倦繡停針 支而吟 曰

 獨倚紗窓刺繡遲 百花叢裏囀黃 無端暗結東風怨 不語停針有所思

 路上誰家白面郞 靑衿大帶映垂楊 何方可化堂中燕 低掠株簾斜度墻

수를 놓는 것을 권태로워하며 바늘을 멈추고는 턱을 괴고 읊으며 말하기를,

홀로 사창에 기대어 자수를 놓으니 더디기만 하구나. 온갖 꽃들 속에는 꾀꼬리가 지저귀는데 까닭 없이(無端) 샛바람(東風)과 몰래 원망만 맺는구나. 말없이 바늘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는데, 길 위의 백면서생은 어느 집의 자손인가. 푸른 도포와 큰 띠(→유생의 옷차림)는 수양버들사이로 비치네. 집안의 제비로 변할 수 있을까 마는 나직이 주렴을 걷어내고 비스듬히 담을 넘어 날아갈꼬.

 

 

生聞之不勝技癢 然其門戶高峻 庭闈深邃 怏怏而去 還詩以白紙一幅 作詩三首 繫瓦礫投之曰

 巫山六六霧重回 半露尖峯紫翠堆 惱却襄王孤枕夢 肯爲雲雨下陽臺

 相如欲挑卓文君 多少情懷己十分 紅粉墻頭桃李艶 隨風何處落繽紛

 好因緣邪惡因緣 空把愁腸日抵年 二十八字媒已就 藍橋何日遇神仙

이생이 그것을 듣고 재주를 뽐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技癢:∼을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모양) 그러나 그 집안이 대단하고(高峻) 내실이 깊고 깊어서 다만 울적하여 돌아가는데, 돌아갈 때에 흰 종이 한 폭에 시 세 수를 지어 기와 조각에 매달아 던졌다. 그 시에 써있기를,

무산의 열 두 봉우리는 안개에 겹겹이 둘러 싸였고, 반쯤 드러난 뾰족한 봉우리에는 붉고도 푸름이 서려있구나. 번뇌스러워라(惱却) 양왕이 홀로 자며 꾸던 꿈이여. 마땅히 구름과 비가 되어 양대에 내리기를. 1)사마상여가 탁문군을 유혹하려 한 것처럼 얼마간의 정회는 이미 알고(十分)있도다. 담장에 내민 얼굴은 복숭아꽃의 아름다움 같고, 2)바람을 따라 어느 곳에 후루룩 떨어지는가.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헛되이 하는 근심에 하루가 한 해 같구나. 시로써 이미 인연을 맺었으니 남교에서 어느 날에 신선을 만날 것인가.

 

譯註 

1)중국 전한 시대의 유명한 부() 작가로서 자는 장경(長卿)이다. 문학과 검술을 독학한 는 한의 경제(景帝)때 무기상시(武騎常侍)에 임명되었으나 병 때문에 사직했다. 그는 양()의 효왕(孝王)에게 가서 유명한 자허부(子虛賦) 를 지었다. 이 부에서는 상상의 인물 3명이 나와 사냥의 즐거움을 묘사하고 있다.

양의 효왕이 죽은 후 사마상여는 청도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막 과부가 된 부잣집 딸 탁문군(卓文君)을 만나 그녀를 유혹하여 함께 도망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결혼을 반대했지만 그가 황궁의 관직에 임용되자 마음을 돌려 막대한 돈과 하인을 보내주었다. 사마상여는 자신이 지은 자허부 를 친구에게 주었는데 그 친구가 무제(武帝)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매료된 무제는 그에게 황제의 사냥에 관한 부를 쓰도록 부탁했다.

사마상여는 본래 작품을 바탕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상림부(上林賦) 를 지어 궁정의 관직을 받았다. 아내 몫의 막대한 가산 덕택으로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작품으로는 29편의 부와 4편의 산문이 남아 있다.

2)이 구절은 詩讖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미래를 예언하게 되는데, 이것은일종의 복선의 구실을 한다.

