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病(잡병) 이야기
도정 권상호
지난 초겨울부터 시작된 口蹄疫(구제역) 파동으로 온 나라가 우울한 설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은 疾病(질병)과 관련한 한자를 진찰하고 또, 처방해 보고자 한다.
疾病(질병)에 속하는 모든 글자는 ‘疒(병들어 기댈 녁)’이 붙어 있다. 疒(역)은 ‘爿(평상 장)+人(사람 인)’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여기서, 환자의 침대부터 살펴보자. 木(나무 목)을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쪼아대면 왼쪽은 爿(평상 장)이 되고, 오른쪽은 片(조각 편)이 남는다. 爿(평상 장)으로는 寢臺(침대), 平牀(평상), 病牀(병상), 담장(-牆) 등을 만든다. 모두 爿(장)이 들어있지 않은가. 疒(녁)은 바로 아픈 사람이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 人(인)을 亠(두)로 바꾸어 쓰고 있는데, 본인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본인이 깔고 누워 있는 형국이다.
疾病(질병)의 疾(질)은 ‘矢(화살 시)’를 깔고 누운 것으로 보아 몸 밖에서 들어온 질병이요, 病(병)은 ‘丙(안에서 나올 병)’으로 보아 몸 안에서 생긴 질병임을 알 수 있다. 疾患(질환), 病院(병원), 同病相憐(동병상련), 生老病死(생로병사), 無病長壽(무병장수)로다. 우리말 ‘아이고’, ‘아야’, ‘아프다’, ‘앓다’ 등은 모두 아픔의 탄식에서 나오는 말이려니.
口蹄疫(구제역)은 사전에 ‘소나 돼지 따위의 동물이 잘 걸리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병’으로 풀이되어 있는데, 口(입 구)와 蹄(발굽 제)로 보아 입과 발굽에 생기는 질병임을 알 수 있다. 疫(전염병 역)은 돌림병이다. 殳(몽둥이 수)를 깔고 누워 있는 것으로 보아 급히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蹄(발굽 제)는 ‘足(발 족)+帝(임금 제)’이다. 帝(제)는 辛(무기 신)을 묶어 놓은 모습으로 임금의 힘을 보여준다. 소나 말의 힘은 발굽에서 나온다. 紅疫(홍역), 防疫(방역), 免疫(면역)이로다.
끔찍한 욕으로 ‘지랄염병’이 있는데, ‘지랄’은 癎疾(간질)을, ‘染病(염병)’은 장티푸스를 가리킨다. 癎(간질 간)은 間(사이 간)으로 보아 空間(공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발작하며, 染(물들일 염)은 본인도 모르게 슬쩍 감염되는 傳染病(전염병)이다.
痼疾(고질)의 痼(고질 고)에는 환자가 固(굳을 고) 자를 깔고 누워 있다. 따라서 고질은 병균이 固着(고착)하고 있기 때문에 고치기 어려운 병이다. 그나마 자연에 미친 煙霞痼疾(연하고질)은 千萬多幸(천만다행)이로다.
癡呆(치매)의 癡(어리석을 치)에는 환자가 疑(의심할 의) 자를 깔고 누워 있다. 따라서 치매는 매사에 疑問(의문)이 없으니 정신병의 일종이다. 아는 것을 다 까먹은 痴(어리석을 치) 자를 쓰기도 한다.
盜癖(도벽)과 같은 묘한 병도 있다. 癖(버릇 벽)에 걸리면 壁(벽)에 부딪힌 인생이다. 瑕疵(하자)는 즉시 보수해야 한다. 여기의 疵(흠 자) 자를 보면 이곳[此(이 차]에 흠이 있다고 지적해 주고 있다.
그대 疲困(피곤)한가. 피곤함은 皮膚(피부)에 나타난다. 특히 쌍꺼풀이 천만근이다. 피곤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조심할 일이다.
병이 나기 전에는 症勢(증세)가 있다.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바로잡을[正] 것을 명령하고 있는 글자가 症(증세 증)이다. 때를 놓치면 痛症(통증)이 생기나니 대처방안으로는 通(통할 통) 자로다. 기맥이 상통해야 통증을 없애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 陣痛(진통), 産痛(산통), 苦痛(고통)은 참으나, 집안에 토끼가 갇힌 모양의 寃痛(원통)만은 痛歎(통탄)하고 痛哭(통곡)할 일이로다.
‘입춘 추위에 장독 얼어 터진다.’느니, ‘입춘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게다가 올 겨울처럼 혹독한 추위도 없었다. 感氣(감기)는 바깥의 氣(기)에 感染(감염)된 상태로 질병은 아니지만, 이 역시 스트레스처럼 모든 질병의 뿌리이니 피할 일이다.
부귀는 은이지만 건강은 금이다. 벗이든 임이든 ‘둘이서(2) 영원히(0) 마주보며(11)’ 건강한 2011년을 보내길 바란다. 겨울이 추운 만큼 매화 향기는 매혹적으로 다가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