颱風(태풍)
도정 권상호
제7호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를 거침없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 결과 인명과 재산피해만 크게 남았다. 颱風(태풍, typhoon)은 북태평양 서쪽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을 부르는 말로, 중심 최대풍속이 17㎧ 이상의 폭풍우를 동반하는 경우를 말한다.
태풍 외에도 인도양의 사이클론(Cyclone), 대서양의 허리케인(Hurricane) 등의 큰 바람이 있는데, 이들은 발생 장소와 조건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그리고 토네이도(tornado)는 라틴어 'tornare(돌다)'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매우 강렬한 회오리바람을 말한다.
바람을 뜻하는 한자는 ‘風(바람 풍)’이다. 風(풍) 자를 잘 살펴보면 凡(돛 범)과 虫(벌레 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느낌과 소리만 있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나타내기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리하여 고민 끝에 돛단배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바람 덕분이구나 하고 凡(돛 범) 자를 썼을 것이다.
凡(돛 범)의 발음 부호이면서 돛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나중에 ‘무릇’, ‘모두’, ‘平凡(평범)’ 등의 뜻으로 널리 쓰이자 본뜻을 살려두기 위해 천 조각을 막대에 붙여 돛을 올린 모양인 巾(수건 건) 자를 앞에 붙여 帆(돛 범, 돛단배 범) 자를 만들었다. 돛단배를 한자어로 帆船(범선)이라 하고, 그 배가 항구를 떠나는 것을 出帆(출범)이라 한다.
그런데 風(풍) 자에 虫(벌레 충) 자는 왜 붙어 있는가? 벌레와 바람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말하자면 虫(충)은 蟲(충)의 약자로, 많은 벌레들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 살랑살랑 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자 겨우내 칩거하던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좌우지간 바람의 모양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갑골문 시대에는 그 당시 발음이 같았을 鳳(봉황새 봉) 자를 빌려서 風(바람 풍) 대신에 쓰기도 하였다. 기실 옛사람들은 상상의 鳳凰(봉황)은 바람의 모습을, 상상의 龍(용)은 구름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비[雨]와 바람[風]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비와 바람이 豊(풍년 풍)을 좌우한다. 입춘에 벽이나 대문에 써 붙이는 글인 立春書(입춘서)에 많이 쓰는 문자로 ‘雨順風調(우순풍조) 時和年豐(시화연풍)’이란 글귀가 있다. 비가 때맞추어 순하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 시절이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기후는 하늘의 뜻이니 豊年(풍년)도 하늘의 뜻이다. 順風(순풍)에 돛 달고 떠나야 목적지에 쉬이 도달할 수 있지 逆風(역풍)을 맞으면 어림없다.
바람만을 뜻하던 風(풍) 자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風俗(풍속), 風景(풍경) 등의 뜻으로 확대되었다. 말에 바람이 들면 諷(풍자할 풍)이요, 나뭇잎에 찬바람이 들면 아름다운 楓(단풍 풍)이 된다. 諷刺(풍자)와 丹楓(단풍)이로다.
颱風(태풍)이라고 할 때의 颱(태) 자는 ‘태풍’의 의미를 지닌다. 颱(태) 자에 台(별 태)를 얹은 것은 첫째, 발음이 太(클 태)와 같아서 ‘크다’라는 의미와 통하고, 둘째, 높은 곳에 바람이 많이 부니, 별에는 더욱 큰 바람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白雲臺(백운대)처럼 높고 평평한 곳을 臺(돈대 대)라고 하는데, 臺(대)의 약자는 台(태)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颱風(태풍)처럼 복잡하게 쓰지 않고 台风(태풍)이라고 간단히 쓰고 있다.
본디 台(태)는 ‘怡(기쁠 이)’의 본자로 /이/라고 읽어야 한다. 이의 금문 자형은 口(입 구) 위에 㠯(써 이)가 있는 형태로 㠯(이)가 발음을 나타낸다.
바람과 관련한 한자 성어를 찾아볼까나. 바람 앞의 등불은 風前燈火(풍전등화)이요, 말 귀에 동풍이 불어도 아랑곳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음은 馬耳東風(마이동풍)이며,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어버이를 여읜 자식의 슬픔은 風樹之嘆(풍수지탄)이로다.
바람의 종류는 계절에 따라 봄바람은 東風(동풍), 여름바람은 南風(남풍), 가을바람은 西風(서풍), 겨울바람은 北風(북풍)이요, 순우리말로는 봄바람은 샛바람, 여름바람은 마파람, 가을바람은 하늬바람, 겨울바람은 높새바람이로다. 따스한 바람은 溫風(온풍), 뜨거운 바람은 熱風(열풍), 서늘한 바람은 冷風(냉풍), 차가운 바람은 寒風(한풍)이라. 맹렬한 바람은 烈風(열풍) 열풍이니, 한문 열풍 불러보세. 과외 열풍은 독서 열풍으로, 투기 열풍은 봉사 열풍으로 홱~ 바꾸어 보는데…….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물결 치면 치는 대로, 세상 형편 돌아가는 대로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順理(순리)인데, 오늘은 ‘바람 風(풍)’ 자 타령이나 하고 자빠졌구나. 나는 ‘바담 풍’ 해도 여러분은 ‘바람 풍’ 하길 바라나이다.
권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