 

 

崔氏命侍婢香兒 往見之 卽李生詩也 披讀再三 心自喜之 以片簡又書八字投之 曰 將子無疑 昏以爲期 生如其言 乘昏而往 忽見桃花一枝過墻 而有搖裊之影 往視之 則以鞦韆絨索 繫竹兜下垂 生攀緣而踰 會月上東山 花影在地 淸香可愛

최씨가 시비 향아에게 명하여 가서 그것을 보니, 바로 이생의 시였다. 펴서 읽기를 두 세 번 하니 마음이 절로 그것에 기뻐하였다. () 조각에 다시 여덟 글자를 써서 던졌는데 거기에 써있기를, ‘장차 그대는 (나의 마음을) 의심치 마시고, 저녁을 약속으로 삼으소서.’라고 되어 있었다. 이생이 그 말을 따라 어두워져서 가니, 문득 도화 한 가지가 담을 가로질러 너울거리고 있는 1)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가서 그것을 보니 곧 그네 줄로 소쿠리를 메어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이었다. 2)이생이 줄(→인연의 의미)을 타고 올라 (담을) 넘는데, 마침() 동산으로 달이 떠오르고 꽃 그림자가 땅에 어리었는데 맑은 향기가 가히 사랑스러웠다.

 

譯註 

1)이 부분은 ‘땅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라는 의미이다.

2)이생이 담을 넘으려 하는 순간, 카메라의 시점이 이동하듯이 달을 비춰주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담을 넘어가는 모습을 달을 동원하여 미화시키며, 꽃 그림자에서 풍겨오는 맑은 향기는 오히려 신비감마저 주고 있다. 김시습의 문학적인 상상력이 잘 표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生意謂已入仙境 心雖竊喜而情蜜事秘 毛髮盡竪 回眄左右 女已在花叢裏與香兒折花相戴 鋪罽僻地 見生徵笑 口占二句 先唱曰

 桃李枝間花富貴 鴛鴦枕上月嬋娟

生續吟曰

 他時漏洩春消息 風雨無情亦可憐

이생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선경에 들어왔구나!’하였다. 마음이 비록 남 몰래 기뻤지만 연애하는 일이 은밀하고 비밀스러워서(→情密事秘는 情事密秘의 순서로 해석됨) 털이 온통 곤두섰다. 좌우를 곁눈질하여 보니 여자가 꽃 속에 있었는데, 향아와 더불어 꽃을 꺾어 서로 머리에 이고 있었으며 1)자리를 으슥한 곳에 펴놓고 이생을 보고 미소지었다.

즉흥시 두 구를 지어 선창하여 읊기를,

복숭아 가지 사이에 꽃은 탐스럽고, 원앙베개 위의 달은 아름답구나.

이생이 이어서 읊기를,

2)훗날 봄소식이 새어나가면, 무정한 풍우에 또한 가련하리.

 

譯註 

1)나이 ‘열 대여섯쯤’ 되는 최랑의 당돌하면서 아름다운 행동은 어찌 보면 도덕이나 규범에서 크게 벗어난 듯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이 장면에서는 전혀 부도덕하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담 밖의 세계에서는 전혀 용납될 수 없는 이러한 일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담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일상적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곳, 그러니 일상적 활동은 멈추고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본원적 자아의 활동이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낮이 아니라 밤에 일어나는 것도 일상적인 논리를 벗어나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풀이될 수 있다.

 

2)이 부분의 시는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곧 봄소식을 둘 사이의 연정, 무정한 풍우를 부모님의 꾸지람으로 생각하면 ‘훗날 둘 사이의 연정이 새어나가면 부모님의 꾸지람은 어찌할 것인가.’로 풀이할 수 있다. 이생의 소극적인 면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부분이다.

 

 

女變色而言曰 本欲與君終奉箕箒 永結歡娛 郞何言之若是遽也 妾雖女類心意泰然 丈夫意氣 肯作此語乎 他日閨中事洩親庭 譴責妾 以身當之 香兒可於房中賚酒果以進 兒如命而往

여자가 얼굴 색이 변하여 말하기를, (저는) 본래 낭군님과 더불어 끝까지 받들고, 영원히 맺어져 기뻐하기를 바라였는데 낭군께서는 이와 같이 두려워하는 말씀을 하십니까. 첩은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마음은 태연합니다. (그런데) 장부의 의기로써 어찌() 이같이 말씀하십니까. 훗날 규중의 일이 친정으로 누설되면 꾸짖음은 첩의 몸으로서 감당할 것입니다. 향아 너는 방에 가서 주과를 가져오너라.’하니 향아가 명을 받들어 나갔다.

 

→이 부분에서 최씨녀는 여자의 당당함을 내세워 이생의 나약함을 질책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글 하는 선비들의 나약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작가의 비판정신을 담고있다.

