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자료

노원신문 31- 사랑과 미움

사랑과 미움

 

도정 권상호

  사랑하지 말라, 헤어지기 괴롭나니. 미워하지 말라, 만나기 괴롭나니. 우리는 사랑의 나무를 키우는 만큼, 똑같은 크기의 미움의 그림자도 달고 다녀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사랑하기 전에는 어느 누가 그 사람을 사랑하더라도 남의 일처럼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일단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낙점을 찍었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덤비는 모든 사람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명예나 지위, 물질일 경우도 마찬가지 공식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철저하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배울 수밖에 없다. 에로스에서 아가페로…….

 

  사랑의 의미를 지닌 한자로 慈(사랑 자)와 愛(사랑 애)가 있다.

  (사랑 자)는 ‘玄()++()’으로 ‘가없는 사랑’이다. 千字文(천자문)의 첫 구가 天地玄黃(천지현황)인데, 하늘은 黑(검을 흑)이 아니라 玄(가물 현, endless dark)임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慈()는 가없는 사랑, 곧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절대자의 사랑을 가리킨다. 노장(老莊)의 학문을 玄學(현학)이라 하지 않는가. 이론이 깊고 어려워 깨닫기 힘든 학문이기 때문이다.

  (사랑 애)는 ‘受(받을 수)+()’으로 ‘마음을 받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의 又()가 愛()에서는 (뒤져서 올 치)로 바뀌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천천히 걸음걸이가 느림을 보여주고 있다. 전서에서는 愛() 위의 ()가 ‘입 벌린 모습’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모습이다.

  <左傳(좌전)>에 ‘父慈子孝(부자자효) 兄愛弟恭(형애제공)’이라 했다. ‘부모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하며, 형은 사랑하고 아우는 공경해야 한다.’라는 뜻이렷다. 慈愛(자애), 慈悲(자비), 愛民(애민), 愛情(애정)이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다. 미움에 해당하는 한자로는 憎(미워할 증)과 惡(미워할 오, 악할 악)이 있다. 여기에서 憎惡(증오)라는 단어가 생겼다. 증오심이 싹트면 작은 일에도 ‘짜, ’을 내게 마련이다. 허걱, 우리말과도 통하네.

  (일찍 증)은 甑(시루 증)의 본자로 ‘찌다’라는 의미였다. 시루는 떡을 찌는 데 사용하는 둥근 질그릇이다. ‘찌다’라는 뜻의 한자도 발음이 똑같은 蒸()이다. 그러므로 憎(미워할 증)은 ‘마음을 찌는’ 상황이니, ‘미움’의 분노가 대단하다. 요즘도 열 받으면 ‘머리에 김난다.’라는 표현을 더러 쓴다. 미움은 ‘일찍’ 끝내야 하기에 曾() 자가 ‘일찍’이라는 부사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시루’나 ‘찌다’의 의미는 사라졌다. 未曾有(미증유), 曾祖(증조), 水蒸氣(수증기), 憎惡心(증오심)이로다.

  그런데 시루 위에는 여러 겹의 떡을 올려놓으므로 曾() 자에는 ‘겹치다’의 의미가 은밀하게 숨어 있다. 여기에서 層(층 층), (더할 증), (보낼 증- 선물을 마음과 겹치어 보냄), (중 승) 등으로 파생된다. 層階(층계), 層巖絶壁(층암절벽), 增加(증가), 贈與(증여), 僧侶(승려)로다.

  (버금 아)는 눌러서 찌그러지는 모습에서 ‘누르다, 흉하다’의 뜻이 되고, 누르면 으뜸에서 ‘버금’이 된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으로 ‘고대에 분묘를 만들기 위해 파놓은 터’라는 설도 있다. (악할 악, 미워할 오)은 ‘亞()+()’으로 누가 내 마음을 누르니 성질이 ‘악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를 ‘미워하기’에 이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亞流(아류), 亞細亞(아세아), 惡人(악인), 惡質(악질), 憎惡(증오), 嫌惡(혐오)로다.

 

  성질이 나고 열 받아도 恭遜(공손)하게 나가는 편이 낫다. (공손할 공)은 ‘共(함께 공)+(마음 심)’으로 ‘마음을 함께할’ 때 공손함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共(함께 공)에는 모양은 달라졌지만 (두 손으로 받들 공)이 받치고 있음을 새겨 볼 일이다. 恭敬(공경), 恭賀新禧(공하신희)로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최고의 방편은 역시 ‘忍(참을 인)이다. (칼날 인)이 心(가슴 심)을 찌르는 듯한 고통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 (사람 인)으로서 忍(참을 인)해야 仁者(인자)가 될 수 있다. 忍耐(인내)하고 隱忍自重(은인자중)해야 한다.

 

  () 자에 대한 멋진 對句(대구) 하나로써 종을 쳐 볼까나.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 번 참으면 집 안에 큰 평화가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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