 

 

四座寂寥 闃無人聲 生問曰 此是何處 女曰 此是北園中小樓下也父母以我一女 情鐘岳 別構此樓于芙蓉池畔 方春時名花盛開 欲使我從侍兒遊遊耳 親闈之居 閨閣深邃雖笑語啞咿 亦不能卒爾相聞也

1)주위(四座)는 고요하고 사람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생이 묻기를,  이곳은 어떤 곳인가? 하니 여자가 대답하기를,  이곳은 뒤뜰 안의 작은 누각 아래입니다. 부모님께서 제가 외동딸이기 때문에 편애함이 심히 돈독하시어 따로이 부용연못가에 이 누각을 얽어주셨습니다.(→構:집을 지음을 낮추어 이르는 말) 바야흐로 봄철이 되어 이름난 꽃들이 만발하면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시비 향아를 따르게 하여 놀도록 하십니다. 부모님의 거처는 깊고 깊어서 비록 웃고 떠드는 소리라 하여도 서로 들리지가 않습니다.’하였다.

 

  譯註 

1)향아가 나가고 둘 만이 남게 되자 어색해 지는 분위기를 주위의 적막함을 빌려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어색함을 깨기 위해 이생은 뒤에 이어지는 무의미한 질문을 하게된다.

 

 

女酌綠蟻巵勸生 口占古風一篇曰

 曲闌下壓芙蓉池 池上花叢人共語 香霧霏霏春融融 製出新詞歌白紵

 月轉花陰入氍毹 共挽長條落紅雨 風攪淸香香襲衣 賈女初踏春陽舞

 羅衫輕拂海棠枝 驚起花問宿鸚鵡

여자가 큰잔에녹이주를 따라 권하고 고풍시 한 수를 지어 읊기를,

굽은 난간(→실제로는 술 취한 사람을 말함)이 아래로 부용지를 굽어보니, 연못의 꽃 떨기와 사람은 함께 속삭이네. 향기로운 안개는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봄빛은 따스하구나(春다음에 光이 생략되었음). 새로이 가사를 지어내어 백저가(악시의 이름)를 노래하네. 달은 꽃 그늘 사이로 지고 부용에 비춰드는구나(), (달과) 함께 긴 꽃가지를 당기니 붉은 비(꽃비)는 쏟아지네. 바람이 일어나 맑은 향은 옷에 스미고, 가여(→가충의 딸, 손님을 유혹하여 자신의 남편으로 만듦)가 추던 춘양무의 첫발을 내딛네. 비단 소매가 가볍게 해당화 가지를 스치니 꽃 속에 잠자던 앵무새 놀라서 일어나네.

 

 

生卽和之曰

 誤入桃源花爛 多小情懷不能語 翠鬟雙綰金低 楚楚春衫裁綠紵

 東風初柝並蔕花 莫使繁枝戰風雨 飄飄仙袂影婆婆 叢桂陰中素娥舞

 勝事未了愁必隨 莫製新詞敎鸚鵡

이생이 곧 화답하여 읊기를,

잘못하여 무릉도원(선경)에 들어오니 꽃은 만발하고, 얼마간의 정회는 말할 수가 없네. 녹색 빛이 감도는 머리에는 쌍관을 지어금비녀는 낮구나. 깨끗한 봄 적삼은 푸른 모시를 마름질하였네. 봄바람이 처음 꽃봉오리를 꺾었으나, 많은 가지들아 풍우를 두려워말거라. 선녀의 소매 자락은 바람에 나부끼고 그림자는 너울거리는구나. 계수나무 그늘에 소아(→선녀=최씨녀)는 춤을 추네. 1)좋은 일이 끝나기도 전에 근심은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니 새 가사를 지어 앵무새를 가르치지 말기를.

 

 譯註 

1)이 부분에서 이생의 나약함과 소극적인 성격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상황에서 흥을 깨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飮罷 女謂生曰 今日之事必非少緣 郞須尾我以遂情款 言訖 女從北窓入生隨之 樓梯在房中 緣梯而昇 果其樓也 文房几案極其濟楚 一壁展煙江疊嶂圖 幽篁古木圖 皆名畵也 題詩其上 詩不知何人所作

(술을) 마시고 나서 여자가 이생에게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반드시 작은 인연이 아닐 것이니 낭군께서는 모름지기 저를 따름으로써 사랑의 약속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하며 말을 마치자 뒷 창을 따라 들어갔다. 이생이 그녀를 따라가니 누각의 사닥다리가 방 가운데에 있었다.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과연 그 누각이었다. 문방구와 책상이 너무나도(→其는 강조의 의미) 가지런하고 깨끗하였다. 한쪽 벽에는 ‘연강첩장도’와 ‘유황고목도’가 펼쳐져 있는데 모두 이름난 그림들이었다. 그 위에 제시(→題詩:그림의 내용을 적은 글)한 것은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其一曰

 何人筆端有餘力 寫此江心千疊山 壯哉方壺三萬丈 半出縹烟雲間

 遠勢微芒幾百里 近見嵂靑螺鬟 滄波淼淼浮遠空 日暮遙望愁鄕關

 對此令人意蕭索 疑泛湘江風雨灣

그 첫 번째 시(연강첩장도)는 이러하다.

누구의 붓끝에 힘이 남아 이 강의 마음을 천첩산이라 묘사하였는가. 대단하구나(壯哉) 방호(→신선들이 사는 산, 지리산의 별칭이기도 함) (높이) 삼만 장이여. 안개구름 사이에 반쯤 드러난 (산봉우리는) 아득하기만 하구나. 멀리까지 산세가 아득히 뻗치니 (그 길이가) 몇 백 리이며, 가까이 보이는 것은 높고 험하여 (마치) 청라환(→소라처럼 말아 올린 머리)과 같구나. 1)푸른 물결은 아득하고 넓게 흘러들어 아득한 하늘에 떠 있구나. 저녁 무렵에 먼 곳을 바라보니 고향 생각에 쓸쓸하네(). 이것(연강첩장도)을 대하니 사람의 마음이 쓸쓸하구나. 마치 상강의 비 바람차는 굽이에 배를 띄어 놓은 것 같네.

 

 譯註 

1)물에 비친 모습을 말함

 

 

其二曰

 幽篁蕭颯如有聲 古木偃蹇如有情 狂根盤屈惹莓苔 老幹夭矯排風雷

 胸中自有造化窟 妙處豈與傍人說 韋偃與可已爲鬼 淚洩天機知有機

 晴窓然淡相對 愛看幻墨神三眛

두 번째 시(유황고목도)는 이러하다.

그윽한 대밭에 이는 쓸쓸한 바람소리는 마치 탄식하는 듯 하구나. 고목이 제멋대로 누운 모습은 마치 정회가 있는 듯 하네. 제멋대로 내린 뿌리에는 이끼가 유혹하여 서려있고 늙은 줄기는 뻗어나가 바람과 우뢰를 물리치네. (저런 그림을 그린 화공의) 가슴 가운데는 조화를 부리는 구멍이 있으니 묘한 것이 어찌 사람의 말에 의지한 것이겠는가. 위언(→당나라의 화가)과 여가(→송나라의 화가)는 이미 귀신이 되었거늘 천기를 누설한 자는(→機와 知사이에 者가 생략되었음) 때가 있음을 안 것인가. 맑은 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담담히 (그림을) 상대하며 묵의 조화로() 삼매경에(든 것을) 사랑스러이 바라본다.

 

 

一壁貼四時景各四首 亦不知其何人所作 其筆則摹松雪眞字 體極情姸其一幅曰

 芙蓉帳暖香如縷 窓外霏霏紅杏雨 樓頭殘夢五更鍾 百舌啼在辛夷塢

 燕子日長閨閤深 懶來撫語停金針 花底雙雙蝶飛 爭趁落花庭院陰

 嫩寒輕透綠羅裳 空對春風暗斷腸 脉脉此情誰料得 百花叢裏舞鴛鴦

 春色深藏黃四家 深紅淺綠映窓紗 一庭芳草春心苦 輕揭珠簾看落花

한쪽 벽에는 사계절의 풍경화와 각각의 시가 있었는데 또한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서체가 곧 송설의 진짜 글씨를 모방하였는데 글씨체가 극히 단정하고 고왔다. 그 첫 폭은 이러하다.

부용꽃을 수놓은 휘장은 따스하고, 향기는 실낱 같이 풍겨나네. 창밖에는 부슬부슬 살구꽃비가 내리는구나. 누각에서 잔 잠을 새벽 종소리에 깨고, 새들은(百舌) 백목련이 핀 마을에서 우는구나. 제비는 날로 자라고 규방은 깊기만 한데(→수심은 날로 깊어만 가는데), 게으름이 몰려와 말없이 금침을 멈춘다. 꽃 아래에 호랑나비는 쌍쌍이 날며, 그늘진 정원에 떨어지는 꽃을 다투어 쫓는구나. 아직 가시지 않은 쌀쌀함이 푸른 비단 치마 속으로 가벼이 스며들고, 헛되이 대한 봄바람에 남몰래 마음 아파하는구나. 맥맥한 이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온갖 꽃 떨기 속에는 원앙새가 춤을 추네. 봄빛은 사방에 깊이 갈무리 되어있고 진붉은 빛, 연녹빛이 사창(→원문의 窓紗는 운을 맞추기 위해서 도치되었음)에 비치네. 뜰의 향기로운 풀은 춘심을 괴롭히는데, 주렴을 걷어내고 낙화를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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